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순 Jan 20. 2023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사람들과의 관계였다면 평소 행동이나 좋은 말씨 등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공원에서 아롱이를 만나게 된 과정은 운명에 더 가깝다. 아롱이를 만나기 전 내게 공원은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누리는 장소였다. 공원에 대한 관심이라야 어느 때 꽃들이 피어나고 장미원으로 언제 지인들을 부르면 좋을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 내가 아롱이를 만나 생활비를 쪼개 고양이들과 나눠 쓰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알 것 같기는 하다.

 "그놈의 정 때문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유달리 책임감이 강하거나 공감 능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냥이들 밥 주러 가는 자체가 항상 좋은 게 아닌 걸 보면 분명하다. 녀석들이 기다리는 걸 알기에 약속을 잡는 것도 그 시간과 날을 피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냥이들의 마력에 끌려다니는 게 맞다는 쪽이 더 가깝다. 밥 먹이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즐거운 일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다. 냥이들이 기다리는 데 어떻게 힘들다고 안 가 보겠는가?


 우리 집은 초등학교 정문 근처에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이 조건이 좋아 얼른 이사를 왔다. 그리고 초등학교 운동장가 담장 공사를 하던 구덩이에서 맹이를 만났다. 겨우 2개월 정도밖에 안 된 유기묘였다. 13년을 함께 실던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은 정서적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그 과정의 괴로움은 겪어 본 사람만이 이해한다. 기르던 아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간 다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지우지 못한다. 심지어 아이의 유골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 집도 다시는 동물을 들이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남편이 냄새를 못 맡는 원인이 고양이털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지만 운명일까?

  세상 까칠한 아롱이를 만나고 새끼들을 기르는 걸 보며 남편의 눈치를 자꾸 살피게 되었다.

 “데려오는 건 안 돼. 밥은 주러 다녀도 되지만.”

 점차 남편의 강한 어조도 나 대신 냥이들 밥을 주러 몇 번 가 본 뒤 눈에 띄게 힘을 잃어 갔다. 특히 까미의 눈 상태(입양 후 녹내장 진단을 받고 매일 안약을 넣어준다)를 알고 난 뒤는 내 결심을 슬쩍 받아들였다.

 방치했던 앞 뒤 베란다를 청소하고 집 나간 작은 아들 방을 정리하고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냈다. 성능이 좋은 청소기까지 사 들였다. 그렇게 까미는 우리 가족이 되어 나름 태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놀아달라고 보채는 까미. 어릴 때 본 부엉이랑 비슷하다

 집에 가자는 소리에 까미가 이동장으로 걸어 들어갔다면 믿을까? 그렇게 까미는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스스로 선택해서. 가끔 운명이 우리를 이끄는 건 아닐까?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있으면  나리는 이런 자세로 누워 바라본다. 고양이는 사람과 가장 잘 맞는 동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롱이 두 번째 새끼 사랑이와 고등어는 아직 운명을 만나지 못했다. 사랑이는 셋 중 제일 예쁘게 생긴 녀석이다. 젖소 무늬 털에 붉은빛이 도는 토끼 눈을 갖고 있다. 그 녀석에게 생긴 악운은 딱 한 번 가진 새끼를 잃는 과정에서 다 겪었기를-. 그게 내 바람이다. 사랑이는 은거지에서 잠시 밥을 먹으러 나왔다 하나 남은 유일한 새끼를 잃어버렸다. 새끼가 자꾸 울자 박물관 직원이 천장에서 꺼내 은토끼님에게 데려다주셨다. 그 과정에서 사람 손을 많이 타서인지 사랑이는 자기 새끼를 알아보지 못했다. 새끼를 찾아 공원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가며 헤매던 녀석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네 새끼가 맞다며 데려다줬는 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기만 했다. 자기 새끼가 아니라고 젖을 주지 않고 방치했다.

