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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3. 공원 냥이에게 낚이면

 

누가 이 고양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이름은 까망이에요

 그리고 이듬해 3월... 

 조릿대 주변 산사나무에 하얀 꽃이 휘날리더니 바닥이 어지러울 정도로 하얗게 내려앉은 날이었다. 공원 경비 아저씨가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아롱이를 바라보며 새끼를 가졌다고 알려줬다. 그런 면에 아주 둔녀였던 나는 

 "얘, 아직 애긴데요? 무슨 새끼를 가져요?" 

 이렇게 말했었다. 잠시 우리집에 살았던 고양이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녀석들은 곧바로 우리 집을 탈출해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거나 임시로 맡겨둔 곳에서 집을 나가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결국 수컷 고양이 한 마리를 중성화시켜 길러본 게 경험치의 전부였던 내가 뭘 알았겠는가? 고양이들에 대해 정말 뭘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배울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더니 며칠 뒤부터 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의 아빠인 듯한 턱시도 고양이가 조릿대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 얼마 뒤였다. 아빠 고양이라고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밥을 다 먹는 걸 기다려 세 마리를 데리고 이동하는 걸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를 따라오라며 뒤를 돌아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밥만 먹고 부지런히 그 뒤를 따라나서는 녀석들을 보며 당연히 아빠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시 며칠 뒤부터는 까망이가 보이지 않았다. 까망이는 사라지기 전날 유별나게 나를 멀리까지 따라나섰다. 아마 그게 마지막으로 자기를 데려갈 기회라는 걸 알려주려던 것 같았다. 

 까망이는 유독 사람을 잘 따랐다.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까망이가 너무 사람을 잘 따르니 여러 사람이 공물을 바치러 오는 눈치였다. 챙기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개냥이처럼 사람을 그렇게 잘 따르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 딱 한 마리가 남았다. 삼색 냥이 아롱이. 이 녀석은 유달리 까칠했다. 주는 밥을 먹되 조금만 가까이 가려고 해도 피하면서 할퀴었다. 절대 자신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건 둘째치고 작은 방심에도 피를 보게 만들었다. 사정없이 할퀴었다. 어느 날은 손등의 큰 핏줄을 건드려 피가 철철 흐르는 일도 생겼다. 가까운 박물관 안내대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유달리 사람을 따르던 까망이를 찾아 사방팔방 불러봤지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노랑이 역시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아빠라고 불렀던 그 고양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꽤 오래 까망이 어디로 보냈냐며 물어내라는 식으로 시비를 걸었다. 시비는 걸어도 여분의 밥이 있으면 꼭 먹이를 주기는 했다. 까망이 데려오면 더 맛난 밥을 주겠다는 회유와 함께.

 매일 밥을 얻어먹기는 해도 앙칼진 태도가 3년 지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절대 자존감의 지존인 녀석, 아롱이만 나왔다. 녀석은 변함없이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아롱이는 또렷한 이목구비에 은 갈색 눈이 아주 예쁜 녀석이다. 얼굴은 아이들 주먹만 했다. 체격도 세 마리 중 제일 작았다. 녀석만 기다려도 매일 밥을 가지고 나갔다. 아롱이의 몸통은 임신 냥이답게 갈수록 두리뭉실해졌다. 

 왜 두 마리가 밥자리에서 쫓겨났는지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롱이가 새끼를 가져 거의 출산할 때가 임박했던 것이다. 아롱이는 꾸준히 밥을 먹으러 나왔다. 갈수록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삼키는 것 같았다. 매일 주는 캔의 양이 부족해 보였다. 정말 많이 먹었다. 밥만 먹고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하루 한 번만 밥을 주러 갔다. 

 운동을 하루 두 번으로 늘린 어느 날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몸무게에 변화가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당뇨 경계에서 위험 수위까지 올라간 혈액 검사 결과였다. 갈수록 수치가 올라 병원에 갈 때마다 심각성에 대해 협박에 가까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밤에도 나가니 아롱이를 마주치는 일도 잦았다. 그 무렵 아롱이 배가 푹 꺼져 보였다. 3월 마지막 주였다.

 며칠 뒤였다. 아롱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다 나에게 딱 걸렸다. 나를 보자 쓰레기통을 뛰쳐나오며 놀라던 표정이란.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길냥이는 하루 한 번만 밥을 줘도 충분하려니 했다. 오해였다. 어디에 새끼를 숨겼는지 알 수 없지만 하루 한 번으로는 배고픔을 감당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갈수록 털의 윤기는 사라지고 어깻쭉지가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갔다. 도대체 새끼를 몇 마리나 키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절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나 몇 번 따라가 봤지만 경계가 심해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루 두 번으로 먹이주기를 늘렸다. 어차피 운동도 해야 하니 가는 김에 한 번을 더 주고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무렵 집에서의 잔소리도 시작되었다. 점입가경이라고. 그렇게 집에서 말릴 때 이제는 너 혼자 알아서 살아가라고 내 발길을 끊는 게 맞았던 건 아닐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어떤 일에 발을 들였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냥 내가 안 가면 배고파 쓰레기통을 뒤져댈 녀석이 안쓰러웠다.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냥 확실히 낚인 게 맞는구나 하고 어느 순간 포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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