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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4. 인연의 시작

 


  작년에는 4월 중순에도 눈이 내렸다. 그러나 5월이 되자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했다. 5월의 첫날. 드디어 아롱이의 은거지를 찾았다. 남편은 아롱이가 어디로 가는지 멀리서 살펴보겠다고 했다. 휴일이어서 사람들이 많은데 괜찮을까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 혼자서는 어디로 가는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따라갈 때마다 주변 여기저기를 빙빙 돌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 궁금했다. 밥만 삼키고 부지런히 어디론가 가는 걸 마음먹고 멀찍이서 따라갔다. 남편이 가는 방향을 알려줬기에 가능했다. 사실 갈수록 뼈만 남은 듯 보이는 아롱이가 너무 신경 쓰여서였다. 

 미술관 주차장 입구에 은거지가 있었다. 희미하게 새끼들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몇 마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은거지를 함부로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새끼들이 있는 곳을 함부로 들여다 봐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먹이 양을 더 늘려야 하는 건 분명했다.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후원금을 걷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통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협조하라는 은근한 압박을 했더니 ‘내 고양이도 아닌데 왜 그런 돈까지 내야 하느냐?’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럼. 하루 종일 별 낙도 없이 밥만 기다리는데 그걸 끊어? 사람이 왜 생각이 그렇게 모질어? 내가 돈 없다고 너 밥 굶기면 좋겠니? 응?" 

 이야기가 엉뚱하게 비약하기 시작했다. 말하는 나도 알았다. 아들들은 무시가 답이라는 생각을 할 모양이다. 밥만 먹더니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차마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미적거리던 남편이 말했다. 

 " 밥은 주러 다녀도 되는데 집에는 데리고 들어오지 마. 너도 알다시피 나 냄새 거의 못 맡다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 알지? " 

 안다. 냄새를 못 맡는 원인이 무엇인지 왜 모르겠는가? 그 때문에 대학병원에 가서 혹시나 해 치매 검사까지 받았는데... 고양이 털이 원인이었다. 그걸 모른 채 고양이를 키웠던 것이다. 이미 키우고 있던 고양이를 어떻게 내 보내는가? 그냥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녀석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일 년 지나니 서서히 냄새가 돌아온 것이다.


 아롱이는 새끼를 낳고도 한동안은 조릿대 주변에서 숨어 있다 나와 밥만 먹고 사라지는 걸 반복했다. 어느 날은 까치 두 마리와 실랑이까지 하며 나를 기다렸다. 아롱이에게 밥을 주면서 지금까지 내가 모르던 공원의 다른 모습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까치들이 시끄럽게 울면 근처에 고양이들이 있었다. 고양이와 까치가 영역 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공원 생태계를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5월 중순 무렵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 지내시던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정했다. 무언가 더 몰두하거나 마음을 쓸 존재가 필요했다. 코로나로 병원 면회도 불가능했다. 공원에는 나를 기다리는 작은 동물이 있었다. 아롱이다. 녀석은 어느새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생활의 중요한 자리를 차고 들어와 앉았다.

 자꾸 사람들이나 개와 부딪치는 아롱이에게 무조건 기다리지 않게 시간 맞춰 밥을 주기로 했다. 아롱이에게 '내일 10시에 올 테니 그 시간에 오라.'고 한 것이다. 밥을 줄 때마다 다음 도시락 배달 시간을 미리 알려줬다.


 5월 중순이 되면서 아롱이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다. 밥만 먹으면 바로 튀던 녀석이 내 주변에서 얼마간 쉬다 천천히 움직였다. 희미하게 이해가 되었다. 나도 워킹맘이었다. 육아를 할 때는 쉴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롱이는 체격이 작은 냥이다. 새끼들이 몇 마리인지 모르겠지만 배가 꺼진 지 거의 2달 정도가 되어 가니 젖만 먹어서는 안 될 정도로 자랐을 터였다. 새끼들도 밥을 먹여야 했다. 

 그 무렵 삼색이 한 마리가 밥자리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아롱이보다 밝은 갈색이 더 많이 섞인 삼색이 녀석은 한쪽 귀가 잘려 있었다. 누군가 중성화를 시켜 풀어준 것 같았다. 지난해 가을쯤 태어났는지 아직 어린 녀석이었다. 녀석은 정말 막무가내였다.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아롱이 밥에 무조건 입을 대고 먹기 시작했다. 식구를 더 늘릴 생각이 없었던 나의 만만치 않은 견제가 있었지만 녀석은 더 만만치 않았다. 아롱이도 녀석이 끼어들어 자기 밥을 축내도 별 제지가 없었다. 이상하게 그런 부분에서 아롱이는 너그러운 편이었다. 할 수 없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롱이라고. 문제는 당장 새끼들 전용 먹이를 사야 하는 것이었다. 

 아들들에게 강제 후원금을 받았다. 새끼들 먹일 습 사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2020년 5월 20일의 일기다. 내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네 마리다! 아롱이가 왜 그렇게 먹이에 목을 매는지 알 것 같다. 아롱이 먹이를 주고 잠시 그릇을 닦으러 갔다 되돌아와 보니 새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밥을 먹고 있었다. 먹던 밥에서 밀려난 아롱이는 약간 얼이 나간 모양새였다. 완전 까망이. 턱시도, 아롱이를 닮은 알록달록한 삼색이 두 마리. 아롱이 새끼들! 아롱이 배가 홀쭉해지고 거의 두 달이나 되어서야 새끼들을 정식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들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아롱이는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된 것 같은데 엄마가 되었다. 그것도 4남매의. 나는 속으로 애가 애를 낳았다며 아롱이의 처지만 안쓰러워했다. 그때만 해도 아롱이 남매들 때와는 다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생길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롱이와 새끼들의 삶에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 가 어떤 일을 겪을지 전혀 예상 하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저 내 손목 정도나 될까 하는 작은 녀석들이 너무 귀여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롱이가 새끼들 젖을 먹이고 힘이 들어 구조물 위에 올라가 푹 퍼져 있다. 새끼들은 이 높이를 뛰어오르지 못해 아래에서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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