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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Apr 02. 2023

제주 봄을 맛으로 만나다

 김녕 빵집, 세화 오일장, 표선 삼달리 돌담 공방 가시리 녹산로 유채와 벚꽃. 그날의 일정이었다.


 제주에서 성산 방면 바닷가 일주로를 타고 김녕 빵집에 들러 심부름을 했다. 착한 가격으로 유명한 집이라더니. 이름을 몰랐다면 찾지 못했을 정도로 한적하고 외진 곳이었다. 입소문 때문인지 손님은 제법 있었다. 소금빵. 콘도그. 그린 올리브파이를 샀다.

김녕 카페 브릭스 앞 만개한 벚꽃

 빵을 사 부지런히 세화오일장으로 향했다. 세화 오일장은 1시면 파장 분위기라 서둘러야 한다. 여기도 조카딸의 부탁을 겸한 심부름이 있었다. 청년야채상회에 가서 갓김치를 사다 달라는. 야채상회에 무슨 갓김치? 했는데… 아들은 야채를 엄마는 김치를 공조해 파는 가게인 모양이었다.

 심부름을 잊지 말고 야무지게 해야 했다. 하루 두 끼를 학교 급식으로 때우더라도 주말에는 뭘 먹어야 하니 냉장고를 조금은 채워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조카딸 부탁으로 김치를 사러 왔다고 했더니 천 원을 할인해 주셨다. 갓김치 맛은 내가 담근 김치의 밍밍함과는 달리 아주 맛있었다. 젓갈이 듬뿍 들어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두 끼를 집에서 먹은 나와 제자가 그날 사 온 갓김치의 반을 먹어치웠다.

 장을 보다 국민 간식 떡볶이와 어묵을 먹었다. 문제는 바닷가라 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추웠다. 따뜻한 국물이 금방 식어버린 탓도 있었지만 맛도 별로였다.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붙은 호떡집은 줄이 길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생긴 눈치로 그런 집은 맛집 확률이 높다. 줄을 서서 산 쑥호떡은 훌륭했다. 떡볶이로 버린 입맛을 되살려줄 정도로.

세화 카페공작소에서 본 세화 바다.

 그날은 세화장을 들러 벚꽃과 유채가 만발한 녹산로 가시리길을 가려고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불어도 해가 쨍하면 좋은데 아직 고사리 장마 중인 모양인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춥기는 해도 비가 부슬거리지는 않았다. 인근 카페에서 당근 주스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파도가 거칠지 않았지만 추워서 바닷가 산책은 포기.


 표선 삼달리 <돌담공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세화 오일장에서 찐 옥수수를, '세화제분소'라는 떡집에서 어렵사리 색상이 고운 떡들을 샀다.

 <돌담공방>에는 조카딸이 조천 중산간에 살 때 아들네로 속초에서 이주해 오신 어머님이 계셨다. 그 여름. 텃밭에 기르셨던 고추를 주로 나와 제자가 매일 따서 먹어치웠다. 제자는 민화 작업을 위해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던 중이라 내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그분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그 동네는 편의점 하나 없는 한적한 곳이다. 시내나 시장을 다녀오게 되면 만두나 김밥, 떡 등 간식을 사다 나눠드렸었다. 성읍에 있는 공방으로 아들마저 출근하면 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라 적적하셨던 탓에 제자를 말벗으로 몹시 애중하셨던 모양이다. 제자가 서울로 돌아올 때 삼달리에 공방과 집을 지은 곳으로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단다.

  거의 이 년만에 보러 간 우리를 어머님은 몹시 반기셨다. 돌아올 때 밭에서 직접 기른 돌미나리 쪽파 달래 무침. 유채나물 무침. 무생채 김치. 돌나물 김치, 상추 등을 우리에게 듬뿍 싸 주셨다. 들기도 무거울 정도로 양이 만만치 않았다.


 그날 싸 주신 각종 나물 덕에 제주에 며칠 더 머물며 풍성한 아침과 저녁 식단을 챙길 수 있었다.


 제주에도 맛집들이 제법 있지만 손맛이 좋은 분이 정성 들여 만들어 주신 것만 하겠는가? 제자는 덜어 먹다 남은 반찬을 싸서 가져올 정도로 좋아했다. 고추 많이 심어 길러 놓을 테니 꼭 놀러 오라고 당부까지 하셨다. 졸지에 야채 중 고추를 가장 좋아하는 스승과 제자가 되어 있었다.

 거의 빈손으로 갔다 반찬을 보따리로 얻어 저녁까지 외식을 하려던 계획도 포기! 남은 날들을 세끼 알뜰히 챙겨 먹은 덕에 늘어난 몸무게를 줄여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돌아오며 녹산로 가시리길의 만개한 유채와 벚꽃 길을 걸었다. 여기저기 벚꽃 동백 유채가 만발해 올봄은 마음이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제주의 봄맛도 그 어머님의 손길 덕분에 풍성하게 맛본 날들이었다. 추억에 추억을 더하고 봄맛까지 더해 오래 기억되는 제주가 될 것 같은 여행이었다.

제주 녹산로 가시리길
물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금능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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