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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18. 2021

5. 까미가 눈을 다치다


아롱이 새끼들. 안내판 속 구덩이를 벗어나 먹이 주는 장소로 뛰어오를 만큼 자랐다. 밥그릇 위에 올라간 까미를 까로와 아미가 보고 있다. 

 그 무렵 아버지 상태가 나날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2월부터 전 세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던 코로나로 사람들의 삶은 예상한 적이 없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는 6월 24일 돌아가신 다음에야 뵐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상황을 떠올리면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집에 가서 죽고 싶다는 아버지의 소원도 들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나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고서야 외출을 하고 여행을 포함한 각종 규제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롱이 새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두 번째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완전 까만 녀석은 까미, 턱시도는 까로, 아롱이를 닮은 삼색이 두 마리 중 엄마를 많이 닮은 옅은 색은 아로, 조금 진한 털 색을 가진 냥이는 아미. 며칠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이었다. 이름 짓는 센스가 없다는 주위 혹평이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름까지 지어주고 애들에게 손을 떼는 건 이제 내 맘대로 될 일이 아니었다. 알고도 이름을 지은 건 아니었다. 개념 없는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아롱이는 은거지에 조금이라도 불안한 일이 생기면 지체 없이 새끼들을 옮겼다. 미술관 주변에서 박물관 하늘공원 부근으로 다시 박물관 뒤 잔디밭 변압기 주변으로. 거의 보름 단위로 이사를 다녔다. 그 무렵 박물관 정산소 근무를 하시던 분은 늦은 밤에 삼색 냥이 한 마리가 새끼를 물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셨다고 하셨다. 미술관 주차장 부근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아마 까미 때문인 것 같았다.

 어느 날 오전에 가보니 은거지에 까미만 남아 있었다. 아롱이를 부르니 구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나서인지 나와 본 것 같았다. 그런데 까미의 한쪽 눈에 제법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잘못하면 애꾸가 될 판이었다. 안절부절못한 나는 결국 동네 동물 병원을 찾아갔다. 까미의 눈 사진을 보여주고 약을 받기 위해서였다. 수의사 선생님은 사진을 보며 약보다 엄마가 핥아주면 된다고 했다. 어미가 있으면 절대 병원을 데려와서는 안 된다는 주의까지 주셨다. 나중에 들어 보니 은토끼님도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본 모양이었다. 데려다 기를 생각이 없으면 놔두라는 말을 똑같이 들었다고 하셨다. 눈의 상처는 거의 보름 정도 아물지 않았다. 아마 그 지점부터였을 것이다. 애꾸눈으로는 공원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보이는 까미를 입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다행히 아롱이는 정말 엄마 노릇을 잘했다. 틈만 나면 까미 눈을 핥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새끼들도 틈나는 대로 핦아주기는 했다. 그래도 까미를 더 자주 핦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속으로 까미가 막낸가? 하는 생각을 그즈음 자주 했다. 다행히 까미의 눈은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눈자위의 붉은 기운도 완전히 사라지고 본래의 금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앞에서 아롱이 생김새는 아주 예쁜 녀석이지만 성격은 까칠해 툭하면 앞발로 우리 집사들을 할퀸다고 했다. 그래도 아롱이는 츄르를 우리 손에서 직접 받아먹었다. 그날은 새끼 기르느라 힘들다고 아롱이를 위해 츄르를 들고 갔다. 츄르를 먹이면 아롱이는 눈을 반쯤 지긋이 감고 받아먹는다. 내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걸 먹고 있는데 달려온 까미가 자기도 먹겠다고 입을 가져다 댔다. 아롱이가 비키지 않자 갑자기 까미가 냥 펀치로 제 엄마를 한 대 치는 것이었다. 분명 '팍'하는 소리까지 났다. 새끼한테 한 대 맞고도 비슬비슬 자리를 비켜나는 아롱이를 보며 난 너무 놀랐다. 까칠 여왕이 제 새끼한테 좋아하는 간식을 빼앗기고도 자리를 비켜나다니??? 

 나도 모르게 까미를 향해 

 "너, 후레자식이니? 눈 다친 놈 핥아서 고쳐줬더니 이게 정말?"

 야단을 쳤다. 까미는 눈치가 빠른 녀석인데도 먹을 것만 다 챙겨 먹고 당당한 뒤태를 보이더니 애들에게 가 버렸다. 아롱이도 내 손에 더 이상 먹을 게 보이지 않자 '흥!'하는 표정으로 가 버렸다. 아주 진상 모자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나는 공원에서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돼 새끼를 네 마리나 낳고 기르는 아롱이에게 은근히 존경심이 생겼다. 거기에 엄마 노릇은 얼마나 지극정성인가? 

    

 아롱이 새끼 네 마리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친구 만나기도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내 생활의 폭도 좁아져갔다. 시장이나 마트 공원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전부였다. 다른 곳은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루틴한 세상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롱이 새끼들은 박물관과 미술관 주변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가며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공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롱이를 따라 네 마리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이를 들고 서식지로 가 보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아롱이를 불러대며 찾아야 했다.


 아롱이가 처음부터 미술관 주차장 입구에 새끼를 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새끼들이 태어난 지 2개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아롱이의 통제가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롱이가 새끼를 숨겨 놓은 서식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을 때였다. 미술관 주차장 정산소에서 일하시는 분이 나를 불러 이야기하셨다. 정산소 맞은 편에 얼기설기 쌓아둔 안내판 사이로 뭔가 어른거려 직접 나와 들춰 보셨다고. 거기 고양이 새끼들이 보이길래 집에서 가끔 치즈를 가져다주셨단다. 

 누군가 어른거리면 아롱이 새끼들은 얼기설기 세워 놓은 안내 표지판 속 서식지로 숨기 바빴다. 표지판을 겹쳐 세워둔 그 속 돌 틈 사이로 구멍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통제되는 장소였다. 대로가 있는 보도와 화단 입구에는 일종의 커다란 시멘트 차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겨우 밧줄 두 개로 막았지만 일단 사람들은 거의 그곳을 출입하지 않았다. 중간 키 정도의 나무들이 빽빽이 심어져 있어 새끼 고양이들이 나와 다녀도 밖에서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아롱이가 고심해서 찾은 듯한 훌륭한 은거지로 보였다. 

 나도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제 조릿대 주변에서 은거지로 먹이 주는 장소를 완전히 바꾸었다. 조릿대 주변은 박물관과 미술관 주차장으로 갈라지는 곳에 있어 사람이나 개들의 통행이 제법 많은 곳이었다. 그런데 미술관 지하 주차장 주변은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피한 곳에 있어 새끼들을 기를 둥지로 나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아롱이 은거지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먹이를 가져다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분을 만나야 했다. 공원을 매일 두 번씩 드나들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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