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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r 01. 2023

자식이 뭔지

“어? 너 여기로 오면 안 돼? 네 엄마 저기 있잖아?”

 서둘러 고등어 새끼 고니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미적거리며 따라오는 걸 주저주저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나도 모르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며 불러댔다. 제 엄마 고등어가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을 때 무슨 사달이 나기 전에 얼른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데~.

밥을 먹다가도 수시로 주위를 살피는 고등어 새끼 고니

 지난해 여름이다. 고니의 어미 고등어를 중성화시켰다. 은토끼님이 녀석 밥을 챙기다 비 젖은 잔디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수술하시고 집에서 요양 중이실 때였다. 고등어를 포획해 동물병원으로 보낼 때 마음이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른다. 하다 하다 별 일을 다 해 보는구나 싶었다.

 비 오는 날은 중성화시킨 뒤에도 풀어주지 않는다. 상처가 덧날 우려가 있어서란다.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다 보니 고등어의 방생이 일주일 넘어서야 이루어졌다.


  그 사이 공원에 남겨진 고등어 새끼 두 마리는 챙겨 주는 대로 밥을 잘 먹었다. 고등어라고 불러도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경계가 심하긴 했어도 녀석들 건강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고등어가 퇴원해 공원으로 돌아온 뒤에 일어났다. 갑자기 고등어가 새끼들을 잡기 시작했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평소 고등어의 성질머리를 알고 있긴 했으나 심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새끼들이 고등어 주변에 오기만 해도 하악질에 앞발질에 장난 아니었다. 얼마나 매섭게 아르릉대는지 제 어미만 봐도 도망치기 바빠 밥을 챙기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성화하고 돌아와서는 사람에게 많이 엉긴다. 그전에는 장난 아니게 하악질을 했다.


 초가을 은토끼님이 복귀하고 난 뒤 상황은 더 심해졌다.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가니 독립한 새끼들이 알아서 자기 먹이를 잘 챙길 거라고 믿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겨울 암컷처럼 보이던 녀석 한 마리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짓지 않았으니 찾으러 다닐 수도 없었다. 그냥 잘못됐구나 짐작만 할 뿐.


 남은 녀석은 추위 때문인지 박물관 지하 주차장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제 어미가 나타나자 쏜살같이 그쪽으로 사라지는 걸 봐 그런가 보다 했다. 차량 출입이 잦은 주차장이라 걱정이 되었다. 아주 예민한 모습이어서 녀석이 잘못될까 봐 우려스러웠다.  

 은토끼님이 늦은 시간 근무하실 때는 밤늦게 슬그머니 나타나 밥을 먹이실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낮에 짧은 시간만 봐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먹이를 줄 수 없다. 가능하면 얼굴을 보고 밥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겨울이라 캔이나 파우치는 금방 얼어버린다. 녀석이 올만한 장소에 먹이를 두고 왔다 다음 날 가 보면 꽝꽝 얼어붙어 있어 더 망설여졌다. 할 수 없이 배고프면 먹겠지 싶어 여기저기 건사료를 두고 와야 했다.


 어쩌다 나랑 마주쳐도 고등어 새끼는 제 엄마 기척이 나는 듯하면 쏜살같이 도망쳤다. 밥을 챙겨 먹일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고니가 나오는 곳 주변에서 고등어를 만나면 녀석 밥자리로 일부러 데려가 여기가 네 밥자리라고 설명해야 했다. 하다 하다 고양이에게 설명까지 해야 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둘의 영역을 나름대로 철저히 분리했다. 다행히 고등어는 밥을 들고 있는 나를 따라다녀 고니가 나오는 곳에서 멀리 데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고등어를 부르면 나타나는 녀석을 데리고 제 자리로 찾아가야 하는 걸 겨울 내내 했다. 


