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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9.  보조 집사 구하기 정말 힘드네요


 둘 다 자리를 비울 일이 있어 거의 매일 그곳을 드나드는 여러 사람에게 밥 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다. 혹 하루나 이틀만 애들 밥을 좀 맡아서 줄 수 있느냐고. 그것도 밥을 미리 챙겨서 드릴 테니 그 시간에 와서 주시기만 하면 된다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려웠다. 부탁하는 사람도 쉽게 꺼낸 말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거절했다. 혹시라도 애들 돌보는 책임을 분담하는 일이 생길까 봐 미리 실드를 치는 느낌까지 들었다. 보조 집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었다.  

 하지만 냥이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일부러 새끼들을 찾아와 간식도 주고 놀잇감을 가지고 놀아주기도 했다. 어느새 그곳이 고양이 랜드가 되어 있었다. 고양이들은 야행성이다.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한다. 안전을 위해서도 낮의 활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배려가 전혀 없었다. 고양이의 생태에 대해 배울 생각도 없어 보여 아쉬웠다. 사람들은 냥이들을 보러는 오되 돌봄이나 비용을 부담할 생각은 적어 보였다. 아니 솔직한 내 생각은 거의 없어 보였다.

  거기에 가면 사람들을 피하거나 할퀴지 않는 고양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심지어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왔다. 무슨 견학을 오는 것 같았다. 와서는 새끼들을 함부로 만지고 거기 비축해 둔 사료나 물품들에 손을 대기도 했다. 물론 일부일 것이다. 분명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따른 조심성이나 책임감 등의 의무는 등한시하는 것 같아 나는 여러 번 속이 상했다.

 직장을 다닌다거나 집안일 등을 이유로 몇 차례 거절당한 뒤에 우리는 아예 부탁하기를 포기했다. 둘 다 공원에 애들 밥을 챙기러 가지 못할 상황이 되면 누굴 동원했을까? 남편이 동원되었다. 가족 동원이 가장 쉬운 방법이어서였다. 출근하는 날은 새벽에 들러 밥을 주고 퇴근하면 뛰어와 밥을 주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남편을 미리 데려가서 언제 언제는 이 아저씨가 올 테니 피하지 말고 밥 먹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여러 번 본 사람이니 너희도 금방 알아볼 거라고. 애들이 알아 들었을까? 알아들었다. 눈치가 천 단인 아이들이 사는 곳이 공원이다. 자신들한테 밥을 챙기러 오는 사람을 왜 못 알아보겠는가? 심지어 비닐 봉지에서 밥을 꺼내면 천연덕스럽게 앉아 기다린다고 해서 나를 미소짓게 했다. 

 

 은토끼님은 거의 매일 아이들 집 청소를 하신다. 커다란 가방 안에는 아이들을 위한 각종 간식과 사료만이 아니라 필요한 용품 등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 가방을 특히 좋아했다. 나라도 좋아했을 것 같기는 하다. 턱시도 까로는 특히 그 가방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가방의 부피와 무게에 지금도 놀라고 있다. 무슨 마법 상자같이 아이들을 위한 각종 물품들이 그 가방 안에서 끝도 없이 끌려 나왔다. 야외에 사는 고양이에게 생길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매달 약도 사서 먹이고 목에 발라도 주셨다. 당연히 아롱이 새끼들은 집에서 기르는 냥이들 못지않게 윤기가 흘렀다. 말 그대로 살뜰하게 살폈다.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냥이들이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친숙하게 만든 건 어쩌면 나와 은토끼님이었다.


 그렇게 아이들 서식지가 노출되면서 갖가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그때까지 나는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매일 밥을 챙겨준다거나 이름을 지어주고 놀아준다고 해서 그 고양이들이 내 고양이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편한 시간에 마음대로 그곳을 드나들며 심지어는 쓰레기까지 버리고 갔다. 간식 하나를 가져와서 먹이고 아이들 집 옆에 버리고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먹던 음료 캔이나 일회용 커피 잔, 심지어는 가지고 있던 쓰레기 봉지 등도 그냥 두고 갔다. 먹던 음식을 흘리거나 주변에 버리고 가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는 개까지 데리고 왔다. 목줄이나 제대로 했으면 할 정도였다. 

 코로나 상황에서 그런 행동이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매일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비닐장갑까지 챙겨가야 했다. 집을 사서 설치하고 냥이들 밥을 사고 매일 집만이 아니라 주변 청소까지 하시는 은토끼님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하셨다. 아이들 집을 분실한 사건 이후에 결심을 더 굳히신 것 같았다. 결국 공원 고양이 보호 협회에 가입하셨다. 관리 번호를 부여받았다. 주의 사항이 담긴 안내판도 설치했다. 

 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물을 애들 먹이 그릇에 부어 놓고 가는 것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들어있는 염분 농도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그런 주의 사항도 집 주변에 써 붙였다. 난 그곳이 고양이 랜드나 카페도 아닌 데 왜 자꾸 드나들면서 노출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오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사진 촬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SNS에 절대 올리면 안 된다는 소리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양해를 구하면 이해하고 고충에 대해 함께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너희들이 밥을 주면 다냐? 이 고양이들 주인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자세를 하냐? 는 의미로 불쾌해하는 사람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특히 고양이를 만지거나 쓰다듬으면 안 된다며 주의를 주면 반발이 더 심했다. 매일 밥을 주는 우리도 애들을 만지지 않는다며 조심해 달라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입양할 생각이시면 애들 만지시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사실 그렇게 대놓고 말한 적도 꽤 있었다. 공원 고양이들은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유 동물이 아니라는 걸 설명까지 해야 하니 그것도 힘든 일이었다.

 사람을 피하지 않고 자기를 만지는 사람들에게 발톱을 내지 않는 고양이를 신기해하며 보러 오는 걸 딱히 말릴 수도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집사들까지 경계하는 어미 아롱이와는 전혀 다른 새끼들이 문제였다. 그렇게 키운 게 바로 우리 둘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은토끼님과 내가 없을 때 철없는 아이들에게 더 심한 괴롭힘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롱이 새끼 네 마리 중 가장 예뻤던 아로. 강아지풀 놀이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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