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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Aug 08. 2023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리 고니 보신 분 없으신가요?

없다. 아무리 불러도.

안 나온다.

제 어미 고등어에게 쫓기던 지난가을 겨울에도 어딘가에 숨었다 나와 밥을 먹일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고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이 환풍기 아래 공간에서 고니와 같이 태어난 녀석과 겨울을 났다. 너무 추우면 지하 주차장도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고니를 마지막으로 만난 곳도  이곳이다.

7월 31일 오후 7시 30분경.

고니를 만났다. 지난겨울 추위를 피해 지냈던 환풍기 위에서 박물관 주차장 쪽을 살피는 작고 앙증맞은 머리가  보여 찾을 수 있었다.

 '고니야!'

 부르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왔다. 사람들 출입이 제법 있는 인도까지.

 오전에 만나지 못해 저녁을 먹고 다시 나와 찾아다니던 참이었다. 박물관 주차장 주변을 돌며 불러도 없어 이제 포기하고 내일 오전에 찾아야지 하며 집으로 돌아서던 참이었다.  

 들고 다니던 밥그릇을 꺼내 캔을 두 개 땄다. 하루 3개는 먹는 녀석인데 배가 고플 거라 생각해 서둘렀다. 밥그릇을 놓자마자 허겁지겁 밥을 삼킨다. 천천히 먹으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통은 밥을 어느 정도 먹는 걸 살피고 치킨 텐더를 꺼내 여분으로 더 주고 돌아선다.


 하지만 그날은 우리 집 근처에 다 와 간다는 친구의 연락이 왔다. 새벽에 의성까지 내려가 복숭아를 따 우리 집에 들러 주고 간다고 했었다. 거리가 멀어 늦저녁이나 되어야 서울에 도착할 거라 거라 예상했었다.

 날이 더 어둑해지기 전에 고니에게 밥을 먹이러 부지런히 공원에 나간 이유다. 7월은 어쩔 수없이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공원에 다시 가는 걸 반복했다. 오전에 찾지 못하는 녀석이 꼭 있어서였다. 하루 한 번을 고집할 수 없었다. 은토끼님이 안 계시니 나라도 밥을 굶기지 말아야 했다.

왼쪽이 고니, 오른쪽이 어미인 고등어다. 이 사진을 공원 고양이 협회 단톡방에 올렸다. 내가 불러대자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을 달려오는 모습이다

 그게 고니를 본 마지막이었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는 녀석을 두고 집으로 뛰어와야 했다. 폭염 중에 먼 길을 다녀온 친구를 기다리게 하기 미안해서였다.

평소 고니는 이 담벼락을 거침없이 뛰어왔다.


  다음 날 저녁. 한 달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신 은토끼님을 보러 공원에 갔다. 은토끼님은 다른 고양이들은 모두 봤는데 고니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살짝 걱정을 하셨다. 전날 저녁 내가 만났다며 빈 밥그릇을 찾아 가져다 드렸다. 어제저녁에 나왔으니 배고프면 꼭 올 거라고 말하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밤 고니는 나오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이는 한 달 내내 하루 두 번도 나오던 녀석이 무슨 일일까?


 이틀이 지나 불길한 소식이 들렸다.

 미술관 주변에서 패대기 쳐진 고등어 무늬 고양이 사체를 봤다는.

 아닐 거라고 믿었다. 거긴 고니가 가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양이가 공원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고 해도 그쪽에서 고등어 모자를 본 적이 없어서 더 믿고 싶지 않았다.

이 주변 에어컨 실외기 옆에 고니를 닮은 고양이 사체가 있는 걸 보셨다는 분이 나타났다.

 고니와 고등어 모자는 주차장 주변에서 은토끼님의 껌딱지처럼 지낸다. 그런 연유로 고니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다. 박물관 앞 건널목을 통해 공원으로 개들을 산책시키려 드나드는 사람들 눈에 제법 띄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느슨하다고나 할까?


