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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Feb 18. 2023

다섯 살 아롱이는

 일이 겹쳤다. 은토끼님이 일주일 휴가를 가셨다. 작은 아들은 촬영이 있어 제주도를 갔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나리를 잘못 입양시켰나? 아주 추운 날이 아니면 공원도 나름 살 만한데. 정말? 확신이 생기지는 않는다.  나리는 작년 2월에 입양했으니 집으로 들인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까미가 네 살, 나리가 세 살이다. 녀석들 엄마 아롱이는 다섯 살. 나이 계산을 해 보니 아롱이도 애기다. 하지만 사실은 할머니. 족보가 이상하지만 아롱이에게는 현재 생존한 손주가 셋이다. 공원에는 고등어가 낳은 새끼가 있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이처럼 군다. 고등어 새끼는 원래 둘이었다. 지난겨울 어느 날부터 한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거 같은데 이름도 없으니 찾지도 못한다. 다행히 한 녀석이 나온다. 누가 이 녀석을 입양해 줬으면 좋겠다.

고등어 새끼 고니. 아롱이 손주다. 결국 이름을 지었다.
고니 엄마 고등어. 중성화 후 예민한 성격이 변해 지금은 집사들에게 많이 엉긴다.

 집냥이 까미는 갈수록 응석이 장난 아니다. 툭하면 글을 쓰는 식탁 위로 뛰어올라 까만 발로 노트북 전원을 꺼버리고 놀자고 한다. 다행히 식사 시간에는 올라오지 않는다. 식구들 누구에게 안겨 다녀도, 심지어 떡 주무르듯이 쓰다듬고 만져도 천연덕스러울 정도로 편해 보인다.

귀가한 큰 아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까미를 이렇게 만져도 가만히 있는다. 가관이다

 나리는 집에 잘 적응했나? 그렇게 까칠하게 굴더니. 내가 만져 주면 심지어 골골 송도 한다. 사람에 대해 조금씩 경계를 푸는 모양새다.

컴퓨터 작업을 하는 작은 아들 옆 의자에 인형을 베고 누워 있는 나리. 사람에게 붙어 있으려고 한단다.
내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뒹구는 나리. 갈수록 귀염을 떤다. 그렇게 몸을 사리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더니.

 화곡동을 오가야 하는 3일 중 이틀간 공원 냥이들 오전 급식을 이쁜이 엄마에게 부탁했다. 흔쾌하게 허락해 주셨다. 오전에 공원을 거쳐 화곡동을 가다 보면 정말 정신이 없다. 캔사료 먹는 걸 지켜보고 주변 정리를 하고 여기저기 얼어붙은 물을 갈아주고 건사료 통을 채우고.

 냥이들 밥이 든 짐도 문제지만 급식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게다가 화곡동까지 오가는 시간만 세 시간이라 망설이다 부탁을 드렸다.


 집을 나서는 데 까미 눈초리가 따갑다. 기분이 나쁘다는 듯 눈이 새초롬하다. 오늘 외출 시간도 꽤 길어질 것을 아는 모양이다.

 속으로 ‘짜식아~ 나리는 이틀 동안 혼자 잤어~ ’ 하며 따가운 시선을 외면한다.


 집을 나서니 아주 살짝 눈발이 날린다. 강원도 어딘가에 내리기 위해 부지런히 가던 눈구름이 힘들었는지 잠시 쉬다 눈을 좀 덜어내는 느낌이다.


  공원역에서 9호선 급행을 탔다. 그래도 갈 때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아들네 두고 올 반찬통 무게를 줄일 수 있으니 돌아올 때는 좀 가벼워지려나?

 하지만 어제 올 때도 가방 무게는 줄지 않았었다.  빈 반찬통 몇 개를 넣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제의 민망한 일이 떠오른다.

 여의도역에서 공원역까지는 31분이 걸린다. 돌아올 때 여의도에서 5호선을 9호선으로 갈아탄다. 그때는 거의 빈자리가 없다. 근데 어인 일인지 한 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앉으려고 가방을 내리다 멈칫! 임산부 보호석이다. 어쩐지~. 캐리어를 세워 놓고 젊은 남자가 왜 서 있었는지 그제야 알아차렸다. 더구나 그 사람이 이런다.

