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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13. 빈 둥지 증후군

 아롱이를 만난 가을이 돌아왔다. 드넓은 조각공원의 잔디가 가을색을 입어 매일 더 짙은 황금색으로 바뀌어갔다. 이제 공원에는 암컷 세 마리가 남았다. 어쩌다 보니 아롱이 곁을 든든히 지켜줄 수도 있었을 수컷 두 마리만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까미와 까로 입양과 비슷한 시기에 고등어 무늬 냥이가 밥자리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롱이 새끼들보다 체격이 더 작은 걸로 보아 갓 독립한 냥이로 보였다. 처음에는 애들이 밥 먹는 자리 저 멀리서 자기가 왔으니 밥을 달라고 냥냥거렸다. 밥을 안 줄 수가 없었다. 한쪽 눈이 완전히 상해 있었다. 실명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상태로 와서도 밥을 청하는데 어떻게 주지 않겠는가? 잘못했으면 까미도 저 지경이 되었을지 모른다 싶으니 볼수록 안쓰러웠다. 나는 더 이상 고양이들 이름을 짓지 않았다. 이름을 짓는 무게를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다. 녀석을 안 부를 수 없어 색상에 따른 분류 그대로 고등어라고 불렀다. 그래도 녀석은 그걸 자기 이름으로 찰떡같이 알아들어 나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처음 고등어는 멀찍이서 밥을 얻어먹었다. 가까이 가면 도망을 다니던 녀석이었다.
아이들과 밥자리에 완전히 합류해서 밥을 먹는 고등어. 수컷이었다.


 10월 초까지만 해도 아롱이는 딸들이 사는 주변을 좀 오가는 눈치였다. 하지만 점점 더 딸들과 함께 있기를 꺼려하는 게 우리 눈에도 보였다. 10월 막바지 무렵 어느 날이었다. 나는 조각공원 잔디밭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우연이었다. 아로 아미와 어미 아롱이 셋이 조각품을 엄폐물 삼아 박물관 뒤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유롭게 잔디밭을 뛰는 삼색이 세 마리의 모습이 그림 같기도 했지만 그 암컷들의 운명이 왜인지 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날 아롱이를 따라 박물관 뒤로 아로와 아미가 잠자리를 옮겼으려나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로 아미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다음부터 아롱이를 억지로 밥자리로 데려가도 문제였다. 자기 주변으로 다가오는 아로나 아미에게 아르렁거리며 야단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내가

 "아롱아? 딸들한테 왜 그래?"

 할 정도였다. 고양이들의 생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한 잔소리였다. 나도 정말 아는 게 없었다. 멍청한 소리를 하며 아롱이를 혼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 독립은 이렇게 시키는 거구나 싶어 애잔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아롱이는 가끔 새끼들 집 주변을 돌며 점검도 했다. 바로 튀어나오기는 했으나 집이 튼튼한가 들어갔다 나오는 걸 본 적이 있어 하는 말이다.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11월이 되자 아롱이는 완전히 박물관 주변으로 옮겨갔다. 문제는 다른 데서 생겼다. 갑자기 아롱이가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밥을 먹이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도시락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줄 알았다. 자기 밥은 이게 아니라며 냄새만 맡다 돌아선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 매번 밥을 먹다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먹다 말고 나를 따라나섰다. '입양해 달라는 건가?' 싶어 더 미안했다. 두 마리가 입양된 뒤 아로와 아미도 우리들 신발 위로 자주 올라갔다. 심지어 다롱이까지 비슷한 행동을 했다. 그래도 밥자리에는 냥이들 여럿이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마 은토끼님도 나와 비슷한 일을 수시로 겪으셨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아롱이를 먼저 찾아 데리고 움직여야 했다. 매번 밥을 먹일 때마다 애들 밥자리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반복했다. 내가 출입하는 공원 문까지 따라나서니 방법이 없었다. 아롱이는 사람에게 들이대는 살가운 녀석이 아니다. 그런데도 갈 때마다 이런 이상 행동을 했다. 

 나중에는 먼저 만나도 밥을 먹이지 않았다. 일부러 애들이 있는 밥자리로 데려가 밥을 주었다. 하지만 애들 가까이 오지 않으려 해서 아주 멀찍이 밥을 따로 주고는 했다. 밥자리로 들어오던 초기 고등어처럼 멀찍이서 따로 밥을 먹였다. 거기에 와 밥은 먹되 잠시 한 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사라졌거나 귀요미 자리로 이동하는 나를 따라다녔다. 다행히 거기까지만 따라왔다.

 나는 고양이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건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사람들도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나면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다는 데... 아롱이도 그걸 겪는 중인가 싶었다. 그래서 이런 이상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애들 밥자리에는 따뜻한 집과 먹이가 있었다. 그러나 아롱이는 절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긴긴 겨울을 박물관 주변 어디선가 견뎌내었다. 

 은토끼님은 아롱이가 춥다며 박물관 계단으로 올라가는 한적한 곳에 집과 급식소를 설치하셨다. 거기서 한동안 밥을 먹였다. 그러나 거기서도 잠을 자는 것 같지 않았다. 절대 어디서 자는지 알 수 없었다. 잠자리도 수시로 바꾸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보니 박물관 뒤에서 온 다른 냥이들이 우리가 아롱이를 위해 마련해 둔 건사료도 먹고 설치해 둔 집에 들어가 잠도 자는 걸 알게 되었다. 따라다닐 정도로 외롭기는 하지만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는 아롱이 덕분에 우리들은 그 겨울 내내 아롱이를 찾아 발품을 꽤 팔아야 했다.

한겨울 완전 군장을 하고 밥을 먹이는 모습. 아들이  따라와 이 장면을 찍었다. 나는 밥을 먹이여 은토끼님에게 보낼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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