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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an 05. 2023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겨울철 밖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을 보러 갔다 돌아올 때마다 생기는 일이다. 나만 그런  아닌 듯하다. 아롱이는 밥을 주러 가면 박물관 주변을 아지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녀석을 두고 와야  때마다  데다 애를 두고 오는 기분이다. 요즘 같은 겨울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동안 아롱이의 잔상이 아 있다.

아롱이는 밥을 먹고 있다가도 내가 움직이면 바로 따라나선다.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다 내놓은 고양이라 오해할 때도 있다.

 오전에 서둘러 공원 냥이들에게 갔다. 12시에 공원 맞은편에 있는 카페에서 약속이 있어서다.  약속은 주로 공원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추운 곳에서 밤을 보낸 탓인지 냥이들은 반기다 못해 엉기기까지 한다. 머리나 등을 쓰다듬어도 두툼한 등산화 위에 올라가 뒹굴뒹굴이다. 추위가 심해서인지 사람의 작은 온기조차 아쉬운 모양이다. 다행히 햇살이 환했다. 날까지 우중충하면 녀석들을 보는 마음이  짠하다.

밥을 같이 먹는 세 모녀. 고등어가 영역을 벗어나 하늘공원 위 사랑이 영역으로 나를 따라왔다. 드문 일이다.

 겨울이라서인지 오전 급식에는 객식구들이 더 많이 나온다. 특히 귀요미 자리는 정신이 없을 정도다. 혹시 자기 밥을 안 챙길까 봐 어찌나 냥냥거리는지. 넌 내가 밥 주는 냥이가 아니니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나리 자매 아빠(아롱이한테 그 녀석이 애들 아빠냐고 물어본 적은 있다. 답변을 듣지 못했을 뿐이지.)인 듯한 냥이도 멀찍이 앉아 쳐다본다. 밥 주기를 기다리는 자세다. 오늘은 객식구만 네 마리다. 

 급식을 부지런히 마치고 호수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래도 급식 봉투 2개 중 건사료와 물이 든 더 무거운 짐 하나가 줄어 다행이다. 시간이 15 정도밖에  남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멀리서 보니 토성 능선 아래쪽으로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 한 분이 고등어 무늬 고양이 두 마리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쳐다보는 걸 느끼셨는지 수로를 건너 인도로 들어서신다.

  구역 고양이들을 돌보는 분과는 안면이 있다. 음수대 주변에서 고양이 밥그릇을 씻다 말을 나눈 적이   있어서다. 아는 거라야 어디 고양이들을 돌보는지와 마스크  얼굴뿐이다. 혹시 그분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보았는데 부담을 느끼셨나 싶어 조금 미안했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가 그분을 못 알아본 건 아닌가 싶어 찬찬히 본 게 민망했다. 인사를 하려는 데 그분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도 냥이들이 제법 따르는 기색이었다. '밥을 주시는 다른 분들이 제법 있다시더니 그분   분인 모양이구나.' 싶어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한데 고양이들이 특별히 따라오는  아닌 데도 자꾸 뒤를 돌아보시는 모습이 뭔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걸고 말았다.

 "발이 안 떨어지시나 봐요?"


 학교를 그만둔 뒤로 나는 내향적인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쉽게 사람을 사귀지도 누구에게 말을  붙이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이 나다. 모르던 사람을 알게 되는 일이나 새로 전화번호라도 교환할 정도로 친근한 사이로 발전하는 사람이라야  년에 겨우  세명. 정말 빈약한 사회생활을 하게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공원에서 이리저리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 정도다. 그것도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어 안면을 트는 정도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서로 '집사'라고 부르는 정도의 안면 틈이지만.

까미. 낮에는 거의 이렇게 뒹군다

 내가 말을 거니 그분이 나와 걸음을 맞추셨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적의에 가까운 질책이나 훈계질을 하는 인간(?)들은 생각보다 많다. 적어도 공원 냥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졌다는 판단을 하신 모양이었다. 자기는 여의도에 살기 때문에 공원에 매일  오는데 며칠  이곳 냥이들이 궁금해  보니 그중  녀석이 아무래도 새끼를 가졌는지 끝도 없이 먹으려 해서 신경 쓰여 오늘 다시 왔노라는 내용이었다. 속으로 '여의도? 대단하시네.' 었다. 그러면서도  지역을 돌보시는 분이 대부분 중성화를 하셨을 텐데(추석 무렵 중성화를 시킨 녀석이 있어 하루  번씩 공원을 오갔더니 무려 3킬로가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 포획을 못한 녀석이 있나 싶어 살짝 의문이 생겼다.

