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순 Apr 09. 2023

피지컬이 장난 아니에요

 '우리 콩콩이는 피지컬이 장난 아니에요.'

 공원 고양이들치고 매력 없는 녀석이 없다. 하지만 입양한 콩콩이를 그렇게 특별하게 느끼신다니!

 콩콩이가 얼마나 마음에 쏙 드셨으면 그렇게까지 표현할까? 원래 입양을 결정하신 이유는 하양이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하긴 사람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건 저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

 거실에 앉아 있다 콩콩이가 지나가는 걸 보면 정말 장난 아니게 멋있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고 하셨다.  그냥 반하신 거 같았다.

 지난번 집에 들렀을 땐 달아나는 냥냥이들 엉덩이만 봐 직접 얼굴을 보고 싶기는 했다. 물론 가끔 동영상을 보내주셔서 냥이들 근황은 알고 있었다. 동영상 속 콩콩이는 까만색이 더 많이 섞였는데??? 원래 하얀색 냥이를 더 좋아하신 거 아니었나?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주에 간 나 대신 공원 냥이들 밥을 주러 다니신 이쁜이 엄마를 시장에서 만났을 때였다.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었는데 거꾸로 지난주 강화도 친구네 집에 갔다 땅두릅과 머위대를 채취하셔서 삶아두셨다며 가져가라고 이끄셨다. 두릅은 남편이 좋아하는 산채라 시장 볼 일도 팽개치고 물색없이 따라갔다. 더구나 자연산이라니 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히 보니 이쁜이 엄마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싸주시는 타입이다. 나를 소파에 앉혀두고 냉장고를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시며 뭘 자꾸 싸신다. 말릴 틈도 없다.


 


 우리 집도 까만 고양이를 키울 일이 생기리라고는 꿈도 꾼 적이 없다. 나만해도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속의 부정적 이미지를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다 까미를 만났다. 까미를 집에 들이고 난 후 검은색에 대한 편견까지 모두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올블랙인 까미가 지금은 세상에서 젤 이쁜 고양이다. 남편은 이른 시간 출근하며 현관을 따라나서는 까미를 안고 몇 층을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 집에다 데려다 놓고 다시 나간다. 혹 계단에 내려놨다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까 봐.

세 아이의 엄마 이쁜이.
아롱이. 이쁜이 새끼 셋 중 암컷이다
아롱이(앞)와 엄마 이쁜이(뒤)
하양이. 수컷이다.


이쁜이 가족. 이쁜이 엄마가 냥이들을 평소 어떻게 대하시는지 알 수 있다

 공원 냥이들을 넷이나 한꺼번에 입양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사실 이런 우려는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동영상 속에서 냥이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담긴 사랑을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고양이 네 마리가 마음껏 뛰놀만한 전원주택 마련이 꿈이라시는데. 그 꿈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시기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된다.

콩콩이

 

 냥이들이 있는 베란다를 들여다보니 둘이 보인다. 지난 번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쏜살같이 사라지더니. 콩콩이와 제 엄마 이쁜이가 오늘은 다행히도 나와 눈을 마주친다.

 직접 본 콩콩이는 온몸에 검정과 하양의 조화가 기막히다. 자연의 솜씨가 이토록 정교하고 섬세하다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이쁜이 엄마 말처럼 입 주변과 다리에 있는 무늬가 보통 조합으로 나오기 힘들 만큼 멋지다. 더구나 녀석은 사람에게 잘 다가간단다. 이제는 식구들이 다가와 만져도 괜찮은 모양이다. 유일한 걱정이 가끔 하양이와 영역 싸움을 하는 거라고 하셨다. 중성화를 한 뒤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밤에 가끔 둘이 으르렁거린단다. 하양이와 콩콩이를 분리하는 게 조금 신경 쓰이지만 다른 걸로 다투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콩콩이는 하양이에게 내가 더  귀여움 받는다고 하고 하양이는 내 덕분에 네가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는~. 가설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고양이도 듣는 귀가 있으니 아주 아니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기는 하다...


 얼마 전 제주에 갔을 때 조카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제주 고양이들은 츄르라는 말을 알아듣는다고. 심지어 가방에 없어 차에 갔다 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면 거기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린단다. 고모도 먹을 거 없을 때 냥이들에게 아는 척 하지 말라는 주의까지 주었다. 설마 그 정도까지? 라며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조카딸은 사람은 고양이랑 오래 살아도 고양이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고양이들은 사람말을 제법 알아듣는 걸 보면 고양이가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떡여지는 건 뭔지?


 냥이들 눈치를 보며 얼른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바로 도망가 숨지는 않은 덕이다. 소파에 앉으며 보니 콩콩이가 런웨이를 걷는 듯 천천히 내 앞을 지나간다. 거실을 무대로 바꾼 느낌이다. 런웨이를 걷는 미남 모델 저리 가라 하게 걷는 동작이 기품 있다. 심지어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멋진 모습을 감상할 시간을 나에게 충분히 베푸는 것처럼 보였다. 피식 웃음기가 돌았다. 정말 피지컬이 장난 아니라고 자랑하실만 하다. 콩콩이가 왜 사랑을 많이 받는지 알 것 같다. 행복해 보인다. 물론 제일 행복해 보이는 분은 이쁜이 엄마지만. 냥이들만 봐도 웃음기가 얼굴 전체에 퍼지신다.

 

 냥이들은 날씬하다 못해 날렵해 보였다. 내 의문은 건사료나 캔 사료를 여기저기 두고 마음껏 먹이는데 입양한 지 8개월이 넘어가는 데도 전혀 살이 찌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는 분이 기르는 고양이는 하루 소주 반 컵 정도 건사료만 먹이는데도 살이 찐다고 걱정하셨는데. 사실 남 이야기가 필요 없다. 우리 집에서 까미 전에 기르던 녀석도 건사료만 먹였다. 그런데도 금방 10킬로가 육박하는 비만 고양이가 되어 임신 냥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수컷인데??? 이쁜이 가족은 알아서 절식할 정도로 똑소리 나는 냥이들인 모양이다.


 싸주신 두릅과 머우대가 든 봉투를 들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오며 살짝 반성을 했다. 밤에 소리 내고 돌아다니면 시끄럽다고 혼내고 새벽에 뭘 꼭 먹어야 하냐며 잔소리하고 안아주다 무거우면 작작 먹으라고 야단치고... 내가 뭘 한 거지???


 이쁜이 가족들을 보면 삶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까로야, 상심하지 말고 기다리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