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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ul 06. 2023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던 날의 해프닝

 그런 날이 있다. 뭔가 계속 어긋나거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소식을 듣게 되는 날. 그런 날은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스스로 만든다. 결국 불필요한 기력까지 짜내서 쓰게 되는 날이 된다.


 오후부터 장맛비가 강하게 내릴 거라는 예보가 있어 서둘러야 했다. 갑자기 보일러 고장인지 온수가 나오지 않아 대충 세수만 하고 집을 나섰다.


  오후에 손주에게 가신다는 이쁜이 아줌마에게 나눠 드릴 자두에 공원 냥이들 밥과 물이 든 비닐봉지까지 드니 제법 무거웠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갔는데 103호 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인사를 하며 아저씨 안부를 물었다. 아저씨가 도통 보이지 않으셔서다. 지난봄 건강 상태가 안 좋은 모습으로 병원에서 퇴원하는 걸 본 뒤로 걱정이 되었었다.

 아저씨는 4월에 코로나까지 걸려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같은 건물 1층과 4층에 사는 이웃인데 이제야 그런 소식을 듣다니! 먼 친척보다 가깝다는 이웃도 옛말이 된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정말 미안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정정해 보이셨는데….


 이쁜이 아줌마는 입양한 4마리 중 턱시도 냥이 콩콩이를 제일 예뻐하시는 것 같다. 콩콩이는 야생성이 강해 높은 곳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셨다.

 사고는 순식간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날은 콩콩이가 높은 곳에서 내려오다 문짝에 걸려 대롱거리는 데서 일어났다. 거기서 떨어지면 분명 다리가 부러질  같아 마음이 조급해져 콩콩이를 내려주려다 날카로운 발톱에 손가락 사이를 다치셨단다

집안 온갖 곳을 올라간다는 콩콩이. 결국 떨어져 다리를 절며 다녔단다. 진정제도 안 먹어  촬영한 사진을 들고 가 약만 지어다 먹였는데도 거의 회복된 것 같다고 하셨다.
병원 치료 후 보내주신 사진. 3주가 지난 지금도 상처가 쿡쿡 쑤시고 아프다고 하셨다.


 아파트 출입구에서 만나 손을 보니 3나 지났는데도 장난 아니었다. 부기가  빠지지 않은 데다 손등까지 선명한 상처가 생겨 있었다. 사무실 운영만이 아니라 외손주 돌보미까지 몸이 열이라도 부족하신 분이….  와중에도 콩콩이 다리 상처가 조금씩 나아지는  보여 다행이라며 애가 위축될까 걱정이셨다.


 은토끼님은 7  달간 퇴직 휴가를 받으셨다. 다치시기  이쁜이 아줌마는 공원 냥이들 밥주기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오른손을 다쳐 캔을 따지도 못하신다. 그렇게 다치셨는데도 약속을  지켜 미안하다고 하신다. 나는 7월에 있을지도 모르는 모든 약속과 일들을 6월에 몰아서 해치웠다. 괜찮으니 절대 집안 일도 하시면 안된다고 나도 모르게 신신당부를 했다.


 공원 냥이들 주라고 캔을 한 박스 건네시며 잠시 에어컨이 고장 난 이야기를 하셨다. 하필 이 폭염에! 에어컨 연결관에서 물이 새 수리기사를 불렀더니 범인은 고양이. 에어컨 배관에 털이 잔뜩 묻어 있는 걸 보고 고양이 키우시냐고 묻기에 알았단다.


 고양이들은 수리기사님이 방문하자마자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집 안 곳곳에 고양이 물품들이 가득이니 모르려야 모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집에도 고양이가 세 마리라며 그 녀석들을 들이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시는데 이쁜이 가족 입양과 비슷했다. 그 집도 아파트 17층인데 잠깐 방충망을 연 사이 12개월 된 녀석이 뛰어내려 무지개다리를 건너 갔단다.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수리기사의 아내분은 지금도 머리맡에 녀석의 유골함을 두고 잔단다.


 누군가와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끝도 없다. 무더위 속, 에어컨 수리 기사님이 얼마나 바쁠지 안 봐도 훤한데.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애니 생각이 나시는지 눈물이 그렁거리신다. 그래도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시간이셨던 모양이라 생각하며 부지런히 공원으로 향했다.


 며칠 주는 밥을 잘 먹지 않던 귀요미가 오늘은 밥을 먹는다. 긴팔과 긴바지를 입었어도 억새숲 사이에서 나오는 귀요미와 다롱이 급식은 여간 미션이 아니다.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도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우리가 관리하는 급식소는 모두 7군데. 은토끼님은 휴가를 가시기 한 달 전부터  급식소를 새것으로 모두 교체하셨다. 급식소를 치우라는 압박도 있었지만 출근을 안 하실 때 행여 내가 고생할까 봐 하는 마음도 크셨을 것이다.

은토끼님이 사재를 털어 설치해 두신 급식소들. 깔끔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박물관 뒤 급식소를 채워놓고 고등어와 고니를 찾아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하늘공원 입구 배수로에 있는 급식소에서 기다리던 녀석들이 반긴다. 요즘은 밥을 먹고도 같이 붙어 있어 다행이다.