 캔이 모자라 보채는 녀석들을 그냥 두고 오는  얼마나 힘든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몰입했다. 그분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구역 냥이들은 숫자가 너무 많다는 건 나도 아는 이야기였다. 이 분이랑 좀 나누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분은 집이 너무 멀었다.

작은 아들에게 입양된 나리. 사랑이 고등어와 같이 아롱이 둘째 새끼들로 태어났다.
사랑이. 이즈음 내 앞에서  자주 이렇게 뒹군다. 같은 엄마에게 태어나 나리와 삶이 완전히 다른 이유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고등어. 사랑이 나리와 같이 태어났다. 개가 달려오자 이렇게 벽 주변으로 올라가 피한다. 공원에서의 삶과 입양되는 것 중 무엇이 옳은지???

 10분도  되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그분에 대해 많은  알게 되었다. 드문 일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편한 마음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게.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어딘가로 후다닥 뛰어가셨다

 "어머! 너~. 너어무 예쁘다!" 리액션이 장난 아니셨다. 나이도 제법 있어 보이시는데. 공간 이동을 순식간에 하시는 것처럼 보여 '순발력 장난 아니시네.' 싶었다.

 고양이 정도 체격의 작은 불도그였다. 나한테는 지나가는  1 정도였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언제 그렇게 자세히 보셨는지. 지나가는  1에서 너어무 예쁜 개로 등극한 불도그는 머리에 앙증맞은 분홍색 리본을 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주인과 나눌 이야기가 있을 듯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분은 바로 나를 따라잡으셨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나를 따라잡으시는 걸 보고 다시 한번 그분의 순발력에 놀랐다. 

 그리고 오가시는 길이 멀어 힘드시겠다고 추임새를 넣는 내게 8호선 급행을 타고 당산에서 내리면 집이 근처라 오가는 건 별 문제 없다고 하셨다. 집에 16년 된 개가 있는데 그 아이가 아파 최근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병원비가 들어간다는 것. 심지어 동네 주변 고양이 8마리에게 밥을 주시는 데 그 캔과 파우치 등은 다 남편 분이 사신다는 이야기 등. 겨우 10분에 알게 된 내용치고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연신 밥을 제대로 못 주고 온 고양이에게 미안한 듯 뒤를 돌아보시는 모습이 너무 신경 쓰였다. 결국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냥이들 급식 봉투에서 캔을 하나 꺼내 드렸다.

 "마음에 너무 걸리시면 이거라도 주시는  어떠세요?"라면서.

   조금 넘게 주고   하나를 받으시는 그분의 표정과 말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캔 하나 얻은 것으로 세상을 얻은 표정?

 "어머! 캣맘이시구나. 이거 내가 애들한테 주는 거랑 같은 거네요. 정말 고마워요. 복 받으실 거예요. 복 많이 받으세요!"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천 원으로 복을 따블로 받게 된 사람으로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분은 서둘러 되돌아가셨다. 아니 뛰어가셨다. 고양이 전용 캔을 인근에서 살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이다. 그러나 이곳은 공원. 그분은 서운함을 참고 마음 불편한 며칠을 보내다 굳이 시간을 내 제법 원거리일 공원을 찾아야 했을 터. 뭐라도 할 수 있어 걸음이 정말 가벼워졌다.

 만날 때마다 공원 냥이들에게 밀린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약속에 늦지 않으려 서둘러야했다.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헤어졌다.

둔덕에서 내려와 밥을 먹는 귀요미. 나무 아래 보이는 턱시도 냥이다

 만남을 끝내고 서둘러 다시 공원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해가 뉘엿거려 서둘렀다. 하지만 나야말로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약속이 있어 짐을 줄이려고 여분의 캔을 덜 가지고 나간 탓이었다. 게다가 오전에 밥을 얻어먹은 객식구들이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들이~~~"

 나한테 캔을 맡긴 것도 아닌데 자기들도 오후 급식을 먹겠다며 어찌나 야~옹 거리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충 있는 걸 꺼내 놓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박물관 주차장 주변으로 이동하며 봉투를 뒤져보니 아롱이와 고등어 오후용 전용 캔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약속 때문에 서두르느라 챙기는 걸 까먹은 모양이었다. 화들짝 놀랐다. 밥자리에 앉아 기다리던 고등어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급식 시간이 늦었다며 냐옹거리더니 녀석은 자기 밥 내놓으라고 주차장 주변을 사정없이 따라다녔다. 찾아도 없는 밥을 어쩌리? 어쩐지 오후 급식 봉투가 가볍다고 생각되더니. 내일 일찍 오겠다며 서둘러 건널목을 건너 도망쳤다. 

 나야말로 애들 밥이 부족해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된 하루였다.

초화지 냥이가 나오는 주변 벚나무에 올라가 햇볕을 쬐는 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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