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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y 18. 2023

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찾은 사람들

 "공원에서 우리 스프링이 제일 예뻐요."

 그 말에 토를 달 뻔했다.

 "아닌데요. 우리 아롱이가 제일 예쁜데요."

 하지만 말을 꿀꺽 삼켰다. 지금은 내가 부탁을 해야 할 처지다.

 "다른 냥이들이랑 놀다 쫓아오면 나무에 후다닥 올라가는데 꼭 영화 같아요."

 역시 토를 달 뻔했다.

 "우리 아롱이도 나무 엄청 잘 타요. 높은 데 잔가지까지 올라가 제가 내려오라고 소리 질러야 해요."

 까미도 공원에 있을 때 나무 위에 자주 올라갔다. 겁이 없었다. 다 아롱이에게 배운 거다. 특히 아롱이가 제 새끼 건드리는 다롱이 혼낼 때 이분이 보셨어야 했다. 다람쥐 저리 가라 하게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아롱이. 지난겨울 찍은 정면 사진이다. 나를 쳐다볼 때의 표정이 너무 예뻐서 안아주고 싶다. 절대 안 되지만.

 한편으로 이분도 그 스프링이란 녀석에게 단단히 낚이셨구나 싶었다. 전날도 새벽 두 시까지 잔디밭에서 스프링과 사냥놀이를 하셨다는데 조금 어이가 없었다. 부탁의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잠시 미적거리는 사이 며칠 전 이야기를 다시 하신다. 속이 상한 건지 빈정이 상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앙금이 남아 그냥 넘어가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긴 듣는 나도 그릇을 가져다 버리기까지 해야 했나 의아했다.

 "곰말다리에서 토성으로 올라가는 길 있잖아요? 거기 새끼들이 있길래 밥그릇하고 물그릇 놓는데 경비가 오는 거예요. '아저씨 거기 그런 거 두면 안돼요.' 그러면서 쓰레기 통에 가져다 버렸어요. 내가 얼굴도 다 기억해 뒀어요."

 '그 공원 경비 아저씨 뒤통수 조심하셔야 하는 거 아냐?' 잡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기에 이분은 공원 곳곳에 있는 냥이들 물과 밥그릇을 살피고 채우며 하루를 보내시는 듯했다.  


 사람들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표시는 흰색 줄이다. 나도 가끔 그걸 넘어 다닌 적이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주변을 순찰하시던 경비 아저씨들이 거기 들어가면 안 된다고 내게 주의를 주셨다. 그래도 고양이 밥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바로 이해하고 허락하셨었다.

봄이 되니 털에 윤기가 돈다. 하지만 공원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은 건 흰색 점박이 사랑이의 물어 뜯긴 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변화의 기류가 심각하게 느껴진다. 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 눈에 덜 띄는 곳에 건사료와 물을 놓는 것도 막는다. 아마 민원이 많이 들어와 단속해 달라는 지시가 강력하게 내려온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밥을 청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냥이들. 가지고 있는 캔이 없으면 정말 곤란하다. 이 주변 관리하시는 분이 안 오신 날은 떼로 나온다.

 이 남자 집사님에게는 부탁이 있었다. 그날 오전 화곡동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만난 여자 집사님 때문이었다. 공원으로 건너가는 신호등 앞에서 대기하는 데 그분을 만났다. 아침 일찍 나가 토성 호숫가 주변 냥이들 먹이를 주시고 그 시간에 돌아오신다더니. 밥 먹이는 냥이들이 갈수록 늘어 캐리어까지 마련하셨다고 하신 게 지난겨울이다. 음수대에서 고양이 밥그릇을 씻다 안면을 익혀 만나면 인사를 나눈다. 보통은 목례인데 그날은 나에게 말을 거셨다.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으셨는지 혹 자기 구역의 일부라도 맡아줄 분이 있는지 또 물어보셨다. 고양이들 밥을 주러 가기 힘든 날은 분명히 생긴다. 그럴 때 그걸 대신해 줄 분을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고양이들 입양처를 찾는 이상으로 힘들다는 건 내가 해 봐서 안다.

