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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8. 중성화 꼭 시켜야 하나요?


 여름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이었다. 은토끼님이 휴식시간에 좀 보자고 하셨다. 박물관 뒤에 있는 벤치에서 만났다. 거기서 심각하게 아롱이 새끼들 중성화 이야기를 꺼내셨다. 네 마리에 백만 원만 받는 곳 있으면 중성화를 시키고 싶다고 하셨다. 중성화에 대해 여기저기 알아보신 모양이었다. 5개월이 넘어가니 고민할 일이었다.나도 구청에 중성화에 대해 문의했었다. 그러나 구청 길냥이 중성화 사업은 더 이상 사업비가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그 해 예산을 모두 소진해 다음 해 2월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일반 동물 병원의 중성화 비용은 생각보다 고액이었다. 그 무렵 은토끼님은 아롱이 새끼들을 위해 이미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고 계셨다. 그걸 위해 수당이 더 많은 명절이나 휴무일에 자원 근무하시는 걸 나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건강에 무리가 갈 게 분명했다. 애들 캔 값 일부를 들이는 나도 한계라는 생각이 드는 중이었다. 그래서 좀 지나치신 거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그랬더니 공원에서 기껏 일 이년 사는데 맛있는 거라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하셨다. 할 말을 잃었다. 본인을 위한 지출을 철저히 줄여 거기에 쓰신다는데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양이들이 원해서 야생에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애틋한 긍휼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겠는가?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더구나 지속적으로 돌보는 건 더 힘겨운 일일 것이다.


 공원 고양이의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건 나도 이해한다. 그러나 솔직히 난 고양이들 중성화에 그리 찬성하는 편이 아니었다. 귀가 잘린 중성화 냥이들이 공원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다롱이만 해도 악착같이 아롱이 가족에게 들러붙어 그렇지 늘 떠중이 신세였다. 아롱이는 함께 끼어들어 밥을 먹는 다롱이를 크게 견제하지는 않았다. 나만 해도 처음에는 다롱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냥 놔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롱이는 조금이라도 새끼들을 건드리는 눈치가 보이면 매섭게 닦달을 했다. 

 하루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다. 밥을 주러 애들 밥자리 주변에 거의 도착해 갈 무렵이었다. 고양이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갔다. 워낙 소리가 시끄러워 모르려야 모를 수 없기도 했다. 참고로 고양이들은 밝은 낮에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안전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겁에 질린 듯 소리를 지르는 고양이는 다롱이였다.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갔지? 의문이 생길 정도의 높이였다. 다롱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가지가 휘청거렸다. 아롱이는 조금 더 낮은 가지에서 사납게 다롱이를 혼내는 모양새였다. 나는 아롱이가 다롱이를 혼내는 장면을 꽤 여러 번 목격했다. 다롱이가 새끼들을 조금이라도 앞발로 치거나 아르렁거리는 낌새가 보이면 어느새 아롱이가 달려와 혼을 냈기 때문이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자기 먹고 있는 밥에 입을 대도 슬그머니 물러나는 녀석이 아롱이다. 게다가 덩치는 다롱이가 조금 더 큰 편이다. 엄마는 자식들의 위험 상황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모양이라며 나는 가끔 신기해했다.

 결국 사람들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아롱이를 불러 밥자리로 데려왔다. 

 "아롱아. 뭔 일로 화가 났는지는 모르지만 밥이나 먹어. 다롱이한테도 대충 해라. 너 성질 더럽다고 온 동네에 소문나겠다."

 슬쩍 평소 아롱이에 대한 내 본심을 꺼냈다. 그러면서 사람들 구경거리까지 가게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알아 들었으면 눈 한 번 깜빡여보라며 재촉까지 했다.  

