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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Oct 12. 2023

함께 놀만하니 집에 가 버렸다

 고양이 합사의 정석이 따로 있을까? 요령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둘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모른 척하는 것.

  오누이라도 까미와 나리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고양이들의 서열정리에 끼어드는 바람에 내가 날린 게 있다. 열흘 가까이 익숙한 잠자리와 숙면의 시간!

까미 앞에서 거침없이 뒹구는  나리.  낮에는 자고 밤이면 집안 곳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녔다

 까미와 나리는 일 년 차이로 아롱이 새끼로 태어났다. 나리를 입양한 날 하루 우리 집에 있었지만 서로 만날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다. 나리가 방에 갇혔다 바로 화곡동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8개월. 생판 모르는 상태로 만나서인지 둘은 오누이가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모르는 사이 정도가 아니라 아르렁대며 틈만 나면 서열 싸움을 하는 고양이들이었다.

영국 런던 주변에서 드론 촬영 중인 작은 아들

  신경이 곤두선 나는 공원 고양이 밥을 주러 외출해야 할 때도 꼭 공간을 분리해 문단속을 하고 나갔다. 공원 냥이들 밥을 주면서도 둘이 붙어 싸우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까미는 독점하던 엄마의 변심을 목격하며 좀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가족들의 관심까지 나리에게 기울었으니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리는 까미에 비해 앙증맞고 귀엽게 생긴 암컷이다. 색깔만 다를 뿐 제 엄마 아롱이 판박이다. 까미 입장에서는 둘째가 태어나 관심 밖으로 밀린 첫째의 기분? 그걸 느꼈을 것이다.

  

  나는 같은 공간에 둘을 풀어놓았다 무슨 일이 생길까 전전긍긍했다. 혹시 서로 냥펀치를 날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싶어 작은 기척에도 눈을 떼지 못했다.

  아들들이 어릴 때 외손주 둘을 돌보러 오셔서 ‘애 본 공 새 본 공'이라고 말씀하시던 엄마 생각이 다 날 정도였다.


 몸집이 작은 나리가 까미의 공격으로 다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평생 녹내장 약을 넣어야 하는 까미도 눈을 다치면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어서다.


 남편은 둘이 알아서 해결을 봤으면 더 빨리 친해졌을 거라며 훈수를 두었다. 서로 만나 서열 정리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나를 나무란 것이다. 그러더니 까미의 얼굴을 나리가 익혀야 한다며 일부러 까미를 숨어 있는 나리 앞으로 데려가 엉덩이를 밀었다.

 그 순간, 까미가 남편에게 하악질을 하며 화를 냈다. 정말 놀랐다

“저 녀석이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그 일로 사람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둘이 알아갈 기회가 필요하다는 걸.

낮에는 숨숨집처럼 만들어준 공간에서 잠을 자는 나리
까미 캣타워에 들어가 있는 나리. 밤에만 나와 온 집에 냄새를 맡으며 거침없이 돌아다녔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안방 남편이 자는 침대에 올라가 탐색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는 금방 풀어 남편에게 안겨다니기도 했다.

  둘의 공간을 분리했더니 나리가 안방에 들어와 함부로 돌아다니는 걸 경계했다. 까미가 안방은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 나리 때문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서로에게 하악질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는 나리가 까미에게 먼저 덤비는 모습도 보였다. 눈치를 보며 도망치던 상태가 역전되었다고나 할까?

 이걸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해야 하나?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냥 지켜보았다.

 말이 오누이 남매지, 제법 긴 시간 안면이 없던 상대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으리라.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코비비기 인사를 주고 받는다. 여기까지 거의 열흘이 걸린 것 같다.

 고양이들이 같은 공간을 나눠 쓰는 걸 용납하는데 필요한 시간. 그게 열흘은 걸렸다.

 일주일 정도부터 남편의 조언대로 나의 개입을 최소화했다. 둘이 아르렁대도 모른척한 것이다.


  더 이상 밤에 모기에 뜯기며 나리와 함께 자는 것도 힘들었다. 다음 날이 너무 피곤했다.


  두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졌는지 나리가 온갖 곳을 돌아다녀도 까미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서로 옆을 스쳐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돌려 지그시 바라보는 까미의 모습이 점잖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다가가 코비비기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롱이가 다른 고양이를 만났을 때 하던 이 행동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아옹다옹에서 무덤덤까지 2주가 지났다.


  작은 아들은 귀국하자마자 여자친구와 득달같이 나리를 데리러 왔다. 나리는 언니와 오빠를 잊어버린 척 데면데면하게 굴며 피해 다녔다. 결국 잡혀 이동장에 들어가 예의 그 곡소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 말에 의하면 까미 오빠를 찜 쪄 먹고 지내다가.


 큰아들 방구석에 숨었던 까미가 한참 후에 나와 한 행동도 살짝 충격이었다. 여기저기 울며 돌아다닌 것이다. 분명 나리를 찾는 행동이었다.

 “야! 있을 때 잘하지. 나리 집에 갔어. 인마.”

  다음에 오면 잘 데리고 놀라는 내게 까미는 또 의외의 행동을 했다. 내 다리를 깨물었기 때문이다.

 “이게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까미가 유독 힘이 없어 보이는 건 내 생각일까? 총총거리며 온 집안을 돌아다니던 녀석이 가 버리니 집안이 쓸쓸해 보이는 건 나만은 아닌 듯…

 

도서관 강좌 리플렛. 기회가 있으면 다시 듣고 싶다. 대진대 백유정교수님 강좌였다;

 지난여름 12주 주당 3시간씩 인근도서관에서 여는 강좌를 들었다. 건축과 교수의 직강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건축이라는 공간 구조의 시대 변화만 배운 게 아니었다. 남겨진 건축물을 통해 조상들의 공간 개념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아파트 문화의 기저에 깔린 공간에 대한 공감까지.

 한 마디로 행복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생소한 분야라도 배우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좋은 집이란? 그 공간에 누가, 어떤 추억이 있는지가 결정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기게 되었다.

 각종 사고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거나 자녀를 독립시킨 뒤에도 그 자녀가 돌아오면 언제든 쓸 수 있게 공간을 남겨두는 부모들의 마음. 그 마음이 와닿았다.


 우리 집은 삼십 년이 다 되어 낡고 늙어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나리도 작은 아들도 본가를 자신의 공간으로  생각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고양이가 아무리 영역동물이라 해도 앞으로 ‘까미 오빠한테 가자~ ’하면 나리가 이동장에 스스로 들어가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차도 넘어 보이는 적벽돌 박물관 주변에  제 엄마 아롱이와 자매 사랑이 그리고 고등어가 살아가고 있음을 마음껏 알려주는 그런 날을 오기를 기대하는 야무진 꿈을 꾼다.

 

음수대로 밤에 가지 않으니 박물관 뒤로 급식소로 찾아 온 치즈 냥이


못 생긴 고들어라고 부르는 녀석. 이 녀석도 인상파다. 고니 아빠 확률이 높아 밥을 안 챙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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