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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6. 고양이 춤

첨부한 사진은 입양되었거나 수개월 이상 볼 수 없는 고양이들입니다.


 

다른 냥이들이 새 밥을 찾아 우르르 몰려들어도 까로만 먹던 밥을 그대로 먹고 있다. 이 시절에도 까로는 맏형 느낌이 강했다. 점잖고 품격 있는 어린 신사 같았다.

 고아가 되자 마음이 한없이 위축되고 공허하기까지 한 날이 계속되었다. ‘마음이 힘들다,’는 그 시간을 내가 보내는 중인 것 같았다. 어디선가 읽은 감정적 한계를 조정하는 내면의 장치가 고장 난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 냥이 엄마를 만났다. 은토끼님이다. 공원 캣맘 중의 고수를 만난 것이다. 그분은 정말 대단했다. 그분은 냥이들을 돌보는 각종 정보 제공자며 안내자가 된다. 심지어 애들 사료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까지 알려주셨다. 무엇보다 공원 냥이들을 그렇게 사랑해가며 돌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지금도 매일 놀라고 있다. 진심은 하늘도 알아주는 법이다. 나도 모르게 존경심이 생겼다. 나는 그분을 만나 지금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니 얼마간 여유도 얻을 수 있었다. 조카딸이 있는 제주를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끼들은 나날이 영역을 넓혀가는 게 보였다. 제 엄마를 따라 여기저기 공원을 배우는 모양새였다. 은거지에 아무도 없는 날도 비일비재였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아롱이를 찾으러 다녔다. 조릿대 주변에 야트막한 둔덕이 있다. 크기가 제법 큰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거기에서 우르르 내려왔다. 은거지로 밥을 주러 가는 나를 따라다니는 고양이들 다섯 마리. 그리고 아예 주변에서 나나 은토끼님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다롱이까지. 정신없이 밥을 찾는 녀석들에게 밥을 주는데 뭔가 이상했다. 모두 여섯 마리여야 했다. 우르르 몰려와 밥을 먹는데 아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미는 은거지에서도 가장 나중에 몸을 드러낸 녀석이다. 소심쟁이에 겁이 많아 보여 늘 신경이 쓰였다. 어미 아롱이도 먹는 데 정신이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즈음은 새끼들 모두 돌담을 뛰어 올라와 밥을 먹었기에 어디 숨은 것도 아니었다. 아롱이한테 물어봤다. 

"아롱아! 아미 안 보이는 데 어디 있니?" 

 그러나 먹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는지 고개도 들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 새끼가 안 보이는 데 밥이 넘어가니? 엉!” 

 아무 반응도 없었다. 참고로 아롱이는 밥 먹을 때 건드리는 걸 싫어한다. 밥을 느리게 주는 것도 싫어한다. 밥은 잽싸게 내놓아야 한다. 손이 좀 느리다 싶으면 언제나 다칠 걸 각오해야 할 정도다. 

 결국 아미를 찾으러 나섰다. 야트막한 둔덕을 내려오면 사람과 개가 다니는 길이다. 둔덕은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사람들이 줄지어 다니는 길 옆 억새 풀숲에 아미가 애처롭게 숨어 있다 내가 부르니 ‘에용~’하고 반응을 한다. 반응만 있지 절대 나올 녀석이 아니었다. 데려올 수 없으니 어디선가 밥을 구해다 줘야 했다. 이미 내가 들고 간 밥은 모두 털렸기 때문이다. 그즈음 애들이 쑥쑥 자라면서 먹이의 양이 장난 아니게 들었다. 애들 먹이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세 마리에서 한 마리로 다시 여섯 마리로 늘어난 냥이 식구들. 은토끼님은 거기에 더해 새끼 냥이들이 먹는 영양 간식도 솔찮게 사시는 눈치였다. 

 풀숲에 혼자 숨어 오가지도 못하는 아미를 위해 건사료를 근처에서 구해다 주었다. 배고픈지 건사료 먹는 걸 보고 '아미야. 아롱이 엄마 배 채우고 정신 차리면 너 데리러 올 거니까 거기 잘 숨어 있어.'라며 자리를 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거기 숨어 있는 아미의 존재를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낮에 아롱이 식구들은 주로 배수로나 조각품들을 엄폐물 삼아 움직였다. 새끼들도 이제 공원의 지리나 이용 가능한 엄폐물 등을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서서히 독립할 시기였다. 나는 그즈음 아롱이 행동과 은토끼님 그리고 각종 정보 등을 읽으며 냥이들에 대해 이것저것 배우고 있었다. 심지어 동물병원에 가서 새끼들 상태에 문제가 되는 것들도 물어봤다. 무료 상담을 자주 받은 것이다. 그건 분명히 나에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으로 남았다.

 아롱이는 새끼들까지 밥을 주는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어느 날은 밥 주기에 정신이 팔린 내 앞에 쥐를 물어다 놓았다. 수십 년 만에 고양이에게 쥐를 선물 받은 나는 혼비백산했다. 대학시절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도 참새나 쥐를 잡아 내 앞에 자랑스럽게 내밀었었다. 녀석은 그 일로 내 방 출입을 금지당했다. 그 일 이후로 정말 수십 년 만이었다. 아롱이에게  앞으로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줬다. 그래서인지 선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문제는 가져다 놓은 죽은 생쥐였다. 가져다 주기는 해도 치우지는 않았다. 새끼들이 밟거나 가지고 놀까봐 집에서 꽃삽을 들고나갔다. 멀찍이 묻어버렸다. 

 조금씩 안면을 익힌 새끼들과 강아지풀이나 조릿대 등으로 조금씩 놀아주기도 하면서 유달리 비가 많이 오는 그 여름을 그럭저럭 보냈다. 새끼들은 나나 은토끼님을 제 엄마 못지않은 보호자로 인식하는 모양이었다. 점차 신발 위에 올라가 앉거나 먹이를 가져가는 가방에 들어가 앉기 시작했다.  

아롱이 새끼들은 비닐봉지나 상자를 아주 좋아했다. 

 작년 여름에는 거의 매일이 비비비였다. 7월 말이 되면서 새끼들은 조금씩 개별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5개월이 되어가니 독립을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평소 물 한 방울 없던 배수로에 제법 많은 빗물이 흘렀다. 그날은 비 때문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밥을 주려고 부르러 다니다 수채화 같은 풍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배수구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다 적셔가며 장난을 치는 까로와 까미를 보게 된 것이다. 빗방울이 제법 세차게 내리는 데도 거리낌 없이 배수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방울을 튕기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제 세상을 만난 듯 첨벙거리며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녔다. 고양이는 물을 싫어한다는 오랜 편견을 나는 그 순간 완전히 깨 버렸다. 마치 고양이 춤을 구경한 느낌이었다. 평소 맏이 느낌이 강한 까로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훔쳐본 것 같았다. 애들 부르는 걸 잊고 한참을 구경했다. 사진 찍는 것도 잊었다. 사람만 없으면 고양이들이 마음껏 살 수 있는 게 공원인데. 이런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여기가 애들이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장소구나! 이런 착각까지 했다.

 은토끼님은 이제 아이들이 자꾸 옮겨 다니지 못하게 어딘가 정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새끼들은 더 이상 다치지 않고 무럭무럭 자랐다. 갈수록 먹여야 하는 밥의 양만 늘었을 뿐이다.  연일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서서히 가을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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