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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Apr 05. 2023

까로야, 상심하지 말고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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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입양이 옳은 건지 아니면 공원에서 자유롭게 지내며  수명대로 사는  맞는 건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고양이들이 사람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밤새 비가 내렸다. 오랜 봄가뭄으로 여기저기 산불 소식이 끊이지 않더니.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빗소리 때문일까? 간간히 자다 깨다 혼곤한 중에 꿈인지 현실인지 의식이 오락가락했다. 은토끼님이 입양한 까로와 전날 입대한 까로 아빠 그리고 심란하실 은토끼님이 걱정되어서인 모양이었다. 


 분단국가 대한민국. 이 나라에서 아들을 낳아 기른 엄마들의 숙명은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거다. 언제까지 그런 이별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큰아들을 31 연대에 입대시키고 돌아오던 그 해 3월. 긴장해 위축된 얼굴로 줄을 지어 강당을 빠져나가던 큰아들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국도를 타고 돌아오던 전주 벌판 그 어디쯤에 남편이 차를 세웠다. 너무 기운이 빠져 운전을 하기 힘들다며. 봄햇살을 받아 들판은 환한데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낳아 기른 후 처음 이별식을 치르는 기분이어서 그럴까? 아들이 입고 갔던 옷과 신발이 든 상자 하나를 입대 일주일 만에 받았을 때는 또 어떻고. 작은 아들은 오죽하면 입대 당일 나를 따라나서지 못하게 하고 제 아빠와만 갔다.


 당분간 까로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저녁이면 여지없이 돌아와 자기를 찾던 제 아빠를 까로는 하염없이 기다릴 테고. 까로 아빠의 부재를 견뎌야 할 은토끼님이나 까로한테 경험자로서 마음이 안 쓰인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제주를 다녀오느라 열흘 만에 냥이들을 보러 나갔었다. 아롱이도 궁금하지만 귀요미 상태가 걱정되었던 터라 일단 은토끼님을 만나러 나갔다. 닭가슴살을 10개도 먹던 녀석이 제주에 가기 전 한 개도 안 먹어 걱정이 말이 아니었었다. 더구나 매화와 벚꽃이 피고 날이 화창해질수록 귀요미 자리 주변에 돗자리를 펴고 노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워낙 소심하고 겁이 많은 귀요미 입장에서는 밥을 먹으러 나오는 것도 꺼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길고 추운 겨울을 힘들게 건너왔는데 공원에 사람들이 돌아온 게 문제가 되다니???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은 만개한 각종 꽃들 덕분에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려든다. 


 굳이 은토끼님을 보러 나간 이유가 더 있었다. 은토끼님 아들이 군대를 가서 며칠 출근을 못하신다며 냥이들 급식을 부탁하셨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답톡으로 '까로가 엄청 상심하겠네요?' 하면서도 은토끼님의 심란함이 걱정되었다. 은토끼님은 아들 군대 옆에 까로를 하숙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지금도 아들 옆에 딱 붙어 산다면서. 어떤 모습일지 눈에 선하다. 


 까미와 같은 시기 까로도 은토끼님에게 입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토끼님 아들인 까로 아빠에게 입양되었다. 까로 아빠는 까로가 입양된 이듬해부터 코로나로 학교 대신 집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까로가 얼마나 붙어 있으려 했을지 안 봐도 훤하다. 까로 아빠 역시 입대를 하며 제일 마음 쓰이는 게 까로가 아닐까?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엄마치고 심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까로의 상심도 장난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나를 대하는 까미의 태도를 보면 고양이들의 감정 표현도 만만치 않다. 며칠 동안 까미는 내 등뒤에서 점프를 해 등을 할퀴었다. 기분 나쁘다는 표시를 이리저리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롱이 첫 번째 새끼 넷 중 까로는 장난도 좋아하지만 맏형 같은 느낌이었다. 제일 의젓했다. 까로는 <공원 냥이 아롱이>에서 공개한 <고양이 춤>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귀요미 대신 까로가 은토끼님에게 입양되는 과정에 내 실수가 있어 나는 지금도 귀요미에게 상처가 생기거나 아픈 기색이 보이면 마음이 더 쓰인다. 그리고 흔쾌히 자기가 길러줄 테니 데려오라고 했다는 까로 아빠에게 늘 고마웠다. 정이 많고 마음결이 고운 사람이니 군대에서도 잘 지내겠지만 까로를 위해서도 안전하게 지내다 돌아오시라고 전하고 싶다.

공원 은거지에 있을 때 까로와 까미
입양되기 전 까로
입양 전 까로


 까로도 입대한 아빠를 한동안 기다려야겠지만 너무 상심하지 말기를~. 그래도 네 옆에 마음 넓고 까로 좋아하는 아미(아롱이 딸. 까로보다 1년 뒤에 입양하셨다)가 옆에 붙어 있으니 상심한 널 위로해 줄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제 아빠가 충분히 까로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애썼겠지만 말이다. 나도 까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까로 너를 누구보다 사랑해 준 사람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꼭 돌아와 예전처럼 널 많이 사랑해 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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