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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10. 까미 입양을 결심하다

 거의 매일 내리던 비가 주춤해진 어느 날이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초저녁 무렵에 공원에 갔다. 오후 근무를 하시는 은토끼님이 냥이들 밥은 이미 살뜰하게 챙기셨을 터였다. 비가 내리거나 해가 환한 낮 동안에는 고양이들도 가능하면 돌아다니지 않는다. 아롱이 새끼들도 낮에는 거의 집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 부분은 제 어미에게 잘 배운 모양이었다. 밥을 들고 가지 않았기에 새끼들이 있는 근처를 그냥 지나치려던 찰나였다. 

 까미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온몸이 까만색이라 멀리서 잘못 봤나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 넷이 온갖 성적 농담을 해 가며 나뭇가지 몽둥이를 든 채 고양이를 몰아 대고 있었다. 그곳은 조각공원의 넓은 잔디밭이라 까미가 숨을 엄폐물도 없었다. 종일 비가 온 뒤끝이어서 사람들도 없어 아주 한적했다. 

 나도 모르게 까미가 도망치는 곳을 향해 뛰었다. 까미를 괴롭히는 녀석들에게 아주 쌍욕을 하고 싶었다. 저질스러운 농담을 하며 까미를 몰아 대던 녀석들은 까미를 부르며 달려오는 나를 보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나는 동물학대로 그 녀석들을 신고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나를 보더니 까미는 돌아서서 달려왔다. 고양이도 놀라면 숨을 헐떡거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단지 검은색 털을 가졌다는 이유로 쫓겨 다녀야 하는 까미의 처지를 그 순간까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에게 다가와 신발 위로 올라오는 녀석 머리를 처음으로 쓰다듬었다. 출입금지 구역이라 평소에는 얼씬도 안 하던 잔디밭에 서서 한동안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마음을 더 굳히게 된 사건은 한 번 더 일어났다. 밥을 주러 밥자리로 가고 있는데 까미가 어디선가 날 본 모양이었다. 부지런히 날 향해 달려오다 어떤 아가씨와 마주쳤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걸어오던 그 아가씨가 비명처럼 지르는 소리들은 나를 너무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어머.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너무 재수 없어. 왜 까만 고양이를 대낮에 돌아다니게 방치하는 거야. 공원은 이런 걸 왜 그냥 두는 거야. 없애 버려야지.” 

 대충 이런 말이었다.

 이미 그 아가씨의 잔인한 말에 속이 있는 대로 상한 나는 정말 그 입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통화를 하던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똑같다고 느꼈다. 나는 보란 듯이 까미를 불렀다. 하이톤의 독설 섞인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찔해 있던 까미는 나에게 달려와 다리에 감겼다. ‘아차’ 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나에게 못된 소리를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그 아가씨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날은 아가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불쾌해하다 못해 열 받아하는 내 표정은 알아봤을 것이다. 나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얼굴과 차림새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세상천지에 가장 못된 마녀의 얼굴처럼 보였다. 왜 나무라지도 못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뭐라고 나무라면 왜 고양이를 공원에 풀어놓고 키우냐며 적반하장격으로 군다. 그런 일을 이미 겪었기에 하는 소리다.


 어떤 친구가 까만 고양이를 본 날은 가족들 중 누군가 사고가 나 다치거나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은 합리적 의심이라고 강변했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쓴 <검은 고양이>라는 소설이 있다. 사람들에게 검은 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심어준 대표적 소설이다. 심지어 공포 소설로 인식하기도 한다. 소름 끼친다고 말이다. 나는 그 소설을 원수 갚은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라 은혜 갚은 고양이라고 바꾸어 말한다. 

 1화에서 말한 고양이를 키울 때 우리 엄마도 고양이를 요물이라며 내 보내라는 소리를 하셨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말은 다 들어드려도 그 말은 끝까지 듣지 않았다. 녀석은 집에 오랜 시간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 집은 4층이다. 밤늦은 시간에 귀가해 1층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현관문 앞에 나와 빨리 오라고 울어대는 고양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을 어디로 내 보낸단 말인가?


 아무래도 까미를 공원에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온몸의 검은 털 때문에 사람들 눈에 더 띄는 탓이었다. 6개월이 되어 가니 아롱이도 아들 하나를 데려가는 데 반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까미는 내가 밥을 주고 돌아설 때마다 나를 따라나섰다. 아마 아롱이에게 내가 까미 데려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걸 봐서일 수도 있다. 고양이들도 자기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새끼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영리했다. 

 아롱이는 

 "내가 까미 데려다 길러도 돼? 괜찮으면 눈 깜빡해 봐." 

 이 방법은 은토끼님에게 배웠다. 고개를 박고 밥만 먹던 아롱이가 나를 보며 분명 눈을 깜빡거린 것 같았다.

 어떻게든 까미를 입양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 무렵 공원에서 살아가야 하는 수컷 냥이들의 힘겨운 삶에 대해서도 조금씩 들었기 때문이다. 까미가 눈을 다친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구역 힘센 수컷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수컷들을 골라 일부러 눈을 망가트린다고 했다. 미래의 잠재적인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려는 의도 같았다. 

  그무렵 들은 말도 있었다. 공원 냥이들을 나보다 오래 돌보시던 분은 일 년 정도면 더 이상 자기가 밥을 주던 냥이들을 보기 힘들다고. 나는 '도시 냥이들도 3년 정도 산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하며 그렇게 짧게 사냐고 되물었다. 지금은 언젠가부터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냥이들을 알게 되면서 그 말이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집안 식구들의 반대가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인간과 동물에게 그렇게 미움 받으며 공원에서 살아갈 까미를 볼 자신이 없으니 내가 데려다 키우는 게 옳다면 빨리 실행에 옮겨야 했다. 마음이 정말 급해졌다. 

 

입양하기 전 까미.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초콜릿 색이었다 점차 까만 녀석이 되어갔다
공원에서 있을 때 까미와 아미는 남매 중 상생이 제일 잘 맞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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