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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Feb 11. 2023

넌 언제나 좋은 선생님이었다

 정규직 교사가 되는 길이 그렇게 힘들까?

 능력과 자질이 충분한 기간제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무엇보다 비정규직들이 겪어야 하는 교육 현장에서의 애환과 희망 고문과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나는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아니, 나는 잘 몰랐다.

 2월 6일. 조카딸이 제주에 있는 여고 정규직 시험에 최종 합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붕 뜰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한 동안 회한에 빠졌다. 아직 비정규직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선생님들 문제가 떠올라서였다.


 나는 기간제 선생님들의 서러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날은 수능시험 날이었다. 시험 감독관으로 옆 고등학교에 출장을 가셨던 가정과 기간제 선생님 한 분이 학년부실로 돌아오셨다. 가정과는 수업 시수가 적다. 내가 임용되던 당시에도 경쟁률이 300대 1이라고 했었다. 그만큼 임용고시의 문턱이 높다 못해 좁은 문인 과목이 가정이다.

 귀가하지 않고 힘없이 학년교무실로 돌아오신 선생님의 말에 나는 정말 놀랐다.

- 함께 수능 감독관 차출이 되셨던 선생님들이 시험이 끝나고 난 뒤 밥을 먹으러 가면서 자기한테는 모른척했다-

 는 이야기였다. 의도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학교에서 힘든 일을 하러 함께 갔는데 왜 그런 차별을 하셨을까? 나는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에게 아마 그분들은 회비를 내는 모임이라 함께 가자고 권유하지 못하셨을 거라며 달랬다. 그렇지만 그런 행동을 하신 분들이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제주 해안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화 해변 '카페 공작소'에서 바라본 바다.  바다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장소다.

 전에 공개한 <수국의 꽃말은 진심>에서 내가 애기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강사 선생님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분은 인형(?)같이 귀엽게 생기셨다. 목소리도 톡톡 튀어 은방울 구르는 소리처럼 생기가 넘친다.


 -낯선 학교에 시간 강사로 와서 마음이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항상 반갑게 맞아 주시고 저랑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꼭 기다려 주셔서 그게 고마웠어요. -


 당연히 해야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했어야  수업 일부를 맡아  가르쳐 주셔서 고마웠다.

  년도   일인데 만날 때마다 예쁜 꽃을 안겨주실 만큼 고맙게 느낄 일이었나? 담당 부장이  정도 배려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  행동을 그렇게 오래 고마워하시다니. 기간제 비정규직 선생님들도 함께 일하는 동료다. 그게 상식이다. 하나 편견을 깨는  나부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음을 고백한다.

조카딸이 제주 서쪽 한림에 살 때 자주 갔던 카페 '앤트러사이트' 테이크아웃 할인으로 커피를 사 바다로 나가 마셨다.,

 비정규직 선생님들의 어려움에 대해 더 심각하게 느낀 건 아마 조카딸 때문이었을 것이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지 않은 데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어쩌다 시험 기회가 있어도 공부할 시간을 얻는 게 너무 부족해 보였다. 고등학교 생기부 작성이 겨울방학 전부를 투자해야 할 업무라는 것도 조카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카딸이 전공한 지구과학은 과학과에서도 T.O가 적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한 해 한 해 더 들어갈수록 우리 가족은 조카딸의 정규직 전환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근무를 포기하지 않고도 공채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석사 과정과 1정 연수를 수료하면서 해 둔 공부가 도움이 되었을 터.

조카딸 이나가 살던 곳 중 한림 주변. 금능에서 바라본 비양도. 바다색은 이곳도 예술이다. 주변 동네도 아기자기하다.
제주의 4월과 5월은 수국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카딸이 세 들어 살던 조천집 베란다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중산간에 있었다.

 작년, 조심스럽게 공채 1 합격 소식을 전해 왔을  눈물이  돌았다. 수업 시연과 면접이 남아 었다.  해낼  알면서도 내내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 내게 운이 있다면 그걸 떼서 너에게 주고 싶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 사안은 비슷한 일이 많다. 내가 제주에  때마다 이나에게 학생 사안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주 감탄했다. 너무 현명하게 문제를 처리해서였다. 학교에 이런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이유다.


