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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Aug 31. 2023

삶이 순탄하기만을 바란 건 아니었다

 8월 1일. 공원에서 돌보던 고양이 중 제일 어린 고니가 사라졌다. 고니가 밥 먹으러 나오는 저녁 시간이면 집에 있을 수 없었다. 고니가 잘 먹던 캔과 1회용 그릇을 챙겨 들고 매일 공원에 나가 녀석이 나오던 곳을 찾아다녔다. 무던하고 순한 녀석에게 그 못된 손이 한 짓을 원망하며.

왼쪽 덩치 큰 수컷이 고니. 오른쪽은 제 엄마 고등어다. 아직도 고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고니없이 혼자 나와 밥을 먹는 고등어. 볼수록 녀석도 짠하다. 녀석에게는 무서운 일이 절대 생기지 않기를~

 17일. 남편은 전립선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작년 11월 조직검사에서는 암세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었다.

 올해 4월. 인근 중형병원에서 CT를 찍었을 때도 일부러 전립선을 자세히 들여다봤다며 이상 없다고 했다. 심지어 건강 검진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도 조직검사 후 6개월이 지났으니 검사와 진료를 받으러 갔다. 이번에는 지난번 조직검사 때보다 혈액검사 암 수치가 높다고 했다. 2주 후에는 배나 더 높아졌단다. 급성으로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해 각종 검사를 받았다.

 

 전립선 비대증에서 2년이 되지 않아 이렇게 빨리 뼈까지 전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검사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닌데.


 수술도 안된다고 했다. 너무 상황이 급진전되니 정신이 가출을 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주사를 맞고 약 처방을 받았다. 이런저런 절차를 밟는데도 현실성이 없는 것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발이 허공에 떠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보호자로 따라간 내가 이럴진대 당사자는 어땠을까?

남편이 처방받은 약. 지난 4월부터 건강보험이 된다고 했다.

 남편은 70대 초반이다. 나이가 들수록 암의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건 정설이 아닌가? 병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데 나이는 상관없는 건가? 정신이 없는 데도 온갖 상념은 넘쳐났다.


 하긴 요즘 모임에 나가면 듣기 싫어도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모습만 기억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들을 때마다 기분이 싸해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 평소에는 잊고 사는 게 있다. 너나없이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남편은 60대 후반에 생소한 직업을 가졌다. 아파트 청소 일이다.  자기 사업을 하던 사람이 나이 들어 그런 직업을 가지는 게 맞는지  나부터 의문을 가졌었다. 하긴 전직 교장선생님이나 경찰 고위직에서 은퇴하신 분들도 학교 지킴이를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긴 하다.


 가족들이 고령에다 체력도 만만치 않게 소모되는 일이라 처음에는 말렸었다. 그러다 더 이상 말리지 않은 이유가 있다. 다양한 장소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 일하는 걸 의외로 즐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일이 적성에 맞는단다. 사람들의 칭찬에 자존감이 살아나고 자신이 몰랐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저절로 알게 되어 좋다고 했다. 물론 미성숙한 사람들의 갑질이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단다.

 나이 들어 제일 먼저 떨쳐야 하는 생활은 루틴이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사회생활을 하는 게 옳은 거겠지..


 남편은 아직 특별한 증상도 없고 신약도 있으니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며 이른 아침 씩씩하게 집을 나선다.

조카 손녀 한나

 22일. 조카 손녀 한나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심장에 넣은 도관에 석회화가 생겨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그런 백화현상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한나는 두 번의 심장 수술을 했다. 태어나자마자 한 번, 4년 전에 한 번. 어쩔 수 없다 해도 한나를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검사 결과를 받아 든 한나의 아빠 큰 조카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오롯이 한나가 견뎌내야 할 시간들에 대해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다면 부모가 아니겠지!


 큰 조카의 상심도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예쁜 딸의 몸에 또 상흔을 만들 생각을 하면 얼마나 아찔할까.

 살아가는 데 넘어야 할 험한 계곡을 두 번이나 넘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넘어야 할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의료 기술이 더 빨리 발달해 그런 일쯤은 쉽게 넘어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고난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나는 한나가 남들보다 더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성장하기에 누구보다 성숙한 인품을 가질 것을 믿는다. 어려움을 극복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 쉽게 공감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도 아낌없이 내밀 수 있다.

 매일 주어지는 삶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즐기는 멋진 숙녀로 폭풍 성장할 것도 분명하다. 한나가 뿜어낼 선한 영향력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이미 그런 자질이 보인다. 차분히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또래보다 내면의 단단함과 성숙함이 흘러넘쳐서다.


고등어는 차들이 드나드는 출구에 앉아 무작정 기다린다. 너무 위험해서 녀석의 밥만은 절대 미룰 수 없다.
한때 통행세를 나에게 받던 초화. 하루 한 번이라도 안 가 볼 수가 없다. 같은 자리에서 시간이 되면 대놓고 기다린다.

 은토끼님이 퇴직 휴가를 가셔서 공원 고양이들과 만만치 않은 7월을 보냈다. 툭하면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염 역시 장난 아니었다. 하루 두세 번 부지런히 공원을 드나들었다.

 나는 워킹맘으로 아들 둘을 키운 사람이다. 아들 중 누가 아플 때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불안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들이 눈에 아른거려서였다.

 비록 고양이들이라도 기다리는 걸 아는 데 외면할 수 없었다. 오늘은 피곤하니 걸러 볼까 하다가도 어느새 주섬주섬 먹거리를 챙겨 집을 나섰다.

 몸은 힘들어도 공원을 다녀오면 마음은 늘 넉넉해져 감사할 일을 찾기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가 온 8월. 한 달 만에 복귀하신 은토끼님은 고니를 보지도 못하셨다. 성가실 정도로 주변을 서성거리던 고니를 보내고 나보다 더 상심하신 느낌이었다.

 나 역시 은토끼님이 교대를 해 주실 테니 몸이 좀 편안해지려나 했었다. 하지만 우리 삶이 어디 녹록하던가? 사는 게 어째 쉬운 게 없다는 걸 절감한다.

 

 우리 모두의 바람처럼 삶이 순탄하지 만은 않구나 싶다. 그래도 힘을 내 보려 한다.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아도 아직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다. 마음이 힘들어 휘청거릴지라도 부르면 어디선가 뛰어나오는 고양이들이 사랑스럽다. 마음에 등불을 켠 것처럼 밝아진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내 등 뒤에서 나를 밀어주시고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그분을 오래 붙잡고 걸어왔으니 9월은 더 활기차게 보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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