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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un 07. 2023

강아지를 분양해 주는 조건

"절대 잡아먹으면 안 돼요!"


 화성시에서 가장 한적한 곳이 청요리다. 오랜만에 가 보니 모내기를 마친 논 주변으로 백로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백로들은 논에 내려앉아 긴 다리를 자랑하며 먹이를 찾는다. 논바닥에서 하는 먹이 사냥도 저렇게 우아할 수가 있나 싶다. 화창한 토요일이라 바로 옆 캠핑장에 텐트가 제법 들어찼는 데도 고요함과 적막함이 한가롭게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졌다.

딸과 손주를 한 화폭에 넣어 그린 그림

 지난봄. 작은 오빠가 청요리에서 맡아 키우던 암컷 새롬이가 새끼를 여덟 마리 낳았다. 그중 7마리가 살아남았다. 새끼를 가진 암컷을 맡은 이유는 적적함이 가장 컸을 것이다. 동탄에 있는 집보다 직장도 가깝고 취미로 그림도 그리며 인근에 지인들도 나날이 많아져 거기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은 들었었다.

 화성이 고향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얽힌 인연들이 있다. 심지어 초등 동창이었는데 서로 못 알아보다 수십 년 만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단다. 하긴 나만해도 최근 졸업한 지 40년 만에 여고 동창생을 무려 네 명이나 만나는 기적이 생겼으니.


 그런데 갑자기 식구들이 확 늘어 좀 당혹스러웠을 것 같기는 했다. 물론 기본 양육의 책임은 어미 개가 지겠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진 모양이라 토요일에 오면 어미개의 보신용으로 돼지 등뼈를 사다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엄마 새롬이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새끼를 낳은 뒤 오 남매의 단톡방으로 사진과 동영상은 몇 번 받아보았다. 그래도 궁금했다. 6월 첫째 주 토요일. 막내 동생이랑 청요리에 갔다. 어미개에게 먹일 돼지 등뼈를 출산 선물로 사 들고.

새씨들이 어미에게 한껏 매달려 있다.

 막내 동생은 기왕 돼지 등뼈를 사는 김에 감자탕을 해 먹자고 했다. 감자탕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움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한식은 만들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결코 쉬운 음식이 아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고 초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감자탕의 존재는 유튜브에서나 가능할까? 요리 고수인 감자탕 명인을 따라 한다고 해도 그게 내편(?)이라고 믿기에는 애매한 찝찝함이 있다. 다 경험이 있어 하는 소리다.


 아들 둘이 어렸을 때는 인근 맛집에서 포장을 해다 먹이는 음식이 감자탕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직접 만들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포장으로는 남자 셋의 먹성을 감당할 고기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다른 양념 필요 없이 기막힌 맛을 내는 엄마표 수제 된장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표 된장이 없어지고 몇 번 된장 담그기에도 실패한 뒤로는 더 이상 감자탕이라는 요리를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랬는데 막내 동생이 흘린 그 청을 왜 수락했을까?


 막내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더 자주 뵙고 싶다는 소리를 한다. 바쁜 노동부 이사관으로 은퇴한 뒤라서 더 그럴까? 화성을 오가며 엄마와 보낸 시간이 새록새록 간절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막내의 입맛을 살펴 줄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어느새 4년.


 엄마는 우리 오 남매 중 누구라도 뭔가 먹고 싶다는 소리를 하면 반드시 해 먹여야 하는 분이셨다. 그런 엄마를 둔 덕분에 먹거리에 대한 수준과 기대가 지나치게 높아진 걸 누굴 탓하랴? 내가 누나니 흉내라도 내야지 어째? 싶었다. 한편으로는 감자탕을 못한다고 버텼을 때의 후폭풍이 살짝 겁나기도 했다.


-조부모님에게 맡겨져 있을 때 누나랑 형이 학교에 가고 나면 신작로 미루나무 아래 멍석 깔고 실패로 만든 탱크 굴리며 혼자 놀았다는 그 대여섯 살 적 이야기가 신파조로 나올지 모르는데. 그 말을 들으면 까마득한 과거 시간 속 그 모습이 나도 모르게 떠올라 안쓰러운 걸 어쩌리? -


 이게 전날 돼지 등뼈를 사다 손질을 하고 각종 야채까지 마련해 막내와 청요리를 오게 된 전말이다.


 어미 개 새롬이는 내 손에 들린 게 자기를 위한 특식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반짝이는 표정이었다. 아마 개코 덕분일 수도 있고.

 엄청 반가워하는 기색!

 녀석과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녀석에게 고기 덩어리를 가져다 바치고 있었다. 속으로 나는 동물과의 교감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높은 건가? 하는 잡생각을 하면서.

자식이 많아 힘은 들어 보여도 엄마 노릇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였다.

