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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May 26. 2023

아전인수격 해석이라 할지라도

' 고양이가 그렇게 죄 없는 새를 많이 죽여요'라는 댓글에 대한 답변

 까미를 입양한 이유가 있다. 녀석의 눈 때문이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공원 고양이들 중 꽤 여러 마리가 애꾸눈이라는 사실과 그 원인이 대부분 근친 교배에 있다는 걸.


 입양 뒤에 검사를 통해 까미는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평생 하루 1~2회 안압을 낮추는 약을 넣어주는 게 실명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다.

갑자기 안압이 높아지면 이렇게 눈에 눈물이 나온다. 평생 녹내장 안약을 넣어줘야 실명이 되지 않는단다.

 남편은 털알레르기가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자 치매 전조 증상인 줄 알고 정밀진단을 받았다. 동물을 집에서 기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남편은 까미를 입양하는 대신 냄새 맡기를 포기했다. 조각공원에서 검은고양이라는 이유로 남고생 두 명에게 쫒기는 걸 보고 온 날 입양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게 되었다.


 작은 아들은 독립을 해 3년을 원룸에 살았다. 투룸으로 이사를 가자 아롱이 두 번째 새끼 중 하나인 나리를 입양해 키운다. 작은 아들은 나리가 조금이라도 뛰어다닐 수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게 꿈이다. 화곡동에서 이동 거리가 먼 김포 쪽으로라도. 박물관 주변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던 나리를 좁은 집에 가둬 키우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단다.

방에서 부엌 겸 거실 또 다른 방까지 내 걸음으로 열 걸음 정도다

 아롱이는 새끼를 두 번 낳고 3년 만에 포획되어 중성화를 마쳤다. 지금은 딸 사랑이와 박물관 주변 파수꾼으로 살고 있다. 고양이 소리가 나면 쥐들이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소중한 유물이 보관된 박물관 파수꾼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다.

까미와 나리 엄마 아롱이. 나를 보면 일단 바닥에 뒹군다


그릇 하나에 밥을 줘도 이제는 함께 먹는 모자 고등어와 고니. 사람을 아주 좋아한다. 이 두 녀석 입양처를 알아보고 있지만 어렵다.

 은토끼님은 아롱이 첫째 새끼인 까로와 아미 그리고 죽은 아로 새끼 두 마리를 데려다 키우신다. 공원에서 우리가 매일 밥을 주고 돌보는 아이들은 귀요미 다롱이 포함 기본만 여섯 마리다. 은토끼님은 토탈 10마리 이상의 고양이 밥을 챙기시는 중이다.

은토끼님이 입양을 못해 포기하신 귀요미. 아롱이 동복이다. 입맛이 까다로워 나를 자주 계모로 느끼게 만든다.

 아롱이 남매를 만나 우연히 밥을 주게 된 사연은 <공원 냥이 아롱이>에 자세히 나와 있다. 아롱이 남매부터 시작해 지난 5년의 시간은 공원 냥이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된 기회였다. 그리고 이 경험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살벌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릴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일이 생기면 어느새 아롱이의 행동에 견주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아롱이를 보고 돌아설 때면 울컥할 때가 꽤 있다. 폭우, 폭설이 쏟아지거나 강풍,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면 더 그렇다.

 포획되어 중성화를 하게 된 아롱이를 찾아 동물병원에 갔을 때 이제는 녀석을 집으로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수의사 선생님의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 집에서 뛰쳐나가면 공원으로 돌아오지도 못해요.-

공원에서 3년을 산 아롱이를 집으로 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만든 한 마디였다.

- 매일 밥 굶기지 않고 잘 챙기기만 해도 제 수명대로 살아요.-

나는 이 말을 알아들었다. 12층에서 뛰어내려 무지개다리를 건너 간 녀석 때문 만은 아니다. 경험은 때로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

 

  지금도 나는 입양과 야생 중 어느 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생존 환경을 바꿔 적응시키는 게 고양이들에게도 힘들어 보였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들의 처지가 야생보다 낫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많다. 까미는 많은 시간을 베란다 스크래쳐 위에 앉아 밖을 구경한다. 그 뒷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베란다 창가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까미
토성에서 발견한 토끼. 누군가 유기한 것 같다

토성에서 우연히 까만 토끼를 발견해 사진을 찍는데 같은 토끼를 찍던 남자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

-토성에 있던 토끼들을 고양이가 모두 잡아먹었다.-고.

과연 그럴까?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달라도 뭐라고 논하기는 망설여졌다.

토성에 살던 토끼들은 유기된 녀석들이 급속도로 번식해 문제가 되었다. 굴을 파고 사는 습성 때문이다. 흙으로 만든 문화재 관리에 문제가 생겨 포획해 중성화를 시켜 방생했다. 제 수명대로 살다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바로 이 토끼도 최근 누군가 유기한 녀석일 텐데…


<도시를 바꾸는 새들>이란 책을 읽다 보니 고양이에게 희생되는 새만 일 년에 약 3억 마리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었다. 너무 어마어마해서 고양이가 학살자처럼 보일 거라 싶었다. 그 통계를 사실 믿기는 힘들었다.

