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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2. 만남  


 - 첨부되는 사진은 이미 입양되었거나 6개월 이상 공원에서 볼 수 없는 고양이들임을 밝혀 둡니다.

조릿대 주변에서 밥을 기다리던 까망이, 노랑이, 아롱이

 2019년 4월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다. 요양병원에서 그만 있고 집에 가고 싶으시다는. 그것은 내내 죄책감이 되었다. 마지막 소원인 줄 알면서 그걸 들어드리지 못해 마음이 늘 체한 것 같이 무거웠다.

 34년간 가졌던 직업을 그만두면서 사람들 말대로 이제 시간 부자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심지어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는 꿈을 이룰 거라고 믿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도 나에게는 80대 후반의 노부모님과 가족이 있었다. 매 순간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의무였다.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죽음이 내게 다가왔다. 고양이의 죽음. 그 일도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 집에서 기르는 냥이에게도 간부전이나 신부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동물들을 위한 약이라고 해야 대부분 그냥 영양제라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엄마와 녀석을 3개월 간격으로 잃어서인지 현실 감각이 생기지 않았다. 녀석의 죽음은 나에게 삶이 무기력하고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충격이었다.

 동고동락! 그런 사이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것과는 다른 충격이 왔다. 무엇보다 녀석이 우리 가족에게 남긴 유산이 있었다. 다시는 집에 동물을 들이지 않겠다는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동의! 거기에 부엌 싱크대 장 하나를 가득 채운 채 주인을 잃은 고양이 먹거리들.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녀석의  물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어떤지 나는 알게 되었다. 돌아가신 엄마의 물품을 태우시던 아버지의 여윈 등에서 느껴지던 그 싸한 감정들. 죽은 누군가의 남겨진 물품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보기 힘든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먹거리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3.5킬로에 52,000원이나 하는 고가의 사료들이었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먹거리를 들고나가 공원 냥이들의 고픈 배나 채워주기로 했다.

 

 2019년 10월 어느 날. 고지혈과 당뇨 약을 먹지 않기 위해 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매일 만 보 이상을 걷기 위해 공원을 산책했다. 여기저기 공원을 배회하며 돌아다녔다. 토성도 돌고 숲길도 일부러 찾아 걸었다. 매일 걷고 또 걷는 나날이었다. 걷기에 월화수목금금금이 된 건 당연했다. 걷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어디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배고픈 고양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공원 미술관 주차장 근처 조릿대가 제법 우거진 곳도 그중 하나였다. 그곳에 매일 세 마리 냥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턱시도, 노랑 줄무늬 치즈. 삼색이. 나는 녀석들을 쉽게 부르기 위해 이름을 지어줬다. 실수를 한 것이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의미는 책임도 져야 한다는 걸 그때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턱시도는 까망이. 줄무늬 치즈는 노랑이. 그리고 삼색이 녀석은 알록달록하니 아롱이.

 세 녀석을 위해 늦가을과 겨울 내내 뜨거운 물까지 집에서 나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밥과 물을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온갖 캔과 건 사료를 들고나갔다.

 고양이가 제일 잘 걸리는 병이 방광염이라니 예방 차원이라며 그냥 가져다 먹였다. 녀석들이 어린 나이라도 관계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드디어 그 많던 먹이가 다 떨어졌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녀석은 캔을 먹지 않았다. 그냥 주야장천 건 사료에 목을 맸다. 혹시나 먹을까 싶어 사 둔 캔도 다 떨어지자 아직 어린 냥이들로 보이는 녀석들을 위해 고양이 캔을 주문했다. 녀석들은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 가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원래 계획은 남겨진 사료들만 처리하고 그만 둘 작정이었는데...

 사실 그때 그만두어야 했다!

 근처에 다가가 부르지 않아도 멀리서 알아보고 뛰어나오는 세 마리의 냥이들을 먹이도 주지 않고 돌아올 수 있을까? 어쩌다 먹이를 못 가지고 간 날은 제법 멀리까지 쫓아 나와 다리에 감기며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 녀석들을 보고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마치 왜 그냥 가냐는 듯이 서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엮인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낚였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아롱이 남매들이 살던 조릿대 주변에는 산사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가을이 깊어가며 산사나무에는 빨간 열매가 열렸다. 아롱이 삼 남매는 툭하면 나무에 올라가 새들과 장난을 쳤다. 까치, 직박구리 등이 수시로 날아와 열매를 쪼아대며 조잘댈 때마다 순식간에 나무 위로 도약해 새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심지어 청설모도 쫓아다녔다.

 산사나무 만이 아니었다. 제법 키가 큰 상수리나무도 순식간에 오르내렸다. 밥을 주러 갔다 애들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면 자랑처럼 꼭대기에서 나를 놀라게 하는 녀석들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갈수록 나도 이력이 생겼다. 처음에는 못 내려오거나 다치는 건 아닌가 싶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나중에는 놀라는 사람들을 말릴 정도가 되었다. 아직 애기 애기했던 녀석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겨울이 왔다. 녀석들은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눈이 오면 조릿대 사이로 들어가 서로 몸을 맞대고 추위를 이기는 것 같았다. 그 무렵 누군가 조릿대 속에 냥이들의 집을 가져다 두었다. 나보다 녀석들을 철저히 돌보는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날이 아주 추워지자 배수구 안에 들어가 추위와 덤벼드는 개들도 피했다. 배수구 안은 지난 가을바람에 밀려들어간 낙엽들이 두툼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아주 춥거나 눈이 내려 쌓인 날은 배수구 속으로 밥을 밀어 넣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긴 겨울이 지나 드디어 봄이 왔다. 산사나무와 상수리나무에서 우는 새들의 소리도 나날이 경쾌하게 봄소식을 전했다. 봄이 조금씩 찾아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각공원 잔디들이 점차 초록 초록해지는 게 보였다. 긴 겨울을 씩씩하게 견딘 녀석들 키도 몸무게도 느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렇게 녀석들의 성장이 단순히 리즈 생활의 마무리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고양이들의 생태에 정말 무지했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게 딱 나의 경우였다.

나무에서 내려오는 노랑이. 상수리나무가 제법 큰데도 이렇게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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