 그 사이 고니는 암컷인 제 어미에 비해 나날이 덩치가 커져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은토끼님 휴무일이면 고니를 찾는 게 일이었는데. 그날은 오전에도 어디선가 나를 본 고니가 나타나 심지어 야~옹거렸다. 하루 한 번 만나기도 힘든 녀석인데. 오후엔 제 엄마가 밥을 먹는 곳으로 나를 쫓아왔다. 제 엄마를 어떻게든 피하던 녀석이 아니었다.

 두 계절 동안 내내 혼나고 피하고 쫓기던 모습이랑 너무 달라져서 내가 다 놀랐다.


 사실 나는 새끼를 악착같이 쫓아 버리는 고등어 녀석이 달갑지 않았다. 아롱이 행동과 너무 달라서였다. 아롱이는 새끼들을 독립시킬 즈음 안전한 밥자리를 양보하고 홀로 독립해 나갔다. 한 마디로 집을 나간 것이다. 그렇게 살가울 정도로 새끼들을 챙기더니 ‘이게 뭐지?’ 할 정도였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좋은 건 자식에게 넘기려는 게 인지상정인 모양이라며 아롱이에게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그랬는데???

딸 사랑이에게 밥을 빼앗기고 그릇에서 슬쩍 물러나는 어미고양이 아롱이

 하지만 아롱이 새끼들이 다 엄마를 닮아 자식들을 애지중지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새끼로 까미와 같이 태어난 아로는 제 엄마의 행동 패턴과 너무 달랐다. 새끼들을 거의 방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은토끼님은 아로 새끼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마다 속을 끓여야했다. 오히려 중성화된 이모 고양이 아미가 아로 새끼를 지극정성 돌보았다. 그 모습에 감동해 아로 새끼들이 독립할 무렵 은토끼님이 아미 입양을 결심하셨다.


 고등어도 이상했다. 중성화하러 가기 전만 해도 새끼들을 나름 살뜰히 챙겼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앙칼지게 제 영역 밖으로 새끼들을 내쫓았다. 의외였다. 

 ‘저게 제 새끼를 못 알아보는 건가? 겨우 일주일 만에???'

 아롱이와의 차이라고는 새끼들 독립 시기에 중성화를 시켰다는 것 밖에 없는데???

박물관 뒤 담벼락에서 혼자 있는 아롱이를 만나면 얼른 밥을 먹인다. 사랑이한테 하도 가로채여서 미리 먹이려 애쓴다.

 덩치가 커진 고니가 이제 제 엄마를 이겨먹은 건지, 아니면 더 이상 나가 살라고 쫒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건지 고양이계의 속사정을 알 수는 없다. 혹시 상황이 역전된 건가? 제 엄마 고등어에게 덤벼 이겼나? 


 5년째 아롱이 가족에게 밥을 먹이고 있어도 고양이들의 생태나 습성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건 마찬가지 같다.


  아롱이와 사랑이는 밥을 줄 때 비슷한 장소에서 나타난다. 밥이야 당연히 따로 준다. 하지만 아롱이 딸 사랑이는 멀쩡한 제 밥그릇을 팽개치고 수시로 엄마 밥을 빼앗는다. 사랑이가 밥그릇에 머리를 디미는 순간 아롱이는 스르르 자리를 비켜난다.

 ‘ 자식이 뭔지??’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사랑이가 먹던 밥그릇을 끌어다 아롱이 좋아하는 걸 슬쩍 얹어 먹인다. 아롱이 등을 슬쩍 건드리며 얼른 그 앞으로 먹이를 내미는 것이다. 내 신호를 찰떡 같이 알아듣긴 하지만 아롱이가 짠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롱이도 제 것을 악착같이 챙길 만도 한데. 여전히 새끼한테 양보다.


  어차피 공원에서 살아가야 하니 고등어도 제 새끼와 힘을 합쳐 잘 살았으면 좋으련만. 아롱이처럼 자식에게 밥을 빼앗겨도 은근히 따로 챙기는 집사들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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