고등어와 고니 모자. 밥을 먹고도 둘이 같이 지낸다. 풀숲에 누워 있는 녀석이 어미인 고등어다

 여름이 되자 아롱이와 사랑이는 하늘공원 꼭대기에서 나온다. 전날은 저녁 시간에 갔었다. 나는 아롱이에게 잘해야 한다(?) 생각할 때가 많다. 까미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롱이에게 고맙다. 이런 녀석을 낳아 내게 선물해 줘서.

사람들 출입이 드문 저녁. 내가 있으면 사랑이는 소 위에 자주 올라가 앉는다.
왼쪽 사랑이. 오른쪽 아롱이.  모녀 사이다. 아롱이는 딸 사랑이에게 밥을 빼앗기면서도  사랑이 등을 자주 그루밍해 준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하지만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곧 비가 시작될 느낌이 들어서다.


 집에 와보니 까미가 거실에 늘어져 있다. 하긴 온 몸이 털이니. 일어나기도 귀찮은 표정이 역력하다. 눈만 데굴거린다.

1시 30분. 푹 퍼져 있는 까미 사진을 큰아들에게 보냈다.

 온수가 고장 나 출장 서비스를 신청하려는데 요즘은 상담원 연결까지 장난 아니다. 각종 안내에서 뭔가 자꾸 삐걱댄다. 게다가 배송시킨 고양이 캔을 1층 우편함에 넣어 둔 건 뭔지? 연락받은 배송 장소가 이상해 전화로 확인하고 그걸 찾으러 1층까지 내려가느라 정신까지 왔다 갔다 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까미가 깜쪽같이 사라졌다.

 비가 들이쳐 스크래쳐를 들여놓고 베란다 문단속을 할 때도 주위에서 어정거렸는데…

 1층 우편함에 다녀오느라 문을 잠시 연 적은 있지만 까미가 문 밖으로 나가는 건 보지 못했는데….

 트릿이 든 간식통을 흔들기만 해도, 간식장을 열기만 해도 어느 틈에 뛰어나오는 녀석이 까민데…

 까미를 찾아 옷장,  베란다 보일러실, 아들  구석구석을 뒤지며 부르고 다녀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까미답지 않다!


  다음 두어 시간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내가 둔해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 현관문밖으로 나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베란다 방충망을 내가 열었던가? 


 녀석 없이 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절대 어이없는 망상이 아니다.


 바람에 섞여 가랑비처럼 내리던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폭우로 변해 쏟아졌다. 행여나 싶어 지하주차장에서 옥상을 오가며 까미를 불렀다. 집을 드나들며 확인도 여러차례 했다. 우산을 들고 집 주변도 살폈다.


 의자에 털썩 앉아 찬찬히 까미의 행적을 복기했다. 큰아들에게 까미의 사진을 보낸 시간과 배송이 잘못된 걸 알게 되어 고객센터에 연락한 시간을 핸드폰으로 확인해보며 기억을 되살렸다.


 평소 비 오는 날이면 까미는 어딘가에 쿡 박혀 자고 자고 또 잔다. 어쩌다 나랑 숨기 놀이를 해도 내가 다른 일로 자기를 찾지 않으면 왜 안 찾느냐고 쫓아와 야옹거린다.


 적어도 내가 부르면 반드시 나온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전날 지난가을 이후 처음으로 목욕을 시켰었다. 목욕이 힘들었는지 그날은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도망을 치던 녀석이 떠올랐다.

전날은 무더웠지만 햇살이 좋았다. 목욕 후 그루밍을 하며 털을 말리던 까미

 그래도 오전에 평소 1일 1개 원칙을 고수하던 츄르도 두 개나 줬는데…. 아직 화가 안 풀렸나?? 나도 모르게 침대에 가 털썩 누웠다. 내가 못 찾을 뿐이지 까미가 가출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어야 했다. 평소 겁이 많아 함부로 어디 나가지도 않는다는 걸….


 아침부터 공원으로 어디로 다닌 데다 까미를 찾아 여기저기 헤맨 탓인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거친 내 숨소리에 퍼뜩 잠이 깨는 순간이었다. 까미가 야옹거리며 나타났다. 그렇게 찾을 때는 꼼짝도 않고 절대 나오지 않더니.

도대체 어디 숨었다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집안에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까만색이라 잘 안 보이긴 하지만 덩치가 작은 녀석도 아닌데..... 나는 왜 녀석을 찾지 못해 그 난리를 부렸을까? 온갖 망상에 시달리며.

 이 해프닝으로 기력을 탕진한 나에게 어이가 없었다. 7월은 우리가 돌보는 공원 냥이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달인데…. 혹시라도 건강 문제가 생기면 절대 안되는데~.


 "까미야. 너 어디 가지 말고 나랑 이렇게 살자~."

 끌어안고 과할 정도로 얼굴을 비빈 모양이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얼굴로 빤히 녀석이 내 눈을 마주한다. 그 녀석의 이름은 까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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