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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Sep 08. 2023

고양이가 엮어주는 인연들

 '이 아가씨라면 우리 집 큰 며느리 삼고 싶네~'

 차마 말로 할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결혼은 하셨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대답에 사귀는 사람 있느냐고 물을 뻔했다. 옆에 스프링 아빠(미술관 근처에 사는 턱시도 고양이 아빠다)도 있는데~.

 나도 나이가 든 모양이다. 갈수록 하지 않던 오지랖을 빙자한 속내를 자꾸 내보이는 걸 보니.

 "퇴근하면 곧바로 공원에 나와요. 강아지풀 가지고 한 시간 넘게 놀아주는데요. 아직 애기냥이라 그런지 제가 힘이 딸려요."

공원에 흔한 강아지풀.

 여리한 체형이니 당연히 힘들 것 같긴 하다. 얼마나 재미있게 놀까? 안 봐도 눈에 선하다. 강아지풀은 까미도 꽤 가지고 놀았었다. 지금은 놀잇감에 관심이 거의 없다. 이 자식 벌써 아저씨 행세하는 건 아니겠지?

퇴근해 돌아오면 일단 까미와 뒹구는 큰아들. 내가 없으면 까미 녹내장약 넣어주지, 밥과 간식 챙기기, 심지어 고양이 화장실도 청소한다

 아가씨는 말을 섞을수록 마음에 든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대화 내용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아마 나를 공원 고양이 돌보는 사람 중 하나라 생각해 동질감 내지는 공감대가 있어 편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퇴근하자마자 공원으로 달려와 어린 고양이와 놀아주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새가 얼마나 고운지 알 것 같다. 못난 사람도 있지만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천사라 부르는 사람도 존재한다.


 자기가 오지 않으면 대로변까지 녀석이 나와 돌아다닌다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을 것이다. 슬쩍 이런 아가씨를 며느리 삼게 되면 좋을 텐데 싶다. 까미에게 사족을 못쓰는 사람 중에 큰아들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고니의 마지막이 목격된 미술관 주변의 고즈넉한 저녁 풍경

 미술관 주변은 고니가 사라지고 가끔 나도 모르게 발길을 들이게 되는 곳이다. 이분을 우연히라도 만나기 위해 자주 들러야겠다는 흑심(?)이 생겼다.


 누가 예쁘다고 데려갈지도 모른다며 안 보여준다고 하시더니. 해 저물녘 그곳을 지나가던 내게 딱 들킨 스프링 아빠는 스프링만이 아니라 그 아가씨도 소개해 주셨다.

 스프링 아빠는 마른 체형이지만 키가 큰 편이시다. 그런 중년 남자분이 저녁마다 고양이와 놀아주신다. 눈에 안 뜨이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무엇보다 공원 고양이들에게 무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 여기저기 밥을 챙기는 분들에게 말을 걸어 안면을 많이 익히신 모양이었다.


 스프링이 공원에서 제일 예쁜 냥이라며 하도 강조하시기에 녀석이 궁금하긴 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녀석이길래 이런 호구(?) 집사를 잡았을까 싶은 마음이 컸다. 갈수록 녀석의 입맛은 고급화되는 모양이었다. 내게 보여주시는 진상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 걸 보니 말이다.

 물론 아롱이에게 낚여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고니와 둘이 먹던 밥을 이제 아들 없이 고등어 혼자 나와 먹는다. 무던하던 고니가 안타깝다.
밥을 다 먹고 한적한 전망대 주변에서 마음껏 뒹구는 아롱이. 나나 은토끼님이 있을 때만 이런 행동을 한다

 

 저만치 고양이 밥을 주는 아주머니를 보더니 스프링 아빠가 갑자기 자리를 뜨시며 한 마디 하셨다.

 "공원 고양이 밥 주시는 분들, 얼마나 고마워요. 인사하러 가요."


   아가씨와도 헤어져 돌아오며 얼마 전 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음수대 쪽으로 그릇을 닦으러 가다 스프링 아빠를 만났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터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스프링 아빠는 지난 장마 때 겪은 일을 이야기하셨다.

 

 어떤 못난 놈(?)이 자꾸 자신이 관리하는 고양이 급식소를 망가트리고 그릇들을 여기저기 던져 버려 정말 화가 나셨단다.

 오전에 나왔다 어둑한 시간에 다시 나와 스프링과 밤 10시까지 놀다 가시는 데도 그런 일이 있다면 새벽이 아닐까? 나도 새벽에 남편과 나와 그 못난 놈 중 하나를 혼낸 적('새벽의 추격전')이 있어서다.


 지난 7월은 폭우 수준의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비와 매일 악전고투를 했으니 그 사정은 나도 잘 안다. 비 온다고 애들 밥을 굶길 수는 없다. 장마에는 밥 주기도 미션이다. 그런데 급식소를 망가트리는 못난 놈 때문에 비를 쫄딱 맞아가며 며칠 급식소를 다시 설치하다 보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하셨단다.

 경고문을 써 붙인 데 그치지 않고 걸리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마트에서 산 과도를 비닐에 싸서 올려두셨단다. 경고문 내용이야 나도 써 봤으니 알 것 같았다. 과도를 놓거나 자손 대대로 천벌을 받을 거라는 저주까지는 아니었지만.  

 비를 철철 맞으며 급식소를 매일 밤 다시 설치하는 사람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도 울화병 걸릴 정도였으니.


 고양이 스프링이 지내는 곳은 귀요미 밥 먹이는 장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7월 말부터 귀요미 급식소가 멀쩡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귀요미 급식소와 밥그릇을 수시로 밟아 부숴 놓고 가져다 버리던 그 누군가의 못난 손이 그쳐진 건 스프링 아빠 덕인가?


 사춘기의 정점에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는 녀석들과 줄다리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걸어오는 싸움에서 내가 져버릴 경우 그 피해는 우리 반 나머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제법 있기에 일단 힘겨루기에 밀리지 않으려 한다.

 지금 돌아보면 녀석들이 오히려 나를 봐준 게 맞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봐주었으니 나도 그 시간을 버티지 않았을까?


 사람들 관계에서 제법 강단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도 고양이를 해코지하거나 밥 주는 데 태클을 거는 사람들을 만나면 맞대응을 자제한다. 가족들이 고양이 밥 주는 걸 허락하는 데 건 조건이 있어서다.

-몸과 마음 건강에 도움이 된다니 다니는 걸 말리지는 않겠다. 단, 밤에 나가는 건 안된다. 타깃이 될 수 있다. 해코지로 다칠 수 있으니 시비 걸어도 무시 정도만 하라.'-는.

 

 스프링 아빠 같이 선량하고 재력 있는 남자분들이  공원 고양이들에게 많이 낚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냥이들의 안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좋은 마음으로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출입하는 사람들의 안전도 중요해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소한 인연을 맺으며 즐겁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공원. 스프링 아빠 같은 분이라면 그런 안전망 역할을 은연중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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