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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r 09. 2023

 청소년이 읽을만한 도서 추천 코너를 만들며

학교를 퇴직하고 나서였다. 한 동안 청소년 독서칼럼니스트로 청소년들에게 도서를 추천하는 글을 썼다.

 재직 중에도 청소년 도서를 추천하는 독서칼럼을 썼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소개해야지 하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했다. 그런 버릇 덕에 기회가 생겨 여기저기 책소개를 할 수 있었다. 둘러보면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들은 늘 차고 넘쳤었다.


 책에서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얻거나 진로 확장의 기회도 얻는다. 책 추천을 그만둘 수 없었던 진짜 이유다.


 수업 시간에도 책을 소개하며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골라 읽어주었다. 수업 동기 유발 방법으로 일부를 읽어주면 학생들이 도서관으로 달려가 그 책을 빌려가려고 아우성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덕분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다. 심지어 그분들을 조언자며 협력자로 얻는 경우까지 있었다. 


 책 좋아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게 나는 정말 쉬웠다.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물어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거꾸로 학생들이 내게 책을 추천하거나 빌려주는 일도 빈번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첫 부임 학교에서는 주로 만화를 공유했다. 순정만화 <캔디> 수십 권을 학생들에게 빌려 읽었다. 교무실 구석에서 코를 박고 만화를 보던 내 모습은 여러 선생님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단다. 한심하지만 선생님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만화는 학교에 들고 올 수 없는 금서였다. 수업 시간에 만화를 보다 걸리면 나를 핑계로 압수를 피해 갔다는 전설(?)이 다 생길 정도였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말이다.



 내가 네 번째 부임한 학교는 학급수가 많았다. 한 학년 18개 반이었다. 국어교사들의 수도 많았다. 세 학교를 돌며 10년 넘는 경력을 쌓을 동안 학교 관련 중요한 법령 하나가 만들어졌다. 학교 운영비의 5%를 도서관 운영과 책 구입비로 쓰게 법이 개정된 것이다. 게다가 그 학교에는 연령대가 비슷한 국어선생님들이 다수 포진하고 계셨다. 자녀들의 나이까지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그건 행운이었다.


 먼저 교사들이 골라낸 도서들을 40권씩 복권으로 구매하기 전 선생님 자녀들이 동원되었다. 학년에 맞는 책 고르기 사전 검수자들로.

 청소년용 도서가 따로 분류되거나 출판되지 않았던 시절. 중학생 수준에 맞는 책을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국어선생님들은 독서의 양은 많아도 일단 어른의 시각일 수밖에 없다. 어른의 시각이 아니라 중학생의 수준에 맞는 책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 2학년 교사 자녀들은 다양한 책들을 이미 읽고 있었던 터라 그 역할에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입시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 특목고나 과학고 나중에는 자사고를 가기 위해 학원으로 돌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껏 책을 읽고 누릴 수 있었다.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뜻을 모은 선생님들은 나이만 비슷했던 게 아니라 독서 교육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대단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니 회의를 자주 해도 문제가 없었다.


 선생님들이 모두 돌려 읽고 검수한 다음 자녀들에게 준 미션은 재미 중심으로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책의 가독성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우리 집에서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작은 아들이 검수자였다. 책과 영화를 본 느낌에 대해 엄마에게 조잘조잘 스스럼없이 이야기해 왔던 터라 중1 학생들 도서를 고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중학생들을 위한 학년별 필독서를 선정,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각종 독후활동을 시작했다. 아침 자습 시간만이 아니라 국어시간에도 반별로 같은 도서를 마련해 읽히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선생님 엄마들이 찾아낸 책을 자녀들에게 읽히고 읽는 속도와 수준 그리고 이해도를 파악해 고르고 골라낸 책들로 학년별 필독서를 선정해 국어시간에 수업 전 10분 독서시간을 운영했다.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노력 덕이었다. 청소년기에 다양한 책들을 읽을 기회를 주고 독후활동도 하는 공을 들이는 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도서선정부터 독후 활동으로 좋은 모델을 개발하고 서로 의견 교환을 하던 날들. 지금은 추억이나 당시에는 매일이 살아 움직이는 날들이었다.


 나만이 아니라 참여한 선생님들 모두 가정과 학교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던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다. 늘 시간에 쫓겨 허덕이면서도 독서지도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한 분들이었다. 무엇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수업 모형을 개발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다음 학교로 부임해서도 독서에 대한 소신과 운영 방식을 변함없이 소개하고 공유했다. 교과서만으로 부족한 학생들의 성장을 독서활동으로 보완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아 나는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같이 있었던 데다 역사도 길고 도서관이 아주 컸었다. 책을 마음대로 살 가정 형편이 안 되던 내게 그건 행운이었다. 중학생들에게 책 읽을 기회를 주려는 과도한 욕심의 기원은 그 시절과 맞닿아 있다. 


 학생들과 책을 읽고 독후활동을 한 경험은 나의 개인적 성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것을 바탕으로 토론을 넘어 논술까지 영역을 넓히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활동한 자료들을 모아 자료집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을 근거로 학교생활기록부에 활동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퇴직을 해서도 중, 고 학생들과 방과 후로 독후활동을 쉬지 않았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오면서 기고하던 독서칼럼도 독후활동도 기본 논술 강의도 모두 접어야 했다. 


 제법 긴 시간 책을 그냥 읽고 말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책 정보를 교환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러기에 아까운 책들을 브런치에 소개하겠다는 용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활용할 지면이 있기도 하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목적으로 책을 권해야 할 지 경험자의 조언을 필요로 할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원 고양이 이야기도 좋다. 그도 내 일상의 한 부분이니 쓰기를 그만 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오래 몸담아오고 노력해 오던 일을 접어두기에는 항상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신간들을 꼼꼼히 읽고 그중 청소년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한 달에 한 권이라도 골라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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