 고등어 무늬 고양이 사체를 본 시간은 화요일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핸드폰을 들고나가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하셨다. 매일 그 주변 고양이 밥을 주시는 분이 단톡방에 올라온 걸 보고 확인하러 11시에 갔을 때는 볼 수가 없다고 하셨다.

 단톡방에 사건을 올리신 분에게 연락해 사실 확인을 했다. 그분은 고니를 잘 아는 분이었다.

  자는 줄 알고 직접 만져 생사를 확인하셨단다.


 그 연락을 받은 순간 더위를 타서인지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전 주 남편은 전립선 수치가 지나치게 높아 mri를 찍고 조직검사까지 마친 다음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 범위를 찾기 위해 남은 검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정신이 멍청해졌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니 치료하면 된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미술관을 감싸고도는 물가 주변을 한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그 고양이 사체가 고니가 맞다면 녀석은 얼마나 극심한 공포를 겪은 걸까

 고니는 아직 아가다. 이름을 지어 놓고도 망설이다 고니라고 제대로 불러주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이었다.

 한때는 녀석을 책임지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디 입양이나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거리를 이만큼 둔 것이다. 그런데도 녀석은 은토끼님이나 나를 정말 많이 따랐다.

제 어미 고등어와 밥을 먹으면서도 목덜미를 만지고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한다

 내가 고니를 본 시간은 전날 7시 30분 무렵, 고등어 무늬고양이 사체를 본 사람은 다음 날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 시간 차는 겨우 12시간 정도.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고니는 수컷. 1년 3개월 정도 된 녀석이다. 박물관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 녀석이 미술관 근처에서 죽어있는 게 과연 가능할까?

고양이는 영역 동물인데!

알 수가 없다.

믿을 수가 없어 아침저녁으로 녀석을 찾아 돌아다녔다. 사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게 고니인지 아닌지 모른다. 미술관을 감싸고 있는 물가를 찾아가 마치 스틱스 강가에 선 것처럼 아연해서 고니의 흔적을 찾았다.


지난겨울 그렇게 제 어미 고등어에게 쫓길 때도, 긴 겨울 그 모진 한파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녀석인데...

어떤 무서운 일을 겪었을지 모른다. 분명 아프거나 다친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7월 한 달간 매일 녀석을 만나러 하루 두 번 공원을 나갔다. 조금만 배가 고파도 주차장 주변을 슬슬 맴도는 고등어 모자 때문에 신경 쓰여서였다.


도대체 고니에게 무슨 무서운 일이 생겼던 걸까?

평소 가지도 않던 곳에 죽어 있게 된 이유를 나는 절대 알 수 없다.

 고니의 사진을 공원 고양이 보호 회원들에게 돌리고 그 사체가 고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제발 고니가 아니기를 빌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디 갔다 거지 꼴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랐다.


 돌아보면 고니의 짧은 생 동안 녀석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데 나도 참 많이 기여했구나 싶어서다.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제 엄마를 포획해 중성화를 보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장마로 거의 열흘이나 지나 돌아온 고니 엄마 고등어는 새끼 둘을 철저히 내쫓았다. 혼나고 쫓기고 내몰리다 결국 암컷처럼 보이던 녀석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살기 위해 치른 녀석의 대가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전용 집사가 붙어 있어도 녀석의 삶이 너무 짧고 버겁다.

 고니 어미 고등어를 포획하신 분이 했던 말이 오늘따라 더 절감된다.

- 여기에 발을 들인 게 잘못이다.-

혼자 나와 있는 고등어. 고니 어디 갔냐고 자꾸 묻게 된다.

 밥을 먹다가도 내가 움직이면 박물관 문 앞까지 따라나서던 녀석을 몇 번이나 떨쳤던가?

 기왕 까미도 입양했으니 여름 지나 선선해지면 녀석을 입양해 볼까 이리저리 계산을 하던 내가 정말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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