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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11. 입양 과정의 오류


  초등학교 담장에서 입양해 키우던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다음 나는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 다시는 동물을 집에 들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쓰레기로 처리했다. 유일하게 남긴 것은 캣타워였다. 화분대로 쓰기 위해 앞 베란다로 내보냈다. 그랬던 내가 다시 집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대청소를 했다. 공원에서 살던 까미가 집에 들어왔을 때 숨을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청소가 우선이었다. 앞뒤 베란다에 있던 화분들과 각종 집기 등을 대거 정리해 처리했다. 스크래처와 각종 고양이 물품들이 집으로 배달되자 식구들이 까미를 데려오려는 내 뜻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독립한 작은 아들 방 베란다는 아롱이를 만나는 시점부터 천천히 대리점 창고가 되어갔다. 우리 집에 배달되는 택배의 절반은 고양이 먹이와 물품들이 된 지 한참 전이었다. 작은 아들은 여기가 고양이 물품 대리점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했지만 까미 데려오는 걸 제일 먼저 찬성해 주었다.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고양이 한 마리는 키우는 게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작은 아들이 영국에 살고 있을 때였다. 아들을 보러 영국까지 간 나에게 갑자기 공황장애가 왔다. 세상에서 가장 씩씩하고 건강한 사람이 엄마라고 믿었던 아들은 내 상태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내 정신 건강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입양을 권했다. 

 까미 이동장을 주문해 데리러 갈 날을 정했다. 차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동장은 까미가 집에 온 뒤 얼마 되지도 않아 망가졌다. 이갈이를 하면서 여기저기 물어뜯어서였다. 달랑거리는 지퍼를 보면 물어뜯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남편은 돌아누워 한숨 몇 번 쉬자 내 눈치를 보더니 데리고 오라고 했다. 문제는 큰아들이었다. 남편처럼 털 알레르기는 없어도 집에서 키우던 녀석이 죽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 나만 힘들었던 건 아니었다. 약이나 사료를 토하고 오줌을 여기저기 쌀 때도 말없이 그걸 치웠던 아들이다. 그러나 그때의 충격이 크긴 컸던 모양이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또다시 그런 일을 겪을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더 문제는 두 아들 방에 있는 컴퓨터 등 각종 장비들이었다. 고양이가 건드리거나 깨물기라도 하면 전기 배선이라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까미가 집에서 사고를 치지 않고 적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사람이 없을 때는 두 방 문을 닫아두고 출입을 금지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2020년 9월 21일. 저녁 무렵 작은 아들과 이동장을 들고 공원에 나갔다. 은토끼님에게는 미리 까미의 입양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얻었다. 그것도 가족들이 어느 정도 합의해 준 다음이었다. 거기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집에서 적응을 못하면 공원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는 소리까지 했다. 까미는 태어나 이미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공원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봐도 그런 말은 신중하다 못해 비겁한 소리였다. 

 까미를 데리러 간 자리에 아롱이와 애들이 모두 있었다. 문제는 재택근무를 한다며 가끔 아롱이와 애들을 보러 오는 아가씨를 만난 데서 생겼다. 까미는 나랑 집에 가자는 말에 순순히 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동장 지퍼를 잠그려는 순간 까로가 와서 서성거리는 걸 본 그 아가씨는 기왕이면 얘도 데려가라면서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깨알같이 지퍼까지 닫아주는 바람에 어어! 하는 순간 까미와 까로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까미와 까로는 차에 타서도 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둘 다 바람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까로의 뒤를 까미가 따라가는 식이었다. 온 집안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유일하게 청소를 하지 않은 세탁기 뒤에서 찾았다. 세탁기를 들인 지 5년은 된 거 같은데. 그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풀풀 날릴 장소였다. 거기서 절대 나오지 않았다. 겁을 주기도 그래서 일단 놔둬 보기로 했다. 

 공원에서 쓰던 애들 밥그릇을 나는 일부러 가져다 두었었다. 익숙한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적응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건사료와 캔을 넣어두고 물도 화장실도 마련해 놓고 기다렸다. 일단 아이들이 집에 적응하는지 살펴봐야 했다. 공원 여기저기를 마음껏 다니던 아이들에게 집은 갑갑하고 닫힌 공간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5개월이 되니 공원 여기저기를 혼자 탐색하고 돌아다니는 까미 
공원에서 까로와 까미 모습- 여유와 한가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오래전 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남자중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조회를 하러 들어가 보니 교실이 왁자지껄하고 시끄러웠다. 1학년들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문을 열던 나는 정말 놀랐다. 남학생들 몇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공중으로 던지며 받기 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고양이를 빼앗아 일단 교무실 한쪽 상자에 두었다. 먹이도 없어 인근 가게에 가 참치 캔 하나를 사 넣어주었다. 할 수 없이 퇴근할 때 집으로 데려왔다. 자전거로 통학하던 때라 등에 메는 가방에 넣어 일단 집에는 무사히 데려왔다. 대충 씻기는 것까지도 마무리해 병원에 가려고 문을 나섰을 때였다. 이동장도 없어 데려온 가방에 넣은 상태였다. 방심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공동 출입구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순식간에 가방의 빈틈을 벌리고 빠져나갔다. 이름도 짓지 못했기에 나비라고 부르며 사방팔방 찾아봤지만 절대 돌아오지 않았다. 졸지에 아직 어린 고양이를 생판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잃어버리게 된 나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애들이 데려왔다는 동네 근처에서라도 풀어놓았을 텐데. 고양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질 수 있는지 전혀 예상치 못한 실수였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려 한동안 퇴근하면 녀석을 찾으러 다녔다. 그러나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일단 현관 문단속과 앞뒤 베란다도 잠금장치를 살폈다. 집을 나가 공원을 가려면 24시간 차가 씽씽 달리는 대로를 건너가야 한다. 행여 생길 지 모를 문제를 미리 점검해야 했다. 둘은 기척 하나 없이 세탁기 뒤에 숨어 있다 모두 잠든 밤에만 나와 밥을 먹고 배변을 했다. 남편과 아들이 집에 있을 때는 그곳에서 작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숨어 지냈다. 그래도 까미는 내가 혼자 있는 낮에는 주위를 살피고 나와 털퍼덕 거실에 주저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까로가 문제였다. 

입양된 후에도 까미는 툭하면 공원이 보이는 베란다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까미가 바라보는 쪽에 공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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