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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an 11. 2023

재물을 쓰는 곳에 가치관이 나타난다

 '또 왔네.' 짜증 지수가 확 올라간다. 그렇다고 자리를 비켜날 수도 없다. 아롱이가 밥을 먹고 있어서다.

 주차장 정산소 옆에 있는 고등어에게 밥을 주는데 어디선가 아롱이가 스르륵 나타나 다리 사이를 오간다. 자기를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녹지 않은 눈이 빙판이 된 곳을 피해 건사료와 밥그릇을 쟁여 둔 검정 박스 위로 올라간다. 고등어도 따라 올라서니 얇은 박스가 흔들린다. 

빙판을 피해 아롱이와 고등어가 상자 위에 올라가 간식을 먹는다.

 박스 위에 올라가 앉는 아롱이에게 좋아하는 간식을 주고 있는데 그놈이 나타나 또 시비를 건다. 4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다. 이번이 세 번 째다. 체격이 아깝다 싶다. 캣대디들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은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단다. 내가 여자라 쉬워 보여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옷장 속에 처박혀 있는 밍크 코트라도 걸치고 고양이 밥을 주러 다녀야 하나?' 

 무엇보다 이런 추위에 나와 밥을 먹는 냥이들 앞에서 저게 할 소리인가 싶다. 개도 밥 먹을 땐 건드리는 게 아닌데. 저 인간은 기본도 없다.


 "고양이한테 밥 주면 쥐 안 잡는 데 왜 자꾸 밥을 주는 거예요? 뭐가 생겨서 하는 거예요?"


 동네 떠나가라 하게 목소리도 크다. 아는 척이 하늘을 찌른다. 명백한 시비다. 저 인간은 지금 자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알고나 있을까? 내 머리에서 이렇게 자동 해석이 되니 더 열이 오른다.


 1. 고양이한테 밥 주지 말라고 했으면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하지 왜 말귀를 못 알아 처먹고 밥을 주냐?

 2. 고양이 밥 주기 알바 대신 돈은 딴데서  벌어라. 


 하긴 고양이한테 돈지랄(?)하려거든 봉사활동이나 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공원에 와서 밥을 주려면 집에 데려다 키우라는 소리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화는 나지만 오늘도 "뭐? 어쩌라고." 대꾸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꾸 들으니 울화가 치민다.


 "아저씨야 말로 뭘 안다고 자꾸 그런 소리 하는 거예요? 나 알아요?"


 목소리가 높아지려 하니  앞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아롱이가 긴장해  먹기를 멈춘다. 야트막한  넘어라도 개와 남자들을 경계하는  아는 터라 목소리를 낮추려 했다. 하지만 벌써   째다. 삼세번이니 많이 참았다며 

 ' 너, 좀 이리 와 봐라. 네가 뭘 알아서 함부로 그런 잡소리를 찌껄이냐'는 찰나 자리를 뜬다. 공원 건널목 신호등 앞이라 개 엄마들이 흘깃 '왜 저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보는 걸 저도 느낀 모양이다. 그런 눈치가 있는 걸 보면 돌아이는 아닌가? 문제는 본인의 소신이니 너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당장 고양이 밥주기를 그만 두지 않아 짜증난다는 태도다. 너 같은 사람 때문에 공원에 고양이가 우글거려 보기 싫다는 소리겠지.

 지금 저 남자는 수십 년 국어선생을 한 나에게 말귀를 못 알아먹냐는 막말을 거듭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더구나 뭐가 생겨서냐고? 거기 담긴 저열함에 혈압이 오른다.


 중 3 담임을 하던 몇 년 전 청소 시간이었다. 하라는 청소는 안 하고 자꾸 깐죽대던 녀석이 있었다. 그런 일이 거듭되니 나도 애들 말로 빡쳤다. 복도 cctv 앞으로 끌고 갔다. 나보다 체격도 큰 녀석을 질질 끌고 가 등짝을 몇 대 두들겨 팼다. 그때처럼 저 남자도 붙잡아 너나 잘하라고 등짝 스매싱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남편과 아들이 기겁할 소리지만(공원에서 시비 거는 사람이 있어도 절대 싸우면 안 된다는 가족들의 당부가 있었다. 지난여름부터 공원의 밤 출입을 금지당했다.)

 나도 성질이 나면 장난 아니다. 남자 형제 넷 속에서 고명딸로 자라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덕이다.