 책을 쓴 지은이의 의도는 물론 도시 건축물들로 얼마나 많은 멸종 위기종이 생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설계부터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 지에 대한 제안이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새들의 생존권을 위해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했다. 충돌방지용 유리로 창문을 바꾸고 건물에 옥상 정원을 만들어 철새들이 쉬어가게 하거나 텃새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공원에서 아롱이 가족을 돌본 내 경험도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얼떨결에 고양이 밥을 주게 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새를 잡는 고양이들에게 문제가 보이더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공원에 놓는 고양이 건사료의 삼분의 이는 새들의 먹이가 된다. 특히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이면 고양이용 건사료를 먹는 새들은 쉽게 목격된다. 건사료를 놓고 10분 정도만 자리를 비워도 그릇은 순식간에 빈통이다.

 그런데, 자기 먹이라고 고양이들이 새들을 잡아 족칠까? 까치나 까마귀 참새 비둘기 심지어 직박구리에 이름도 모르는 작은 새들을 고양이들이 함부로 해칠까? 공원에서 어쩌다 보이는 새의 사체는 주로 까치다.

 까치들은 정말 영악하다. 나무에 앉아 내가 건사료 놓는 곳을 유심히 살핀다. 심지어 고양이 특식으로 제공한 닭가슴살도 순식간에 갈취한다. 파리가 꼬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걸쳐 둔 뚜껑을 부리로 열고 먹어치우는 까치를 보고 처음에는 경악했다. 닭도 새 종류 아니었나? 동족 아닌가? 싶어서.

 경험해 봐야 안다. 얼마나 어이없는지. 자기 밥을 새들이 먹어치우는 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 멍청한 고양이들을 나는 수시로 본다. ‘이거 뭐지?’하면서.

 - 야. 고양이가 까치한테 밥을 뺏기냐?-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때도 있다. 멀뚱거리며 왜 화를 내냐는 냥이들을 향해.

 공원에서는 까치떼에 몰이를 당하는 고양이 목격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까치가 시끄럽게 짖는 곳이라면 몰이를 당하는 고양이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사람이 맡아 보살피는 고양이들은 새들을 잘 공격하지 않는다. 중성화된 녀석들은 더 순하다. 새들을 먹이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 모습은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내가 고양이 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고양이들이 나무에 올라가는 것조차 사람들에게 자랑하려는 의도 이상이 없어 보인다.


  - 고양이가 그렇게 죄 없는 새를 많이 죽여요,-

 내가 올린 글 두 편에 이런 댓글을 연속으로 달아주신 분이 계셨다. 걱정은 이해가 되었다.


 내 경험은 많은 부분 직접 관찰로 생겼다. 박물관 주변 고양이들은 그 입맛에 맞춘 캔만 하루 2~3개씩 먹는다. 거기다 닭가슴살과 각종 간식을 수시로 제공받는다. 혹시 밤에 배고프면 먹으라며 건사료와 깨끗한 물을 매일 바꿔 채워준다.

 이게 모두 개인이 내는 비용이다. 아전인수 격 해석이라고 해도 한참을 고민하다 글로 써 전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은토끼님은 취미가 고양이 캔과 파우치 사기로 보인다. 그런 분이 점심은 햇반에 집에서 대충 싸 오는 반찬으로 때우신다. 먹일 입이 많다고 개당 이천 원이 넘는 캔을 백 개씩 툭하면 지르시는 걸 알기에 본인 건강도 챙기시라고 말한다.

  좀 저렴한 걸 먹이자는 내 주장이 번번이 기각되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이러다 가랑이가 찢어지거나 새우등이 터지는 건 아닐까 싶으면서도 말이다.


 만약 이런 손길들이 사라지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하다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아니 많이 봤다.


 올해는 박물관 주변에 새끼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날 수가 없다. 암컷들을 모두 중성화시켜서다. 고양이 중성화에 나의 이기심이 없을까? 고백하지만 있다. 밥 먹이는 녀석들이 늘어날까봐 걱정이 안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좀 약한 편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아롱이 가족 밥을 챙겨 먹이면서도 가끔 아롱이에게 미안하다. 녀석은 3대에 자손이 끊겼다. 그게 내가 한 일이다. 살려고 태어난 동물들에게 밥을 먹인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있는 종족 번식의 기회를 박탈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가? 중성화 포획들에서 겁에 질려 날뛰는 고양이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후회한 적이 있다. 고양이 밥을 주러 다니게 된 내 행동에 대해서. 가끔 인종 청소를 한 역사의 죄인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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