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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y 10. 2023

엄마의 자리란?

"고등어~ 너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물관 주차장에서 하늘 공원으로 올라가는 곳에 모래함이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 앉아 있던 녀석이 내 목소리를 듣더니 뛰어내려온다. 건널목 신호등을 건너온 사람들이 주차장 주변으로 자꾸 들어오니 신경이 쓰인다. 얼른 데리고 움직여야 한다.

겨울이 지나자마자 공원에 이런 안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어쩐지~~"

 하늘 공원 초입에 있는 배수구에 가서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남자 어른 둘이 한 동안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비가 자주 내리더라도 연휴는 연휴. 더구나 그날은 오래간만에 날이 맑았다. 5월치고는 약간 쌀쌀해도 일요일이니 사람들이 공원에 수없이 드나들 터였다.

 그런 날 눈에 확 뜨이는 노란색 모래함에 고등어 무늬 앙증맞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으니 구경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노란색 모래함 위에 고등어가 떡하니 앉아  은토끼님을 기다린다.

 그곳에 녀석이 앉아 있는 이유는 알 것 같다.

 은토끼님은 입대한 까로 아빠의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휴에 이어 휴가를 내셨다. 당연히 출근을 안 하신다.

 오전에 교회를 가기 전 녀석이 좋아하는 캔과 닭가슴살을 먹였다. 주고 간지 두 시간 조금 지났는데.

 오후 근무를 위해 출근하시는 은토끼님을 빨리 만나려고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천연덕스럽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녀석들이 어떻게 시간을 맞춰 기다리는지.

 "배꼽시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교회 예배가 끝나 그냥 집으로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새를 못 참고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렸을 테니...


 요즘 그렇지 않아도 공원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공원에 고양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심지어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저만 착한 척이냐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사람들 시선이 몰릴까 녀석을 데리고 서둘러 움직이려 눈치를 본 이유다.


 며칠 전에는 불러도 안 나오길래 그릇을 씻으러 음수대를 먼저 다녀오려고 했다. 고등어 녀석은 움직이는 반경이 넓지 않다. 중성화 뒤에는 특히 박물관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릇만 닦아 되돌아오려고 서두르는데 누가 부른다.

 '야~옹.'

 소리가 좀 큰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야무지다. 고등어 녀석이 주차되어 있는 박물관 버스 아래서 기다리다 나를 본 모양이다. 목소리에 질책이 묻어 있다고 느끼는 건 내 생각인가?

 "왜 안 찾고 그냥 가냐?“

 아마 그런 의미를 담아서겠지.


 봄이 되면서 녀석들 밥 주는 장소에 철쭉 등 나무들이 제법 우거졌다. 고양이들 움직임이 사람들 눈에 덜 띄어 그나마 다행이다. 데리고 밥그릇이 있는 하늘공원 배수구 주변으로 올라갔다.

 "고등어야? 고니는 어딨어?"

 이제 일 년이 되어가는 고등어 새끼 고니는 최근 제 엄마와 자주 같은 자리에 있다 나온다. 모자에게 밥을 주면 가끔 이상한 장면이 보인다. 고니는 수컷이다. 그런데도 이런 장면이 수시로 보인다.

위쪽이 고니 아래쪽이 고등어. 고등어는 같은 밥을 줘도 아들 것을 빼앗는다. 고니를 툭하면 앞발로 때린다.
밥 주기를 기다리며 뒹구는 고니. 요즘은 나를 피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와 밥을 먹는다. 애교가 늘었다

고니를 제 새끼로 인식은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엄마라는 자리가 뭔지 모르는 걸까? 하긴 녀석도 태어난 지 겨우 3년. 저도 애기다. 동복인 사랑이가 제 엄마 아롱이에게 하는 걸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녀석에게 엄마 자리가 뭔지 알려줄 수도 없고.


 저를 찾는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니가 나온다. 엄마와 코비비기를 하는 걸 보니 이제 싸움은 끝난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밥을 주고 보면 고니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애한테 왜 그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다.

 지난 가을 겨울 두 계절 동안 수도 없이 밥을 굶었을 고니가 이제 제 엄마와 한 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얻어맞아도 밥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한 편으로는 고등어에게 살짝 얄미운 마음 이 생긴다. 자식 것을 뺏는 어미가 어딨나 싶어서다.

 

"아롱이가 사랑이 때문에 힘든 거 같아요."

 은토끼님이 내게 그런 말을 하셨다. 사랑이가 자꾸 다쳐 아롱이에게 데려다 주고 난 뒤였다. 네 새끼니 네가 책임지라고 했다. 둘 다 중성화를 시켜서인지 1년 가까이 같이 지낸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같은 장소에서 나오는 일이 많다. 문제는 사랑이다. 툭하면 제 엄마 밥을 뺏는다. 사랑이는 연어를 선호하고 아롱이는 닭가슴살 종류를 좋아한다. 각자 좋아하는 걸 주는 데도 엄마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민다. 사랑이가 비켜나면 그때야 바닥에 깔린 걸 핥아먹는 아롱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이런 제 엄마를 보고 자랐을 텐데 고등어는 왜 그게 안 될까?

 여전히 제 엄마한테 얻어맞으며 밥을 먹는 고니도 안타깝다. 고니는 제 엄마보다 애교도 많다. 깜찍할 정도로 눈도 예쁘게 맞춘다. 바닥에 뒹굴며 반갑다는 표시를 하고 심지어 다리 사이도 오간다.


 아직 제 엄마에게 수시로 태클을 당하는 처지지만 그래도 녀석을 찾아 매일 밥을 챙기는 사람이 둘이나 붙어 있으니 다행이다. 둘 다 시간이 여의치 않을때는 이쁜이 엄마라도 와 주시니. 너희는 아롱이 새끼들로 태어나 복 받은 거야. 적어도 밥을 굶기지는 않잖아 하는 마음이 다 생긴다.


 둘이 밥 먹는 걸 보며 고등어에게

 “모레까지. 은토끼님 출근 안 하셔. 주차장까지 나가서 기다리지 마.”

 야무지게 말해두지만 밥그릇에 처박은 머리를 들지 않으니 고등어가 알아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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