 두들겨 팬 녀석에게 cctv에 녹화 다 되었을 테니 교사가 학생 폭행했다고 부모님 모시고 와서 나 고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계속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며. 그 사건 이후 우리 반 말썽쟁이들의 기가 좀 죽었다는 건 B 중학교의 전설??? 그냥 내 희망사항이다. 그동안 저지른 게 만만치 않았던 녀석은 부모님을 모셔오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 나를 슬슬 피했다. 친구들 앞에서 더 망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곳에 설치해 둔 귀요미 집은 어떤 놈이 수시로 가져다 버린다. 이 추운 한 겨울에 냥이집을 자신의 소신과 다르다고 가져다 버리는 사람들 멘털도 이해가 안 간다.

 공원 주변 4개 학교에서 근무한 터라 퇴직 후 내 인생관은 조용히 살자다. 시장이나 마트, 카페나 음식점어디를 가도 함부로 하대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단순히 제자나 학부모일 수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정말 싸움을 못한다. 목소리 높여 다투기보다 차분차분 이야기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이런 경우처럼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들어도 일단 차분하게 대응하려 애쓴다. 중2병에 걸린 중학생들과 수십 년 생활했어도 그 미션을 돌파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내 부모님은 긴 시간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해 우리 오 남매를 키우셨다. 그런 부모님이 내 목전에서 안하무인인 사람들에게 겪었던 수모를 본 적이 제법 있다. 당장 불쾌한 일을 겪는다 해도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건 성품 때문만은 아니다. 인성 불량인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기저기 있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좋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행복하고 살만하게 만드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공원에서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부딪치는  다른 문제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디로 대화법을 모른다. 확신을 가지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다. 그것도 어디서 들어 아는  마치 소신이라는 자기 합리화로.


 나에게 '공원 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쥐를 안 잡는다는 소리가 있다는데 얘네들은 쥐를 잡느냐?"라고 차분히 물어봤다면 전후 사정을 알려줬을 거다. 결례를 벗어나 무례까지 저지르며 상대방을 함부로 비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019년 겨울 사진. 아롱이 남매들을 만났을 때 세 녀석은 나무를 기가 막히게 오르내렸다. 세 녀석 중 턱시도가 귀요미. 삼색이가 아롱이다.

 공원 고양이를 돌보며 내가 얻은 것은 분명하다. 2017년 하필이면 영국에 갔을 때 공황장애가 왔다. 1년 이상 심리 치료를 받았다. 약을 먹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다. 막연한 공포로 지하철도 타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롱이 남매를 만났다. 그게 2019년 일이다. 아롱이 세 남매 중 아롱이만 남아 밥을 먹었을 때도 난 녀석이 암컷인지도 몰랐다. 까미와 까로 아로와 아미를 낳고 기르는 걸 보면서 공원 냥이들의 생태를 배우고 무엇보다 정서적인 공황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면서 생긴 혼란에 13년간 기르던 고양이를 보내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 허우적대는 나를 멈춰 세운 건 누구였을까? 아롱이였다. 아롱이와 새끼들을 매일 보러 공원을 오갔다. 궁금했다. 그 과정을 기록한 게 <공원 냥이 아롱이>다. 다만 고양이들의 생태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너무 없어 아롱이 입양 기회를 놓쳤다는 거다. 아롱이가 주는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도 그렇게 까칠하고 사납게 굴었는지는 새끼들을 보고서야 깨달을 정도로 정말 아는 게 없었다.

 한동안 사라졌던 까망이가 귀요미로 다시 돌아온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은토끼님이 우연히 찾아오신 것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냥이처럼 굴던 귀요미(아롱이 남매, 까미 외삼촌)는 사람들을 아주 경계하는 예민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20년에 태어난 아롱이 새끼들은 나와 은토끼님이 입양했다. 입양 과정에서 중성화를 하던 아로가 죽었다. 아로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나나 은토끼님은 고양이 중성화에 한동안 공포감을 가졌다. 미적거리지 않고 아롱이 중성화를 감행했다면 사랑이와 고등어 그리고 작은 아들이 입양한 나리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나와 은토끼님이 공원에서 돌보는 고양이는 입양되지 못한 네 마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밥을 악착같이 챙기는 다롱이와 다른 녀석들은 모두 객식구다. 녀석들도 모두 중성화되어 더 이상 새끼를 낳지 못한다. 확실한 건 전담하며 꾸준히 밥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정도 관리가 된다는 거다. 캣맘이나 캣대디가 필요한 이유다. 나와 은토끼님이 관리하는 아이들은 밥만 먹이는 게 아니라 상태를 보고 수의사와 상의하여 수시로 약도 먹인다.