  박물관 주변과 미술관 주차장 근처를 돌다 보면 5 천보 이상을 걷는다. 하늘공원 꼭대기에 있는 아롱이와 사랑이 모녀를 찾아 비탈길을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헉헉거린다. 만만치 않은 체력이 필요한 것이다.


 얼마 전 박물관 주변 급식소 하나가 폐쇄되었다. 거기 있던 삼색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자 직원들이 급식소를 치우고 더 이상 밥을 주러 오지 않는다. 박물관 내부에서도 자주 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온단다. 공원 고양이계도 생존의 문제여서 아주 살벌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아롱이 가족들이 자리를 빼앗길까 봐 은토끼님과 내가 물과 사료를 놓는 곳이 늘었다.


 공원에서 고양이 밥을 주러 다니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안 가면 애들이 밥을 굶는데 어떻게 안 가요.-

결국 착한 척이 아니라 모질지 못해 자기 돈 들여 얻게 된 일인 것이다. 쉅게 그만 둘 수도 없고.

눈에 밟힌다는 말이 그냥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나도 안다.


 여자 집사님 말은 이랬다. 자신이 밥 주는 주변 세 군데를 챙기시던 분이 공원을 나오지 않으신 지 두 달 정도 되어간단다. 키우던 반려견을 무지개다리로 건너 보내신 뒤에 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예 공원을 나오지 못하신다고. 공원에서 고양이를 챙기다 막상 반려견이 아픈 건 놓쳤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분이 챙기던 곳만이라도 누가 도와줬으면 하셨다. 나도 돌보는 냥이들을 늘리는 건 쉽지 않다.


 그분의 부탁이 아니라도 작년부터 도울만한  분을 찾아보기는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부르면 이렇게 달려온다. 아롱이와 사랑이 모녀

 언뜻 미술관 주변에서 귀요미 밥을 챙길 때 알게 된 남자 집사님이 생각나 한 번 물어보겠다고 했다. 얼른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네셨다. 도움이 그만큼 간절하셨을 테니. 그게 오전 일이었는데 화곡동에 다녀오던 길에 그 남자 집사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제법 커다란 유리 어항을 어딘가로 옮기고 계셨다. 비 오는 날 급식소로 유용해 보이기는 했다. 무게가 만만치 않은 걸 들고 이동 중이신지 좀 헉헉거리시는 느낌이었다.

저 어항(?)을 굳이 짊어지고 오셨다. 사람들 출입이 적은 곳에 마련해 준 냥이 쉼터. 그러나 이런 급식소도 폐쇄되는 모양이다


 제법 한적한 곳에 만들어 둔 급식소까지 따라가 간신히 그분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계속해서 맡아야 하는 건 어렵지만 한동안은 도와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거기까지만 허락해 주셔도 다행이다. 전화번호를 얻었으니 돌아서려는데 공원에서 제일 예쁜 고양이 스프링을 보러 오라며 초대를 하셨다.


 스프링의 매력 덕분에 공원에 나와 살고 계셔서 이런 부탁도 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녀석을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스프링 영역이 미술관 주차장 주변이라고 하시는데 거기는 귀요미가 있다. 귀요미 밥 주면서 녀석을 보게 되면 츄르라도 주며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 같은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긴 할 것이다. 그 나이대 많은 남자들이 골프장을 전전할 법한데 그분은 공원에서 냥이들과 보내신다. 공원 냥이들의 호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각자 좋아하는, 마음에 맞는 일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풀숲에서 기다리다 나를 보면 따라오는 초화지 냥이. 나에게 밥을 맡겨 둔 표정이다

 최근 <고양이가 주는 행복, 기쁘게 유쾌하게>라는 책을 읽었다. 산사 작은 암자에 들어온 고양이들 때문에 집사가 된 보경 스님의 이야기다. 육식을 하지 않는 승려 집사와 고기가 주식인 고양이들의 동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했다. 내가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고양이들에게도 채식을 강요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다행히 고양이들에게 건사료만이 아니라 캔과 트릿도 먹이셨다. 고양이 집사로서 그분의 이 말이 마음을 울렸다.

 

-사물을 이해하는 첩경은 존중의 마음을 갖느냐의 여부에서 달라진다.-


누군가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게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겠지만 우연히 만난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거둘 수 있다면 그것도 자기만의 행복을 찾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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