 등뼈 덩어리 하나를 건네는 데 눈치를 챈 강아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날 한 마리를 분양해 갔다더니 남은 여섯 마리가 고기를 향해 달려온 것이다. 어미는 아주 엄하게 새끼들을 혼내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등뼈를 물고 갔다. 새끼들의 애처로운 눈들을 떨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단호하게 마트에 들러 사 온 보충용 등뼈의 핏물을 빼기 위해 들통에 물을 붓고 담근 다음 돌아섰다. 하지만 내가 짐작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무리 강아지라고 해도 녀석들이 뛰어나게 예민한 개코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두 달 정도 지나니 새끼들이 주변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전날 손질해 온 등뼈와 야채들을 넣어 먼저 끓이기 위해 안에서 움직이던 그 짧은 순간.

 새끼들이 들통에 매달려 생 등뼈를 입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개들이 원래 생식을 했나??? 깜짝 놀라 들통을 빼앗아왔다.

  눈을 맞추면서 나를 따라오는 걸

 "안 돼!" 하면서 따돌렸다. 애절한 표정이 떨치기 힘들었다.

 그 사단을 겪으면서도 대충 점심이 준비돼 제주로 이주한 큰오빠를 제외한 4남매가 야외용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이앙기가 지나가지 못하는 곳에 남은 모를 더 심는 분들

 드물게 화창한 날이라 신록이 눈부셨다. 청량한 느낌이 드는 바람이 불어와 초여름의 느낌이 좋았다.

 건너다 보이는 논에서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쓰신 분 중 한 분이 일하시다 잠시 근처로 오셨다. 요즘 농부들은 선글라스까지 쓰고서야 논일을 하시나 싶어 나도 모르게 ‘상전벽해?’하는데...

 작은 오빠가 강아지를  오늘 데려가실 거냐고 물었다. 모내기를 마치면 데리고 가시겠단다.  

  “이앙기 두고 왜 직접 모내기를 하시지? ” 했더니 이앙기로 모내기를 마치고 남은 모로 빈자리를 채우는 거란다. 부지런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작은 오빠는 다른 데 정신이 살짝 팔린 모양이었다. 강아지 새끼를 모두 부양하기에는 힘이 드니 일단 분양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단순히 사료를 대는 문제가 아닌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강아지들이 벌써 근처를 돌아다니며 아무 곳이나 배변을 하는 걸 처리해야 하는 것도 일이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심어 놓은 농작물을 건드려 잎을 뜯어 놓거나 파헤치는 녀석들이 만만치 않은 일거리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퇴근 후 쉬거나 그림 그릴 여유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귀여운 강아지에서 듬직한 개가 되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새롬이 가족들을 모두 거두기엔 내가 봐도 무리였다. 한두 마리만 어미와 함께 기르고 새끼들을 키워 줄 만한 사람들을 여기저기 알아본다고 했다. 집 앞에서 모내기를 하던 그분도 그중 한 분인 듯했다.


 부지런히 잘 익은 앵두를 따 씻고 우리에게 싸줄 오이와 상추를 따면서도 마음이 좀 딴 데 가 있는 게 맞았다.

 막상 새끼들을 에미에게서 떼어 내 보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라는 건 나도 알 것 같았다. 아래쪽 어는 집에서도 강아지를 달라고 하는 데 아무래도 그 집에서는 개를 길러 잡아먹을 것 같아 싫다고 했다는 말에서 확실히 감이 왔다.

 나라면 '데려다 예쁘게 잘 길러주세요?" 정도였을 것이다. 분양하는 녀석들의 생사까지 내가 책임지는 건 아니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지 모내기하던 분에게도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절대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생김새도 털색도 제각각인 보나 마나 믹스견이 분명한데도.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을 하며 확답을 받아내려는 걸 보니 말이다.

 

 이제 네 마리가 남았는데 하나씩 제 어미에게서 떼어내 분양을 하면서도 마음이 짠하고 섭섭한가보다. 그건 인지상정! 당연하다.


 작은 오빠는 서너 살에 천자문을 떼고 다섯 살에 한문을 척척 써내 초등학교 입학이 허락된 드문 신동이었다. 뭐든 쉬울 것 같은 데도 농사를 직접 짓기 3년이 되다 보니 배운 게 많아 이제 제법 뭘 수확한단다. 그리고 직접 기른 오이와 상추를 굳이 싸준다.


 집에 가져와 먹어보니 작년에 비해 확연하게 맛이 좋다. 한 때 신동 소리를 들었던 사람답게 각종 야채 기르기도 빠르게 익숙해지는 것 같다며 마음이나 잘 추스르라고 전했다.

  강아지들을 잘 키워주겠다는 약속만이 유일한 분양 조건이었으니 녀석들도 새 주인에게 사랑받으며 자랄 것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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