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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7. 고양이 집 도난 사건

- 첨부한 사진은 입양되었거나 수개월 이상 볼 수 없는 고양이들입니다.


 오 개월이 지나자 새끼 냥이들이 서서히 어디론가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이 무렵 나는 냥이들에 대해 이것저것 더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털 색깔에 따라 암컷과 수컷 비중이 좀 다르다는 거였다. 삼색이들은 거의 암컷이라고 했다. 아롱이만 새끼를 가졌던 것도 그제야 이해되었다. 점박이 젖소 무늬 아이들이나 치즈 냥이들은 수컷 비중이 좀 높다고 했다. 모두 은토끼님이 알려주셨다. 온몸이 까만 털인 까미는 그냥 봐도 수컷처럼 보였다. 아롱이 새끼들은 하는 행동만으로도 암수의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9월이 되자 냥이들이 보이지 않아 찾으러 다니는 일이 더 잦아졌다. 매일 내리던 비도 잦아드는 모양새였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었다. 새끼들은 미술관 주변을 완전히 벗어났다. 사람들 출입이 금지된 언덕 주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먹이 주는 장소를 옮긴 것도 그 시점이었다. 주변에는 억새들이 제법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제법 자란 냥이들이 몸을 숨기기 편해 보였다. 어떤 날은 박물관 뒤 변압기 주변으로 모두 자리를 옮겨 있기도 했다. 내 생각에는 아롱이가 새끼들이 살만한 서식지를 부지런히 알선하는 느낌이었다. 

 새끼 4마리를 한꺼번에 만나는 일도 어려워졌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박물관 직원분이 변압기 주변에서 밥을 주는 우리를 만나러 뛰쳐나오신 것이다. 경비 관리를 위해 cctv를 지켜보시다 뛰어나오신 모양이었다. 그곳은 사람들의 통제 구역이었다. 박물관의 귀중한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 설비 등이 그곳에 몰려 있었다. 고양이들이 전선을 물어뜯거나 여기저기 함부로 드나들며 중요한 선을 건드려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었다. 

 나와 은토끼님은 뭐라고 변명도 하지 못했다. 생각이 부족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좀 민망했다. 혼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알겠다고 했다. 더구나 은토끼님은 박물관 직원이셨다. 내가 보기에도 엄청 민망해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일은 민망함의 초기 단계에 불과했을 것이다. 박물관 주변에서 고양이 관련 문제가 일어나면 문책성에 가까운 말들이 은토끼님에게 상당히 오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모두 아롱이 덕분이었다. 왜 민망함은 우리의 몫인가? 사고는 모두 아롱이가 치고 있는데! 슬쩍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애들을 이사시켜야 했다.


 원래 밥을 주던 억새풀 주위로 새끼들을 데려오기로 했다. 무조건 박물관에서 떨어진 곳이어야 했다. 일단 하루 밥을 주지 않기로 했다. 하루 2, 3번씩 밥을 주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냥이들이 배가 고프다 못해 지쳐갈 시간을 일부러 노렸다. 

 늦은 시간에 박물관 뒤에 가서 부르자 애들이 다 뛰어나왔다. 기다린 티가 역력했다. 평소에는 찾으러 다녔는데 그날은 역전된 것이다. 다들 냐옹 소리까지 내며 우르르 따라나섰다. 냐옹 소리가 '밥이다. 밥. 밥. 밥!'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이들을 원래 있던 밥자리로 모두 데려왔다. 거기서 밥을 주며 너희들은 이제 거기에 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앞으로 밥은 여기서 준다며. 과연 새끼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알아들었다. 다음 날부터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아니, 그런 착각을 했다. 그때 우리가 몰랐던 게 있다. 박물관 뒤는 새끼들에게 아롱이 엄마가 알선한 보금자리였다는 사실이다. 점차 밥자리에서 아롱이를 보기 힘들어졌다. 나중에는 억지로 데려와도 민망한 듯이 애들 옆에 가까이 오지 않고 멀찍이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애들 밥자리에서 가출한 아롱이를 찾으러 다니기 힘들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했으니.


  은토끼님은 애들이 옮겨오기 전부터 둔덕 주변에 급식소를 설치하셨다. 비를 피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집도 만들어 주셨다. 내가 보기에 거기에 들인 돈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어떤 날 가보니 사람 키만 한 재료를 오리고 자르고 붙여 고양이들 집을 만들고 계셨다. 물어보니 집에서 택배로 받아 출근길에 들고 오셨다고 하셨다. 분명 집이 멀어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셔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무슨 설계도를 가지신 것도 아닌데 뚝딱뚝딱 만들어 놓고 캣잎 가루를 뿌려주셨다. 냄새를 맡은 아이들은 저절로 거기 들어가 아주 편안하게 지냈다. 만들기에 소질이 없다고 손 놓고 사는 나는 구경만 하다 돌아왔을 뿐이다.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걸 내가 가장 잘 알아서였다. 그보다 나는 은토끼님이 고양이들에게 들이는 비용에 대해 슬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너무 지출을 많이 하시는 게 아닌지 고민될 정도였다.


 사람들 눈에 덜 뜨이는 곳에 집을 설치해서인지 새끼들과 다롱이는 밤이면 거기 들어가 잠을 자는 모양이었다. 아롱이는 좀 달랐다. 집에 들어가 자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곧 다른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애들 집들을 몰래 가져다 버렸기 때문이다. 돈을 들여 애써 만들어준 집들이 없어질 때마다 우리들은 황당했다. 처음부터 그곳에 고양이집 설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 짓인지는 알고 있었다. 직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 쓰레기통을 살피고 다녔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고양이도 공원의 일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당혹스러웠다. 그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싶었다. 졸지에 집을 잃고 나앉은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해 집을 찾아다니며 느낀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죄 없는 아이들 집을 가져다 버리다니.

  난 지금도 집을 가져다 버린 사람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묻고 싶다. 고양이 급식소나 집을 설치해 주는 게 돈이 남아 돌아서는 아니다. 그걸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 가져가 다른 길냥이를 위해 사용한다면 그래도 그런 행동은 이해는 안 되어도 용서는 할 수 있다. 어딘가에 사는 길냥이를 위해 쓰인다고 했으니 말이다.

할 수 없이 다시 만들어준 집에는 써붙였다. 이 집은 사비를 들여 이곳에 서식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준 집이니 절대 파손하거나 이동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해 겨울 우리가 겪은 일에 비하면 그건 유치원 아이들 장난 정도에 불과했다. 사람의 심성이 그렇게 못될 수 있나 싶을 일이 눈 내리고 강풍이 부는 한겨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급식소 주변에서 까미를 껴안고 쉬는 까로. 은토끼님이 사 주신 스크래처에서 애들은 이렇게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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