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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1. 이별 후에 생긴 일

-첨부되는 사진들은 입양되었거나 수개월 이상 보이지 않는 고양이들입니다

제법 자란 상태에서도 녀석은 우리와 함께 나들이를 다녔다.

 오월이라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퇴근길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섰을 때 어디선가 희미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류장 옆에 있는 초등학교는 담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벽을 헐어내고 나무 등 초화류를 심는 작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소리는 나무를 심기 위해 파 둔 제법 큰 구덩이에서 나는 것 같았다. 구덩이 앞에 다가 선 나는 너무 놀랐다. 새끼 고양이가 그 속에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과 같은 색 고양이를 치즈 냥이라고 부른다는 건 더 나중에야 알았다. 

 구덩이는 제법 깊었다. 손이 닿지 않았다. 행여나 싶어 '나와!" 그랬더니 순순히 구덩이를 기어 올라왔다. 나를 집사로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구덩이에서 나온 녀석의 온몸은 흙투성이에 엉망이었다. 특히 두 눈에 이상이 있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잠시 망설였다. 너무 작은 녀석이었다. 일단 씻겨 동물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게 스르륵 안기는 순간 왜인지 이 녀석과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병원에 데려가니 거의 뜨지 못하던 눈도, 배 쪽에 손으로 만져지던 툭 튀어나온 갈비뼈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눈에 달려있던 큼직한 눈곱을 떼어내니 순한 갈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대략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지난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품종은 코숏이라고 알려줬다. 짧은 털 한국 고양이라는 뜻이란다. 강제로 독립된 녀석이었는지 아니면 녀석의 어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홀로 남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은 그렇게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왔으니 그곳에 다시 가서 살라고 몇 번 데려다준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고집스러운 녀석은 데려다 놓은 장소에 앉아 우리 식구들을 꼼짝도 안 하고 기다렸다.  동네 개들이 나타나면 번개처럼 숨었다 다시 나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치료도 다 해 줬으니 이제 독립하라는 내 결정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녀석은 우리와 뒹굴며 12년을 살았다. 사실 내 침대를 나눠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발치에서 늘 같이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어느 날 녀석이 밥을 먹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이것저것 먹는 편이었다. 심지어 동네 맛집으로 알려진 제과점에서 사다 준 슈크림도 먹었다. 콕 찍어 그 집 것만 먹었다. 고양이가 천연 재료 쓰시는 걸 확실히 보증해 준 집이라며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제과점 주인은 특별한 단골이 생겼다며 아주 반겨했다. 그러나 방광염이 생긴 것을 기점으로 일체의 습 사료나 다른 먹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직 방광염 치료식인 로열 캐닌 그 사료만 먹었다. 그건 병을 진단한 그 병원에 가서 직접 사 와야 하는 사료였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치료식조차 거부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무렵 로열 캐닌 방광염 치료식이 무슨 연유인지 납품처를 바꾼 모양이었다. 같은 치료식이라고 동물병원에서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녀석이 냄새만 맡아보고 사료를 입에 대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무언가를 먹이기 위해 정말 바빠졌다. 먹을 만한 것들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로열 캐닌 한국지사에 전화해 어디 다른 동물병원에 아직 남아 있는 그 사료들을 정신없이 구했다. 고양이들이 잘 먹는다는 마약 캔도 이것저것 사들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거의 두 달 동안이었다.

 10킬로를 육박하던 녀석이 슬림해지기 시작했다. 수컷인데도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임신 중인 고양이냐는 소리를 듣던 녀석은 그렇게 말라갔다. 털도 뭉텅뭉텅 빠졌다. 내가 사들이는 각종 간식과 캔과 사료는 싱크대의 키 큰 장 하나를 가득 채웠다. 간부전에 신부전. 녀석은 그렇게 엄마가 돌아가신 지 겨우 3개월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녀석은 거실 의자에서 내려와 우리가 있는 침대로 오려다 기운이 다한 모양이었다. 평소 내 발치나 옆에서 자던 녀석이 힘이 없어 의자를 내려오지 못한 채 그렇게 죽어 있었다. 우리 집에는 녀석이 남긴 엄청난 먹거리가 그야말로 잔뜩 남겨졌다.

구조해 병원에 다녀온 뒤 녀석. 고양이는 표정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울 것 같은 이 표정은 뭔지?
날이 더우면 종종 마루에 이렇게 드러누워 뒹굴었다 

아래는 둘째가 학교 과제로 촬영 편집해 보관하고 있는 녀석의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KZl8HXS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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