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순 Jul 19. 2023

어떤 달팽이의 소행일까?

 윽! 나도 모르게 손을 뗀다. 귀요미 자리 급식소 건사료를 놓을 때마다 일단 머뭇거리게 된다. 거기 쟁여둔 그릇들과 사료통을 꺼낼 때마다 께름칙하다. 물휴지로 닦아서는 그 미끌거림이 없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물을 담아둔 물그릇도 미끌거린다.

 혹시 물그릇을 수영장으로 쓰나?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달팽이?


 여름 장마로 급식소는 까딱 잘못하면 물이 들어차거나 각종 벌레들이 들끓는다. 개미와 까치가 문제다. 개미는 신기패를 급식통에 그어 두면 조금 나아지긴 했었다. 하지만 어느 장소는 그것도 소용없다. 개미의 끈질김에 당할 재간이 없다.

개미를 쫒은 신기패를 그어놓아도 이렇게 개미굴이 된다.

 하긴 급식소 주변 풀들이 자라는 기세를 보면 각종 곤충들이나 벌레들 집합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원과 박물관 측에서 풀들을 수시로 깎아줘도 며칠이면 풀들이 장난 아니게 자란다. 더구나 지금은 장마철!

 건사료통을 노리는 존재들을 퇴치하기 위해 관리를 매일 하지만 역부족이다. 일부 건사료통은 거의 매일 건사료 개수의 몇 배가 되는 개미 소굴을 보게 된다. 빗물에 젖어 버려 또는 개미 소굴이 되어 쏟아 버리면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게 다 돈인데??? 아까운 마음이 생긴다.


 얼마 전 제주 서귀포시에서 길고양이를 만진 후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 감염된 사례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내가 공원 고양이 밥을 준다는 걸 아는 주변 지인들에게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진드기도 허락받고 고양이 급식소나 냥이들 털에 드나드는 건 아닐 것이다. 나도 감염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어 야외에 놓아둔 고양이 급식소에 물과 건사료 그리고 캔을 주는 그릇을 만질 때 주의한다. 환경문제가 마음에 걸려도 최근에는 일회용 그릇을 쓰려한다. 

귀요미 자리는 이렇게 억새숲에 있다. 나무 아래라 습기도 많아 모기와 각종 벌레가 장난 아니게 출몰한다.

 우리가 관리하는 7개의 급식소에서 가장 난관이 심한 곳이 귀요미 자리다. 억새숲 사이 비탈 지역이기 때문이다. 억새숲에 피부가 쓸리면 상처가 여기저기 생긴다. 한 여름 무더위에도 긴팔과 긴바지가 필수다.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면 장화까지 신어야 한다. 까딱 잘못하면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흙투성이가 되는 일도 생긴다.

폭우가 내리면 귀요미 자리 급식소는 엉망이 된다. 거기다 어디서 달팽이까지 나타나 건사료 위에 투명 액체를 발라놓는다.
비 오는 날 비탈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망가진 우산. 비를 맞으며 고등어와 고니 모자가 밥을 먹는다.

 겨울 못지않게 냥이들 밥 주기가 만만치 않은 게 여름이다. 며칠 전 우중에 비탈길에서 미끄러진 덕에 아직도 오른쪽 팔에 통증이 있다. 

 일부러 비탈길을 올라가 귀요미 밥을 줘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귀요미를 잡아대고 맛난 걸 독식하려는 다롱이 탓이다. 가끔 다롱이를 혼내면서도 내가 어쩌다 공원 고양이들을 차별하는 인간이 되었는지? 필요하지 않은 반성(?)을 할 때가 다 있다. 다롱이를 혼내면서도 돌아서면 그 녀석도 안된 생각이 들어서다.

아롱이와 같이 태어난 귀요미. 경계가 심하고 먹이에 까다롭다. 다롱이 가까이에서는 밥을 먹으려 하지 않아 애를 먹는다.

 비가 자주 오는 날은 그곳을 찾아가 귀요미와 다롱이 밥을 주는 게 미션이다. 더구나 귀요미 녀석의 성격이 문제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수컷 이어서다. 암컷 다롱이의 닦달질에 더 위축되어서인지 밥을 줘도 얼른 먹지를 못한다. 어떤 때는 다롱이에게 여기저기 쫓겨 다닌다. 배가 고프니 멀리 가지도 못하고 쫓기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다롱이를 혼내게 된다. 먹이에 대한 집착이 강한 다롱이에게 맛난 먹이는 거의 빼앗긴다. 평지에 밥을 놓고 마음대로 먹으라고 할 수가 없다. 비탈을 올라가 나무 아래 주면 그때서야 먹이에 입을 댄다. 사는 게 참~ 힘들다 싶다.


 이런 난관에 더해 급식소의 위생 문제는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건사료에 무언가가 자꾸 미끌거리는 투명한 액체를 온통 발라놓기 때문이다. 개미 이상으로 심각하다. 위생이 불안하니 사료를 모두 쏟아버리고 통을 닦은 다음 건사료를 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밥에 이물질이 있다면 고양이들이 먹지 못할 것 같아서다.

비 오는 날 아롱이 모녀는 이 소수레 아래에서 기다린다. 밥그릇에 개미가 꼬이긴 해도 여긴 심각하지 않다.

 처음에는 건사료를 뒤덮은 액체의 성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물그릇 모서리에 붙은 길쭉한 녀석을 보았다. 녀석은 고양이 물그릇을 수영장(?)으로 쓰고 돌아가는 중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매일 건사료를 버리게 만드는 범인은 달팽이? 확정이다.

 물만 갈아주기에는 찝찝하다. 물그릇을 들고 음수대로 갔다. 물에 한참을 닦아도 미끄러운 느낌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 더위에 나에게 일거리를 더 얹어주는 존재를 궁금해하며 제발 껍질 없는 민달팽이 녀석만 아니기를 원했으나 요즘 달팽이들의 대세는 역시 민달팽이. 

공원 냥이들 밥을 주는 마지막 장소 소수레 위는 나무의 꼭대기다. 소수레에 앉아 아롱이 모녀에게 밥을 먹이며  여름의 한 순간을 보낸다.

 그렇다고 별다른 달팽이 퇴치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다. 매일 그릇을 닦고 주변 청소를 해서 달팽이의 접근을 막을 수 있을까? 공원 고양이들의 먹거리와 관련되어 있으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부지런한 손길이 최고의 방법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한편으론 달팽이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자연에 함부로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지 싶으면서도 매일 그 자리 청소를 해야 하는 게 쉽지는 않군 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풀잎에 슬쩍 쓸리기만 해도 상처가 나는 약한 피부를 가졌다. 햇빛 알레르기까지 있어 한 여름 무더위에 햇볕 차단을 위해 모자와 양산에 긴팔 등 온갖 장비를 동원해야 하는 사람이다. 여름 나기가 장난 아닌데.


 땀을 비 오듯 쏟는 한 여름에 매일 급식소 청소라는 일까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개미에 더해 이제는 그놈의 달팽이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던 날의 해프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