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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r 27. 2023

역전

 내가 처음 교사로 임용되었을 때 우리 엄마가 하신 조언이 있다. 

'절대 누구에게 모질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셨다. 아직 어린 중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딸이 행여 어른 입장에서 판단해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걱정이셨을 거다. 

 학교 현장에서는 화를 돋우거나 교우들에게 지나쳐 보이는 행동으로 야단을 쳐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때마다 나는 화가 나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이 말을 되뇌었다.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도 지나친 모욕감이나 굴욕을 느낄 말을 하지는 말자고 생각한 것이다. 


고양이를 함께 돌보다 보면 냥이들에 대한 뒷담화가 나올 때가 있다.

얼마 전이다. 그 주에 제주를 가야 해서 은토끼님을 잠시 만나러 나갔다. 그때 요즘 고등어가 새끼 고니 눈치를 본다고 하셨다. 고니가 더 이상 참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봐도 어미 고등어의 포악질이 심하다고 느꼈으니 수컷(?. 짐작이다)인 고니가 언제까지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었다. 그렇게 쫒겼으니 내가 봐도 심사가 사나워져 있지 않았을까. 나라면 친부모가 맞는지 의심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등어를 향해 '네 새끼 맞는데 왜 그러냐?'며 언성을 높힌 적도 있다.


 은토님은 그 말끝에 

 "그러게 새끼한테 작작 좀 하지." 하셨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고등어는 새끼 고니를 자기 영역에서 나가라고 얼마나 닥달했는지 모른다. 그걸 밥 먹이는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밥도 못 먹게 새끼를 쫓아내는 모습이 우리 눈에 곱게 보일리 없었다.


 아롱이는 밥을 먹고 있을 때 다른 고양이들이 다가와 제 밥에 입을 대도 절대 경계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별은 내가 한 것 같다. 어느 날은 참다 못해 "아롱아~. 밥은 내가 주는 데 인심은 왜 네가 쓰니? 네 밥이나 잘 챙겨 먹어. 짜식아!"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그 녀석이 밥을 먹어치우면 아롱이 밥이 부족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롱이가 예쁘게 보였다. 자기 먹을 게 부족해 지더라도 인심은 일단 쓰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먹이를 악착같이 챙기는 다롱이까지 받아들여준 아롱이다. 아롱이가 다롱이를 잡는 건 자기 새끼들을 건드릴 때 뿐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아롱이가 가까이 나타나면 다롱이는 흠칫하고 슬슬 피한다. 한동안은 하도 다롱이가 귀요미 밥을 가로채 일부러 아롱이를 데리고 다닌 적이 있다.

 남의 밥을 빼앗지 않는 건 물론 자기 밥에 입을 대도 너그럽게 구는 아롱이. 새끼들에 대해 무한 너그러움을 베푸는 건 물론이고 밥 먹을 때 어떤 고양이가 나타나도 슬그머니 먹을 걸 양보하는 녀석이 왜 예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아롱이 새끼 고등어의 행동이 의아했던 것 같다. 어미 아롱이에게 분명 보고 배운 게 있을 텐데 저 녀석은 왜 저래 싶었던 것이다.


 항상 주변을 돌아보는 고등어. 녀석의 삶도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고등어가 처음부터 까칠했던 건 아니다. 워낙 생김이 호랑이상으로 보여 수컷이라 믿고 있었기에 녀석이 새끼를 낳자 너무 의외였다. 그것도 물이 빠지는 배수구 구멍에서. 녀석이 어떻게 거길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배수구에 갇혀 있는 고등어와 새끼들을 구하려고(?) 배수구 뚜껑을 어찌 열어야 하는지 고민하며 동동거린 적이 있다. 결국 남편을 데리고 공원에 오니 고등어가 밖으로 멀쩡히 나와 있어 나를 어벙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배수구 틈새에 밀어넣어 준 밥을 모두 해치운 뒤에 나왔는지 그 안에 둔 밥은 다 사라진 상태였다.

이 배수구 아래 어딘가에 고등어는 새끼를 낳아 길렀다.  무게가 엄청나 어떻게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는 목숨이 다섯 개라는 소리가 있다더니. 들어갔으면 나오는 것도 할 수 있는 게 고양이라는 말도 그때서야 생각났다. 


 고등어는 새끼들을 기르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이 많다.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나왔지만 배수구에서 얼핏 본 새끼들 숫자는 더 많았었다. 그 새끼 중 하나 마저 지난 겨울에 없어지고 지금 남은 건 고니 뿐이다. 중성화 이전에는 밥을 주는 우리에게도 하악질을 하고 성질을 부려 '저 성질머리 어째?' 싶을 정도였다. 주는 밥은 먹으면서도 입맛도 까다롭고 마음에 안 들면 하악질을 수시로 하던 녀석이었다. 오죽하면 은토끼님이

 "그 녀석은 밥 줄 때마다 저한테 하악질을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했을 정도였다.

 녀석이 아롱이 새끼가 아니었다면 밥 주는 걸 그만 두었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 고등어는 중성화를 하고 돌아온 뒤부터 사람에게 하악질과 앞발로 할퀴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반가움의 표시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경계를 풀고 발에 채일 정도로 애교를 부리는 냥이로 거듭났다.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는 고등어
좁은 공간에서 매일 혼자 지내야 하는 나리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동복으로 태어난 고등어와 사랑이 그리고 입양된 나리는 암컷이라서인지 체격이 아주 작다. 우리 집에 와서 까미를 볼 때마다 작은 아들이 하는 말이 있다.

 "자식~ 왜 이렇게 커?"

 내가 봐도 나리는 까미의 3분의 2 정도다. 그래서인지 암컷들이 더 작고 귀여운 건 사실이다. 고등어는 공원에서 살아가야 하니 그런 신체적인 약점을 까탈스런 성질머리로 극복하려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집냥이가 된 나리 성격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밥을 먹이는 수고를 오래 들여도 괜찮으니 고등어와 새끼가 서로를 보듬고 험한 공원생활을 잘 살아줬으면 한다. 요즘 공원에 불법으로 설치한 고양이집과 급식소를 철거해 달라는 안내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해가 되긴 하는데 비가 오거나 추위가 심해지면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롱이를 만나 밥을 먹인 5년 동안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고양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수컷은 1~2년이면 눈에 띄지 않는다. 고니가 한 번의 겨울을 무사히 지났으니 제 어미와 힘을 합쳐 박물관 주변을 지키는 고양이로 잘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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