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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r 17. 2023

어쩌다 보니 호구


“너 왜 또 그런 표정이야? 좀 전에 밥 먹었잖아. 나도 밥 좀 먹자. 응! “

 목소리를 살짝 깔아본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고 있던 가족들조차 아무도 내편이 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뭘 버텨. 그냥 간식이라도 주지~’

 이런 얼굴들이다. 까미는 요구 사항이 있을 때 좋게 이야기하면 참을성이 많다. 한 자리에 앉아 가만히 나만 집중적으로 바라본다. 거의 스토커 수준?

 결국 밥을 먹다가도 일어나 뭔가를 줘야 한다. 새벽 4시에 밥을 달라고 할 때도 결국 지고 만다.

  속으로 ‘저게 정말~~~귀여워서 참는다.’


 원하던 간식을 먹은 까미는 배부른 자의 여유를 부리며 안방 침대로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내가 어쩌다 여기저기 고양이들 호구가 됐나?’ 싶다.

침대에 올라가 자리를 잡는 까미
이 자리에 누우면 제법 긴 시간 잠이 든다

 얼마 전 은토끼님이 고등어 새끼 고니가 평소 주던  밥을 먹지 않아 캔을 한 번에 5개나 딴 이야기를 하셨다.

 안 먹거든 그냥 내버려 두고 오시라고 했더니 자기를 쫓아 차가 오거나 말거나 주차장에서 안 비켜나 어쩔 수 없었다는 소리에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어떤 상황인지 눈에 훤히 그려져서다.


  그 밥 아니라고 야옹거리며 따라다니는 고양이들 이야기를 하면 지인들 대부분이 이런 소리를 하신다.

 “ 아니. 길고양이 주제에 무슨 입맛을 찾아~. 그냥 아무 거나 먹으면 되지. 자기가 길고양이라는 자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도 안다. 내가 돌보는 녀석들이 야생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길냥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속이 상한다. 심지어 '사람은 자기 좋아하는 거 찾아 먹는 게 당연하지만 길고양이는 얻어먹는 주제라 자기 입맛을 주장하면 안 된다는 거야?' 이런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아롱이 첫 새끼는 넷이었다. 거기에 객식구 다롱이까지 한 번에 여섯을 먹이다 보니 길냥이 밥값이 갑자기 만만치 않게 폭증했다. 국내산 캔으로 양이 많고 저렴한 걸 먹였다. 그게 아롱이 가족 먹이에 대한 내 철학이었다. 여섯이 있는데 뭘 가리고 안 먹고 심지어 까탈을 부릴까? 한참 새끼들이 자랄 때는 안 먹으면 다른 애들이 다 먹어 버리니 일단 배를 채워야 할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주는 대로 다 먹어치웠다.

2020년 아롱이 첫 번째 새끼들. 다롱이만 빼고 가족이다.
공원에 있던 까미

 물론 내 속마음은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것보다 국산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품질도 믿을 수 있으니 그걸 먹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토끼님이 애들이 잘 먹는다며 알려주시는 먹이를 모른 척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새끼들은 입양이 여의치 않아 추운 겨울에도 공원에서 견뎌야 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아롱이와 귀요미에게는 더 미안했다. 먹는 거라도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새끼를 잃고 헤매는 사랑이 먹이도 좋아하는 걸 사다 보니 고등어도 마음에 걸렸다. 결국 고니에 다롱이까지 나도 모르게 그 까다로운 입맛을 맞출 수밖에.

객식구 다롱이

 객식구 다롱이는 자신의 처지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녀석이다. 녀석이 있는 자리에 밥을 주러 가는 이유가 귀요미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좋아하는 걸 먼저 챙겨도 틈만 나면 귀요미 밥을 탐낸다. 안 미워할 수가 없다. 게다가 툭하면 귀요미를 잡는다.

 사랑이가 제 엄마 아롱이 밥에 입을 대고 뺏는 건 이해가 되는데 다롱이 행동은 유독 얄밉다. 아마 너는 원래 밥 먹이지 않아도 되는 녀석인데 하도 난리니 할 수 없이 준다는 의식이 만만치 않게 깔려서인 모양이다.

귀요미는 툭하면 다롱이에게 밥을 가로채인다. 수컷인데도 순하기 짝이 없다.

 공원 고양이들의 절대 호구인 은토끼님은 집에 입양한 아이들에게는 엄격하게 제한 급식을 시키신다고 하셨다. 집냥이들은 활동량이 부족해 금방 비만이 된다며. 심지어 츄르도 반만 품에 안고 먹이신다고 하셨다. 호구 2인 내 입장에서는 정말 의외였다.

  

  하루 한 번만 급식을 하자고 주장하지만 은토끼님이 휴가를 가시거나 출근을 못하시는 사정이 생기면 나는 그게 가능할까? 하루 두 번 공원을 나가 밥을 줘야 하는 건 정말 일이다. 그것도 고된. 하지만~

 기다리는 녀석들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나도 모르게 내 발등을 찍는다. 밥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자기들을 찾는 사람들 손길을 그리워한다는 걸 알고 싶지 않지만 알게 되어서라고 할까?


  밥 주러 오는 사람을 기다리다 지쳐 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은거지로 돌아가는 녀석들을 불러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힘없이 돌아서는 녀석의 모습이 얼마나 측은한지. 힘들어도 그냥 호구로 살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주 가끔 가족처럼 지내던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삼색이 아롱이와 젖소 무늬 사랑이 모녀
고등어 뒤로 보이는 녀석이 고니다. 요즘은 제 엄마 주변에 나타나 심지어 엄마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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