 “앉으시려던 거 아니었어요?”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누구를 밀치고라도 자리에 앉아 가고 싶다는 본심을 간파당한 민망함?

 “임산부 보호석이잖아요~”

 보통 여의도에서 타면 신논현 정도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걸 못 기다리고 추태를 부린 거 같다. 피곤해서인지 눈이 다 침침해 앉을자리를 찾은 탓이다.

 과거엔 어떻게 직장생활에 육아까지 했는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주 6일 근무에 아침 자습이나 보충 수업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가사와 육아까지. 그걸 다 해냈으니. 그때 기운을 다 써 지금 남은 게 없는 건지 코로나에 두 번이나 걸려 기력이 달리는 건지?


  까치산역에 도착해 보니 공원보다 눈이 조금 더 많이 내린다. 영상이라 싸라기 눈은 금방 녹아버린다. 

 지난 1월 아들이 일본을 갔을 때보다 나리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나와서 반긴다. 야옹 소리를 내고 밥을 조른다.

 녀석을 입양한 지 일 년이지만 아직 동물병원 외출도 쉽지 않다. 그러나 처음에 비해 집 고양이 다 됐다. 사람에 대한 낯 가림도 훨씬 줄었다.

  언젠가 신경안정제까지 먹여 나리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다녀온 작은 아들이

  “고양이 한 마리 기르기도 이렇게 힘든데 애는 어떻게 길러?”

 이 말에 화들짝 놀랐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도 다 손주가 있는데 난 언제 손주가 생기냐며’며 가끔 맥 빠져하는 남편 얼굴이 지나갔다. 상대적 박탈감이라고나 할까?

“애들은 고양이보다 훨씬 더 예뻐. 그러니 기르지.”

돌아가신 우리 엄마 표현대로 온갖 새 까먹는 소리를 잘하던 너도 길렀는데 뭘 ~. 나는 가끔 남편과 작은 아들의 어록(어릴 때 했던 말들)을 꺼내가며 웃는다. 

아롱이와 사랑이가 겨울 동안 자주 머물던 레스토랑 주변 창가. 햇살이 잘 드는 양지다

 말을 그렇게 하면서 행여 저놈마저 결혼을 자꾸 미루면 어쩌지? 싶어 놀란 새가슴이 된다. 어쩌다 시절이 자식들 결혼시키는 일에도 눈치를 봐야 하게 되었을까?

 목욕탕도 없는 월세방을 얻어 살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던 시대 사람인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아롱이는 다섯 살인데 벌써 할머니가 된 지 삼 년 째다. 아무리 사람과 고양이의 수명이 차이가 난다 해도 가끔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된다. 아롱이야 본인이 할머니가 된 사실을 알까? 알겠지?


 오전에 이쁜이 엄마께서 아롱이를 못 만났다고 하셔서 화곡동에서 서둘러 돌아왔다. 작은 아들은 제주에서 완도행 배로 돌아온다고 했다. 촬영 장비를 실은 차를 가져가야 해서다. 나리가 오늘은 혼자 긴 밤을 보내지는 않을 테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부지런히 냥이들 밥을 주며 아롱이를 찾아다녔다. 박물관 주변을 세 번이나 돌며 불러도 안 나온다. 어제 분명 잘 따라다녔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하면서도 할 수 없이 돌아섰다. 다리가 천 근이다. 확실히 금방 피곤해지는 게 문제다. 


 다음 날, 서둘러 밥 짐을 들고 박물관 뒤 계단 주변으로 올라가며 아롱이를 불러댔다. 레스토랑 창가에 사랑이와 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달려 내려온다. 아롱이는 삼색이라 나무나 풀들과 구분이 쉽지 않다. 사랑이처럼 확연히 표시가 나지 않는다.

 아롱이를 보자 안심이 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롱아! 어제 왜 안 나왔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아롱이는 반갑다며 바닥을 뒹굴더니 스르르 다리 사이를 오간다. 녀석에게 좋아하는 걸 꺼내 먹이며 둘러보니 아래쪽 잔디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고등어 새끼 고니다. 

 "야, 이 아롱이 할머니야. 부르면 좀 제깍제깍 나와라. 제발~"

 

 사진을 한 장 찍어 걱정하실 이쁜이 엄마에게 보내드렸다.

아롱이와 사랑이. 하루 한 번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서 더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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