 내가 그즈음 알게 된 일은 하나 더 있었다. 토성 꼭대기 주변에 꽤 여러 마리의 토끼들이 살고 있었다. 토성 관리 문제와 주민들의 민원 덕에 토끼들을 잡아 중성화시켰단다. 결국 토끼들은 소멸되었다. 공원에 토끼를 유기하지 말라는 안내문도 토끼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날 은토끼 님에게 이런 헛소리를 했다. 새끼들이 공원에서 살아가려면 혼자 외롭게 지내서는 안 된다고. 그러니 내년 2월 중성화 사업이 재개될 때까지 참아보자고 말이다. 그때까지 새끼를 가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만약 새끼를 가져 낳게 되면 우리가 비용을 내 안전한 곳에서 중성화를 시키자고. 적어도 한 번은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암컷인 아로와 아미에게 기회를 주자고 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말이 이듬해 나나 은토끼님을 얼마나 괴롭게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듬해에 생길 후폭풍에 대해 아무 대책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던 것이다. 냥이들의 생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도 가능했을 터였다. 

 아롱이처럼 새끼들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내 말에 은토끼님도 마음을 돌리신 것 같았다. 은토끼님은 아롱이 가족 말고도 따로 돌보는 고양이가 있었다. 턱시도 고양이 귀요미였다. 언제 독립했는지 모르겠지만 귀요미도 늘 혼자 외롭게 지냈다. 그게 항상 마음에 걸리셨다고 하셨다. 귀요미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경계심이 많은 고양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어느 순간 사람을 심하게 경계한다고 아쉬워하셨다. 그래서 우리 둘은 귀요미가 이미 중성화되어 풀려난 녀석인 줄 알았다. 이듬해 봄 중성화 사업이 재개되고 그 누군가에게 포획되어 난리가 나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즈음 나는 좀 헷갈려했다. 우리 둘이 아롱이 새끼들에게 무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돌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롱이에 이어 새끼들의 삶까지 너무 깊이 연루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건 아닌지 그걸 잘 몰랐던 것 같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아로가 갑자기 다리를 절었다. 아로는 나무 올라가기를 좋아하던 녀석이다. 우리가 모를 때 떨어진 모양인지 다친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로의 상태를 찍어 동물병원에 가지고 가 약을 구해와야 했다.

아로는 나무 타기를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다리를 다친 다음에는 더이상 나무에 올라가는 걸 본 적이 없다.


 멀쩡한 몸으로도 살아가기 힘든 공원에서 다리를 전다면 얼마나 심각한 일이 생길지 몰랐다. 무엇보다 공원에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모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목줄을 느슨하게 풀어 일부러 고양이를 공격하게 조장하는 경우도 종종 맞닥트린다. 아롱이도 주차장 주변에서 우리를 기다리다 여러 번 물릴 뻔한 일이 있었다. 나도 그런 아찔한 장면을 봤다. 그러니 은토끼님이 목줄 관리가 부족한 개 주인에게 마구 화를 내시다 싸움까지 갈 뻔한 일은 더 잦았을 것이다. 

 약 처방을 하면서 동물 병원 선생님은 나에게 계속 같은 주의를 주었다. 냥이들이 자력으로 살아가게 놔둬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생님 의도는 알 수 있었다. 아이들 돌보기가 힘들다고 실컷 정을 들여놓고 손을 놔 버렸을 때의 문제점 때문임을.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나는 새끼들 돌보기를 그만 둘 의사가 전혀 없었다. 나름 자신한 것이다. 난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라고. 

 중성화가 되지 않은 고양이를 돌보는 데 끝이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성화를 시켜도 문제가 그렇게 많다는 것도 잘 몰랐다. 어떤 판단이 옳은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롱이처럼 무조건 중성화를 시켜 야생에 돌려보내기만 하는 게 또 다른 인간 중심의 폭력일 수 있다는 건 안다. 중성화를 시킨 다음 돌봄이 끊어진다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중성화 이후 돌봄을 지속해도 영역 싸움이 생기면 금방 도태되는 고양이들도 있다. 우리가 돌보던 또 다른 고양이 고등어처럼.

이듬해 제일 먼저 중성화를 시킨 고등어. 한쪽 눈이 망가진 상태로 애들 밥자리에 들어온 녀석은 중성화 얼마 뒤 남은 눈을 다친 상태로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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