 그런 사랑이 새끼를 데려가 마지막까지 돌보신 분이 있다. 하지만 지극정성으로 돌봤어도 살지 못했다. 치료 비용을 상당히 들였는데도 너무 아가라 병원에서도 살리지 못한 모양이다. 그분이 사랑이 이름을 지어주셨다. 사랑이 중성화에 동행해 비용도 부담하시고 가끔 내가 시간에 쫓길 때는 나 대신 애들에게 밥을 주러 기꺼이 오신다.

치즈 냥이 녀석이 아롱이와 사랑이가 나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이 구조물 틈새 어디에서 아롱이와 사랑이가 겨울을 난다.

 그분 이야기다. 그분이 기르시던 고양이는 하얀색 품종묘라고 하셨다. 코로나에 걸린 남편이 집에서 격리하던 중에 사고가 일어났단다. 담배를 피우러 잠시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입양한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된 고양이가 12층에서 뛰어내렸다. 아마 오지 않는 엄마를 찾으러 뛰쳐나갔으리라.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냥이의 유골을 그분은 집에 보관 중이라고 하셨다. 나를 놀라게 한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갑자기 목에 아이 주먹만 한 혹이 생겨 병원에 가니 암 덩어리일지도 모른다며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단다.

 암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이다. 그분은 검사하러 가기 전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셨다. 혹시 자신이 죽게 되면 고양이 유골과 함께 묻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을 하고 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셨다. 나는 왜 그 말이 공감되었을까? 겨우 일 년 함께 살았는 데도 그 정의 깊이가 가늠되어서? 되돌릴 수 없는 사건으로 일어난 일 때문에 몸무게가 8킬로나 빠질 정도로 극심한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 암이 아니라는 판정이 나자 혹도 슬금슬금 없어졌단다. 상심은 우리 육신에도 다양한 흔적을 남기는 모양이다.


 지난여름 토성길을 산책하던 그분은 죽은 아이와 닮은 녀석을 운명처럼 만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지역 냥이들을 돌보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미와 새끼 셋을 한 번에 입양하셨다. 가족들은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포획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그분의 용기에 정말 경탄했다. 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냥이가 슬퍼하지 말라고 보내준 선물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입양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내가 밥을 줘야 하는 날 부탁을 드리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아롱이와 사랑이를 보러 오신다. 그분이 부르면 아롱이 사랑이는 반드시 대답하고 나온다. 사랑이는 솔직히 그분을 기다리는 티가 역력하다. 하긴 그렇게 꿀 바른 목소리로 불러대고 말을 건네니 안 기다리는 게 더 이상하겠지. 더구나 애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들고 오시니 오죽할까 싶다.

숲길 한편에 억새등을 모아 누군가 천연 냥이집을 지었다.
안에 사료와 물그릇이 들어 있다. 공원 냥이를 돌보는 손길이 세심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냥이들을 돌보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고양이집들을 부수는 사람들도 함께 존재한다. 그 사람들이 새나 다람쥐처럼 고양이도 공원에 사는 귀여운 동물이라고 생각을 해 주면 좋을 텐데.

안내문을 붙였는 데도 누군가 발로 밟아 부숴버린 고양이 쉼터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건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힘든 일이 많아도 고양이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공원을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있다. 냥이들이 눈에 밟혀 매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어서다.

목을 빼고 기다리는 초화지 냥이. 멀리서도 녀석이 기다리는 게 보인다.
매일 자기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림이 지루하지는 않을까?

 고양이도 새나 다람쥐처럼 살기 원하는 생명체로 사람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살고자 하는 것들에 내가 가진 것 일부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면 안 될까? 냥이들과의 만남에 운명이니 뭐니 거창한 소리 하지 않아도 괜찮다. 흘러가는 삶 속에서 운명처럼 부딪치는 그 순간순간을 즐겁게 느끼자. 누군가와의 만남을 소중히 하는 것처럼 공원 냥이들과의 만남도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넘치기를~


 가끔 밥 주러 가기가 힘들다 느낄 때 내 발등을 찍었다고 자책은 하면서도 걷기 운동을 겸해 나도 모르게 집을 나선다. 냥이들 간식이 든 가방과 봉투를 둘러메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재물을 쓰는 곳에 가치관이 나타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