 조카딸 세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했다. 경제적인 면을 오랜 시간 가족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세대였다.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5 정도 공부에 몰두해야 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왔으니  심각성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나는 가족에게 경제 문제를 맡기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경우 공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알면서도 말이다. 가족들이 독립을 말려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자립해 살았다. 내가 오죽하면 주변에 가끔 여자 흉내 좀 내며 징징거리는 거 좀 하고 살라고 했을까?

알작지 해안 도로에서 바라본 이호해수욕장

 조카 딸은 정규직이  것보다 제주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제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조카 딸에게 먼저 축하의 말을 건넨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그리고 이제 마음 놓고 제주살이를 누리며 어여쁜 여고생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라고. 좋아하는 일과 살고 싶은 곳이 모두 제주에 있어 얼마나 행운인가?

위미 카페 <서연의 집> 앞 바닷가 조형물.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제주의 개들처럼 우직하고 선량해 보인다.
가파도 청보리

 조카딸 이나가 제주로 이주한  이제 8. 육지가 아닌 제주로 옮기겠다고 했을 즈음 나도  시간 근무했던 학교를 떠났다. 퇴직을    동안 자신의 존재가치를 잃은 기분에 방황하지 않을  없었다. 나는  그럴  같았는데~. 심지어 가르치던 학생을 만날까 현관문을 나서는 것도 두려웠다.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방황의 시간에 이나가 있었다. 제주라는 공간이 나를 살렸다. 수도 없이 제주를 드나들었다. 때로는 혼자, 또는 친구들과.  시간은 추억만이 아니라 제주에 대한 이해와 지식으로 조금씩 쌓여갔다.

 이나가 처음 정착한 곳은 서귀포 주변 위미항. 거실 창가에 앉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건너다 보며 나는 오래 묻어둔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삶의 여유와 한가라는  무엇인지 알게   같은 기분.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보낸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청정한 자연의 환한 빛과 바다가 지근거리에 있던 남쪽에서 서쪽 한림으로 다시 여고에 기간제로 근무라게 되면서 북쪽 제주시로 그리고 동쪽 조천으로.....

 그렇게 조카딸이 이사를 하는 동서남북을 따라다니며 나 역시 제주를 배웠다. 이나가 출근하는 시간이면 나는 걸어서, 때로는 자전거나 버스 등으로 이름도 생소한 곳들을 누비고 다녔다. 곶자왈로 오름으로 한라산으로. 바다 조망이 기막힌 카페로. 그리고 현직이었을 때도 이루지 못했던 꿈 중 하나였던 여고생과의 논술 수업도 이나 덕분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붉은오름, 교래 곶자왈보다 한적하고 걷기 편하다
올레 5길 공천포 주변. 올레길 표시가 지금은 너무 정겹다.
남원 큰엉 주변 산책로에 있는 한반도 모양
올레길 소소한 맛집 중 하나. 남원 주변을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조카딸이 임대해 살던 조천 집 주변에 있는 세미오름
조카딸이 키우는 반려묘 뽀리

 제주는 안식이 필요한 내게 안식을 선사했다. 이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많은 사람에게 주었을 치유의  제주가  일상에도 들어오다니. 그건 내게 행운이었다. 공간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축복.


 자연을 좋아하는 낙천적인 성격이 해마다 희망이라는 고문을 견디고 이뤄낸 결과에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네가 꺾이지 않아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이나 너도 알겠지? 

우리 집 근처 도서관에서 오빠의 딸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이나. 우리 가족 다음 대 고모와 조카딸이다.

  조카딸 이나!   인고의 시간을 건너 드디어 제주에 안착한 너의 앞길에 내가 바라는  하나! 네가 행복하길~~~. 갈수록 학교 현장이 힘겨운  투성이일 거라는   봐도 훤하다. 그래도 너라면 누구보다 좋은 선생님으로 남을 거라는 것도 확신한다.  항상 노력하는 좋은 선생님이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 네가 있어 삶이 풍요로워진 고모가 오늘은 네 어깨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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