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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Dec 13. 2022

김장 김치 맛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

 올해 김장에 대해 동네방네 자랑질(?)을 했으니 후일담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과정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도 보고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남아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글조차 읽어주시고 라이킷까지 해 주신 분들에게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고 싶다.


 드디어 우여곡절을 겪었던 김장김치를 꺼냈다. 그 통의 김치는 베란다에 내놓아 3일간 강제 숙성을 시켰다. 김치 냉장고를 채 비우지 못해서다. 김치 통을 넣어야 할 자리에 냉장용 먹거리와 미리 담근 동치미, 알타리 등이 차지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공간 부족이 강제 숙성의 이유다. 살짝 신맛이 날 정도가 되어서야 자리를 비워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쓰다 보니 내가 김치를 잘 담그는 권 장금이가 된 느낌이다. 진실이 아니다. 사실 나는 집안일을 그렇게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취미가 독서였다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디 콕 처박혀 만화나 소설 같은 책 읽기를 즐기는 타입이 바로 나다. 어려서부터 따뜻한 아랫목에서 책을 가지고 뒹굴거렸다. 


 지금도 돌아가신 엄마에게 미안한 게 있다. 엄마는 생애 마지막 순간을 요양병원에서 보내셨다. 내가 면회를 갈 때마다 치매로 기억력이 흐릿하신 데도

 “너희 집 김치 해야 하는데…“

 이런 소리를 하셨다. '우리 집 김치는 엄마의 숙제나 마찬가지셨구나.' 싶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내내 마음에 걸려했다.

 은퇴를 하기 얼마 전부터 더는 노령인 엄마에게 김치를 맡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옆에서 도와도 힘든 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김치 만들기의 순서와 방법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거기에 이미 인터넷에 익숙한 내게 정보는 차고도 넘쳤다.

 다음은 혼자 하는 연습이다. 결국 우리 가족들에게 알맞은 간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김치라면 한 입맛 하는 남편이 언제든 일손(힘들거나 어려운 일 전담) 제공의 의사가 확실했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할 건 확실하다.

  각종 양념을 조합하는 나만의 레시피!

  말을 하다 보니 엄청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진실이 아니다. 말장난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김장이던 봄부터 가을까지 담그는 김치던 기본은 엄마를 흉내 낸다. 하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할머니나 엄마의 장 맛처럼 김치 맛 내기는 너무 어렵다.

 엄마의 아삭거리면서도 상큼한 데다 깊은 맛을 흉내 내는 게 가당한 일이기나 할까? 아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직접 젓갈을 담그는 게 어렵다. 엄마는 생새우를 사다 직접 소금에 절이고 황석어 젓갈과 심지어 멸치 액젓 등 김장 젓갈 등을 손수 만드셨다. 난 그 장면을 구경한 적도 없다.

 직장생활에, 가사와 육아를 하느라 견학할 기회도 시간도 거의 없어서다. 대신 시중에 나와 있는 젓갈류를 다양하게 선택해 김치에 넣어 봤다. 어떤 건 김치에 넣었을 때 너무 비리거나 짰다. 그걸 걸러내도록 김치 맛에 일가견이 있는 남편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더 이상 엄마에게 김치를 기댈 수 없게 되면서 보조가 아닌 주최자로 김치를 담그게 된 것이 어느새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을 넘어간다.

  이런 연유로 연습에 연습을 더한 데다 각종 귀동냥으로 나만의 레시피를 갖게 되었다. 최근 연습 양이 많아진 데다 김치의 종류도 다양해진 이유는 아픈 친구 때문이다. 갑자기 근육이 소실되는 병을 앓게 된 친구는 이제 증세가 악화돼 혼자 걷지도 움직이지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죽밖에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백김치나 물김치를 유튜브를 보고 배웠다. 재작년 남편이 대장암 수술 후 집에 왔을 때는 백김치 장인의 김치를 사 먹였다. 담가 본 적도 없는 백김치에 도전하느니 전문가의 솜씨를 믿기로 한 것이다. 과연 전문가의 솜씨답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건 아니었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남편은 지금 가리지 않고 아무 거나 잘 먹는다. 다행이다.


 '올해 김장은 다른 해에 비해 힘을 많이 들였으니 특별한 맛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김치 맛은 결코 일취월장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그냥 먹을 만 한데 거기에 태행산 자락에서 기른 배추에 물맛 좋은 생수를 써 적어도 쓴맛이 나지 않는 김치일 거라는 믿음 정도다. 과연 그럴까?

홍갖을 넣어 김치에서 옅은 자주색이 비친다.
4분의 1포기의 김치를 썰어 그릇에 담아 봤다. 이 김치 통은 속이 부족해 적게 넣어서인지 티가 난다


  먼저 남편의 품평이다. 한밤에 들어와 썰어 둔 김치를 냉장고에서 꺼낸 먹어본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김치 맛있는데~"란다. 지난해 김치를 먹을 때마다 쓴맛이 난다더니. 나는 그렇게 쓰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먹을 때마다 그런 소리를 하니 항상 기분이 찝찝했었다.

 다음은 큰아들의 반응이다. 큰아들은 음식에 대해 평소 말이 없는 편이다. 군 조리병 출신이라 음식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걸 본인도 싫어한다고나 할까. (난 사실 큰아들이 한 밥을 얻어먹어야 했을 장병들이 무지 안쓰러웠다. 물론 큰아들에게는 비밀이다) 큰아들은 그냥 맛이 없으면 안 먹는다. 모양과 색채에도 민감하다. 내가 억지로 먹어보라고 권하면 일단 하나는 먹는데 입에 안 맞으면 소리 없이 안 먹는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만드는 타입이다.

"올해 새로 한 김치야? 먹어 봐." 하며 나도 모르게 눈치를 봤다.

"음~ 괜찮네." 이 말이 전부다. 다행히 김치를 여러 번 가져간다.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김치를 클리어한 기분이 다 든다.

독립해 화곡동에 사는 작은 아들네 가서 김치를 꺼내 줬다

 영화 촬영 중이라 새벽에 들어왔다는 작은 아들네에 김치를 싸들고 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직 자고 있었다. 점심 먹자며 자고 있는 아들을 깨웠다. 김치와 보쌈과 계란말이 그리고 황금향 두 개를 가져가 차린 점심 상이다. 작은 아들에게는 설명이 좀 길었다.

 "태행산 생수로 담근 김치야. 먹어 봐."

 "고생했어. 맛있네. "

 가져간 보쌈과 함께 밥을 제법 먹는다.


 올 김장에 쓴 고춧가루는 친구의 시누님이 의성에서 직접 기르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그분에게 고춧가루 신세를 지고 있다. 올해 얼추 시원한 김치 맛은 고춧가루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청양 고춧가루를 같이 섞어 만드셨다는데 살짝 칼칼한 느낌이 나며 빛깔 또한 선명해 입맛을 돋운다.

내년 봄김치를 새로 담그기 전까지 이 김치들로 버텨야 한다. 살짝 보라색이 감도는 이유는 홍갓 남은 것을 위에 올려서다.

 막내 동생은 아직 김치를 먹어보지 않았단다. 일단 아껴 먹어야 할 것 같다며. 뭐 그럴 것까지는 없지만. 김치냉장고에서 지금도 조금씩 익어가 겨우내 우리 집 밥상을 풍요롭게 해 줄 김치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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