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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ul 29. 2023

고양이들과 보낸 7월

 7월이 지나가고 있다.

 7개의 고양이 급식소에 물과 건사료를 채우고 6마리 고양이 밥을 챙기는 데 걸리는 건 두어 시간. 한 여름이라 기가 빨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과장일까? 아니, 강제 운동이 된 건가?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매일 2만 보 가까이 걸은 건 맞다. 그것도 땀을 뻘뻘 흘리며.

 그럼에도 몸무게에 변동이 거의 없다. 놀랍다. 노동과 운동의 차이?

밥을 먹으면 점박이 무늬 사랑이는 소 머리로 자주 올라간다

 작년 은토끼님이 발을 다쳐 쉬셔야 했을 때도 하루 한 번만 밥을 주기로 해 놓고 결국 두 번을 나갔다. 그놈의 정 때문에? 녀석들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게 눈에 밟혀 그걸 외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야 한다고 작정을 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루 한 번만 가서 찾아 밥을 주고 여분의 캔을 그릇에 남겨 두고 왔다. 나름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며칠은.


 아롱이와 사랑이가 지내는 곳은 박물관 위 오르막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아유~ 힘들어~~"

헉헉거리며 올라가 둘을 부르면서도 저절로 이런 소리가 나온다. 땀이 이마에서 안경 속으로 뚝뚝 떨어진다.

 다행히 바람이 불면 피서지(?)에 온 기분이 든다. 전망이 탁 트인 곳이라 더 그렇다.

하늘정원 꼭대기 소수레에서 아롱이 사랑이 밥을 먹였다.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오고 저 멀리 남한산이 보인다.
조카 손주 준성과 한나. 뮤지엄 카페에서 둘이 사이좋게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비 오는 날이라 우산을 쓰고 아롱이와 사랑이를 보러 함께 왔다. 더불어 박물관도 견학했다.
유물 모형 블록놀이를 하는 한나와 준성이. 폭염에 박물관 견학 강추한다. 실내가 너무 시원하고 쾌적하다


 7월은 장마가 길기도 했다. 비가 시도 때도 없이 왔다. 다음 날 가 보면 여분으로 남겨둔 먹이에 구더기가 생겨 있기도 했다. 어디 버리기도 난감할 때가 여러 번이었다.


  시장 물가가 장난 아닌 것처럼 고양이 캔 사료값도 갈수록 비싸진다. 공원 냥이 후원자로 가족들에게 손을 안 벌릴 수 없다. 이쁜이 엄마의 후원도 절대 거절 못한다. 이쁜이 엄마는 정말 통이 크시다. 이번에는 귀요미 입맛에 꼭 맞는 캔도 찾아주셨다. 고양이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일 테지.


 하지만 한 번 나가 만나지 못한 냥이가 있으면 다시 가서 찾아 밥을 먹여야 했다. 캔 사료가 금방 변질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어와 고니는 주차장을 배회해 어쩔 수 없이 저녁 시간에 나가봐야 한다.


 해질 무렵이 되면 배가 고파서인지 빗방울이 제법 굵어도 어디선가 달려 나온다. 그러다 보니 매일 두 번 공원을 오가는 수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혀를 찬다. 자업자득(?)이라나?


 문제는 또 있다. 나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녀석들이 나와 자꾸 눈을 맞춘다. 그릇을 씻으러 음수대에 가면 치즈 냥이가 나무 아래 기다리고 있다 벌떡 일어나 다가온다.

고등어와 고니 자리에 매일 나오는 녀석. 왼쪽 눈에 녹내장 증상인 눈물이 보인다. 밥을 안 줄 수가 없다.
음수대에 근처에서 밥을 기다리는 치즈 냥이. 1년 만에 내가 매일 오는 걸 기막히게 알아차렸다. 시간 맞춰 기다린다.
많이 나올 때는 삼색 냥이까지 셋이다. 여분 캔을 모두 털리고 오면서도 캔이 부족한 것 같아 미안하다.
초화에게 밥을 주는 주변 냥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나와 따라다닌다. 삼색 냥이 녀석 한쪽 눈이 멀어 있다..

 결국 내가 벌어들이고 벌린 일이니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오직 정서적인 만족감 만으로 하기 힘든 게 공원 냥이 밥 주기다.

 ‘은토끼님의 한 달 휴가로 인한 공백을 잘 메꿀 수 있을까?' 했는데 그냥저냥 밥을 굶기지는 않았다. 하루도 못 만난 냥이는 없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캔이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간다. 꼭 먹여야 하는 아롱이 사랑이 귀요미 다롱이 고니 고등어 캔과 간식만 가방에 따로 챙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우르르 나와 밥을 청하면 정신이 가끔 가출하기 때문이다. 더위를 먹어서인가? 땀으로 인한 피부 발진도 모기 물림도 신경이 분산되어 한 몫한다.


 

'어떤 달팽이의 소행일까?'에 급식소를 무단 침입해 미끌거리는 투명 액체를 발라놓는 달팽이 이야기를 썼었다. 글을 읽으신 뒤 두 분이 달팽이 퇴치법에 대한 경험을 댓글로 달아주셨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 덕분에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던 내게 두 가지 무기가 생겼다. 건사료 그릇 아래 신문지를 깔아주는 방법과 소금을 뿌려두는 방법이다.

 신문지는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안타깝게도 우리 집이 신문을 보지 않은 지 꽤 되었다는 점. 쉽게 구할 수 없다. 비가 오면 급식소에 빗물이 들이쳐 엉망이 된다. 젖은 종이를 매번 꺼내 교체해야 한다. 망설이는 사이 다른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소금 퇴치법이다. 당장 굵은소금을 들고나갔다. 그날도 이 달팽이 녀석이 건사료통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사료통에 든 사료를 버리고 돌아보니 어디론가 사라진 달팽이. 달팽이도 느림보가 아니었다

 건사료를 모두 쏟아버리고 채운 다음 급식소를 들여다보니 그 사이 달팽이가 사라졌다. 달팽이는 느림보라는 내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짜식! 정말 빨리 튀었네~.'

 물론 잡을 생각도 없었다.

 소금을 뿌리며 왜인지 달팽이에게 소금을 치는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게 달팽이 요리라 하던가?

 ‘요즘 소금이 금값이라도 아끼지 말아야지.’하며 듬뿍 건사료통 주변에 뿌려두었다.

 소금을 뿌려 둔 날. 밤새 비가 왔다. 급식소가 진창에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는 이상하게 비가 들이쳐 엉망이 된다. 습기도 장난 아니다. 모기도 들끓는다. 주변 억새숲에 날벌레를 노리는 거미줄이 여기저기다. 함부로 거미줄을 걷어 내는 내가 거미에게는 불쾌한 침입자일 수 있지만 머리에 붙는 거미줄을 떼어내야 하는 나도 짜증이 난다.

 하지만, 소금 뿌려두기 결과는 성공! 건사료통을 달팽이에게서 무사히 사수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렸어요~’

 아직 손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셔서 캔을 발로 따시면서도 냥이들 밥을 주러 오셨던 이쁜이 엄마의 전언이다.  매일 다량의 빨래를 생산하는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복 많이 받으세요~’

 복 많이 받으실 거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굳이 현재형으로 이야기하신다.


  나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주변 냥이들을 돌보시는 분들에게도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이 축복의 말을 꼭 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툭하면 능선에 올라가 은토끼님을 기다리는 귀요미에게 8월 1일이면 네 엄마 오시니까 걱정 말라며 손가락으로 날짜를 헤아려 줬다. 나만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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