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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12. 고양이 하울링

 밤이면 베란다로 나가 어딘가를 향해 울어대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공원에서 아롱이 새끼 네 마리의 소리를 들은 적이 별로 없다. 한 번은 밥을 주며 쭈그리고 앉았다 일어선 내가 뒷걸음질 쳤을 때였다. 마침 옆에서 어른대던 아로 꼬리를 밟은 모양이었다. 아로는 사람처럼 '아!' 하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것도 높은 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소리였다. 미안해하며 절절매는 나를 흘깃 보더니 더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들인 날 밤부터 까로가 하울링을 하기 시작했다. 공원을 향해 누군가를 부르는 느낌이었다. 방충망 밖을 향해 울어대는 까로의 울음소리는 애처롭다 못해 처연할 정도였다. 나는 냥이들은 입양만 해 줘도 당연히 고마워할 거라는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었다. 정말 한심한 생각이었다. 까로 입장에서 보면 그건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순간의 실수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집으로 입양된 사실을 까로라고 왜 모르겠는가? 결국 벽 하나를 마주한 이웃에서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러 왔다. 

세탁기 뒤에 숨어 나오지 않는 까로와 까미. 식구들이 있으면 이렇게 들어가  숨어 있다.
식구들이 나가고 난 뒤 나와는 있어도 까로는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까로의 하울링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공원에 있는 그 누군가를 부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롱이 새끼 네 마리를 돌보면서 고양이들의 인지력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장 아롱이만 해도 어디를 지키고 있어야 은토끼님이나 나를 만날 수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 수시로 은신 장소를 바꾸어도 우리가 찾기 어려운 장소로 완전히 이동해 없어지는 일은 없었다. 공원에 드나드는 수백수천의 사람들 속에서도 나나 은토끼님을 정확히 알아보고 부르는 소리에 나타났다. 자기가 나왔는데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뛰어오며 그제야 작게 '냐옹' 소리를 냈다. 

 우리는 캔 사료에 먼지가 들어가거나 여름이면 파리가 끓는다고 남은 사료의 뚜껑을 닫아둔다. 새끼들은 뚜껑을 직접 열고 먹이를 꺼내먹는다. 제법 꽉 닫힌 뚜껑도 연다. 입으로 그릇을 물어 바닥에 떨어트리는 걸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밥이 들어 있는 뚜껑이 열리는 걸 아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들은 다른 고양이들이 아롱이 가족들 먹이를 가로채는 일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공원 냥이들 중에 유일하게 그릇의 뚜껑을 열 수 있는 고양이들이 아롱이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까로의 인지력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박물관 뒤에서 밥자리로 이사시킬 때도 세 마리 냥이들은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까로는 다른 길로 질러 와 있었다. 밥자리에 가 보니 거기에 이미 와 있었던 것이다. 공원 냥이로 살아갈 준비가 다 된 녀석이 까로라는 생각을 여름을 지나면서 나는 자주 했었다. 무엇보다 까로는 선호하는 사람이 있었다. 고양이는 집사를 직접 택한다. 그걸 나는 간과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아미를 입양해야 할 때도 아미는 나를 택하지 않았다. 

 까로의 하울링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은토끼님에게 의논했다. 까로를 공원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한 것이다. 은토끼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당장 데려오라고 하셨다.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맡아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집에 일단 들어갔던 애들은 다시 내보내선 안된다고 하시면서.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한다면서 입양까지 하시지는 말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당장 이동장을 들고 오셔서 데리고 나와 달라고 하셨다. 어차피 딸이 키우던 고양이를 데리고 독립할 거라면서 집에서 기를 수 있다고 하시는 말에 까로를 은토끼님에게 보내기로 했다.

 6개월이 지나가는 아이라 나는 까로가 이미 여자 친구를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었다. 밥자리에 느긋하게 나타나는 녀석을 그 무렵 자주 봤기 때문이다. 까로를 데려가시는 날 남은 근무를 하시는데 이동장 속이 답답한지 울음소리를 내더란다. 

 은토끼님이 

 "까로야. 나랑 가기 싫다는 거니?" 

 이렇게 물어보셨다고 하셨다. 그랬더니 까로가 어떻게 했을까? 소리를 멈추고 갑자기 조용해졌단다. 믿어지는 소리일까? 나는 믿는다. 까로가 택한 집사는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냥이들을 집으로 데려오던 날 가족들에게 어쩌다 까로까지 데리고 오게 되었다는 설명을 할 때 고양이들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을까? 나는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눈치 천 단인 공원 냥이들 중에서도 아롱이 새끼들은 특히 영리하다는 걸 전혀 생각 못한 나의 뼈아픈 실수였다. 까로는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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