 그 남자의 주장대로 과연 중성화를 시켜 야생성을 상실하게 만든 고양이들을 쥐나 잡아먹으라며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일까?

엄마의 간식을 빼앗으려는 사랑이. 사랑이가 먹으려 하면 아롱이는 자리를 비켜선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자식에게 양보한다. 이게 너무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쥐들도 먹고 살 것이 있어야 한다. 공원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도 취식은 금지된 곳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 출입이 많아도 청소는 제깍제깍이다. 공원은 쥐가 서식할 환경이 아니라는 의미다. 아롱이 모녀들이 사는 곳은 청결이 더 중요한 박물관이다. 고양이들 소리가 나는 곳에 어떤 멍청한 쥐들이 감히 알짱거린다는 말인가? 어떤 면에서 아롱이 세 모녀는 쥐로부터 박물관의 소중한 유물들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다리에 물린 자국이 선명한 귀요미. 중성화된 수컷 냥이라서만이 아니라 원래 아주 순하다

 최근 귀요미 때문에 은토끼님도 고민이 말이 아니시다. 포획을 못해 입양 시기를 놓쳐 공원에서 돌보고 있는데 자꾸 상처를 입어서다. 짝짓기 계절이라 수컷들이 영역 전쟁을 벌이는  아닌가 싶다. 이렇게 상처를 입으니 집이  필요하다. 귀요미가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상자라도 만들어 놓으면 일단 다롱이가 점거한다. 거기다 일부 나쁜 사람들도 귀요미 집을 빼앗아 버리는 데 일조한다.  일이 얼마나 없으면 고양이집을 가져다 버리는지??? 겨울이 되면서 은토끼님이 마련해  집을 벌써  번이나 가져다 버렸다. 그런 사람들의 꼬인 심사도 내가 이해해 줘야 하나?


 그놈과 말다툼을 벌인 날도 아롱이 밥을 먹이고 귀요미에게  보니 집이 모두 사라졌다. 인근 쓰레기통을 찾아도 없다. 멀리 가져다 버린 모양이다. 애들 밥그릇을 발로 밟아 부수더니 속까지 좁아터진 놈이다. 그것도 소신 때문인가? 고양이로 부족해 사람과도 다투어야 하는 공원 냥이들의 불안한 처지 때문에 다리를 다친 귀요미에게 먹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냥이들 먹이가 책상 위에 널려 있다. 베란다에  쟁여둔 냥이들 먹이상자를 보고 작은 아들은 가게 차렸나며 어이없어한다. 하지만 어쩌랴. 나도 모르게 지르는 것을.

 나는 은토끼님이 공원 냥이들 먹이값과 간식 그리고 집이나 물품들을  들이는  얼마를 쓰시는지 모른다.  수십만  쓰실  분명하다. 먹이값과 간식비 일부를 쓰는 나도 부담이 크다며 가끔 가격 부담이 적은  먹이자고 은토끼님에게 은근히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 고양이들도 입맛이 까다롭다. 원하는 캔이 아닐 경우 그거 아니라고 따라다니며 냥냥거린다. 특히 고등어 녀석 앙탈이 심하다. 아롱이 딸만 아니면 얄짤 없을 텐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아롱이와 귀요미에게 주는 건 잘 먹는 걸 고르게 된다. 까미와 나리의 엄마와 외삼촌이기도 하지만 공원에서 5년째 살고 있어 건강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박물관 여직원 몇 분이 돌보던 삼색이 한 마리는 8년 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그 정도라도 아롱이와 귀요미가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사람이 돈을 쓰는 곳에는 분명 가치관이 드러난다. 나는 내가 가진 재물 일부를 고양이들과 나누기로 결정한 사람일 뿐이다.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거나 여행 등의 취미로 가진 돈을 쓰는 것도 일정한 선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나 꾸준히 무언가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남의 가치관을 내 잣대에 비추어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난 섞인 조언 따위 함부로 하지 않을 텐데.

 

 참고로 우리 까미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쥐 잡기다. 이불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공격하는 놀이다. 정말 기민하게 반응하고 집중해서 논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 쥐를 안 잡는다고? 작은 움직임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는 고양이 생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올해는 고양이 돌봄에 딴지 거는 그런 잡소리(?) 좀 안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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