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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Oct 04. 2023

고양이들의 명절

"나리야~ 집에 오면 까미한테 오빠~오빠~~ 하면서 쫓아다녀. 응!"

 작은 아들이 입양한 나리를 데려 오기 전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추석 당일 휘영청 달이 뜬 하늘 정원 꼭대기에서 아롱이를 찾았다. 아롱이는 까미와 나리 엄마다.

 고양이들의 합사가 쉽지 않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나리는 아롱이 두 번째 딸이고 까미는 첫 번째 태어난 아들이다. 입양한 지 까미가 3년 나리는 2년이 되어간다. 어느 정도 집과 사람에 익숙해져 있을 테니 붙여 놔도 괜찮지 않을까?

작은 아들 집 현관에 붙어 있다.

 나리를 본가인 우리 집으로 데려온 이유가 있다. 작은 아들은 영국에서 촬영이 잡혀 10일간 출장을 가야 한다. 명절 연휴에 화곡동을 오가거나 자고 오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암진단을 받은 남편의 세끼를 어떻게든 꾸려야 한다. 음식 만들기를 잘하지도 재미있어하지도 않는 내가 마음만 앞서하는 일이니 손이 더딜 수밖에. 사 먹고 대충 때우던 습관을 버리기 쉽지 않아 매사 허둥거리는 중이다.


 작은 아들은 나리를 입양하고 본가에서 자고 갈 수가 없었다. 지방 촬영을 가서 집을 비우게 되면 내가 오가야 했다. 나리를 데려오는 일이 힘들어서였다. 언젠가는 본가에 데려와 까미와 합사를 시켜 화곡동을 오가는 일을 줄여야 하는데 그게 이번 명절이었다.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까미야~. 넌 아롱이 엄마 큰아들, 나리는 네 여동생. 동생이니 잘해줘야 해~. 알았지?"

이런 소리를 까미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까미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고양이 무시(?)를 일삼더니….

본가에 온 지 4일이 지나도 여전히 바깥 기척에 민감하다. 방콕 수준이었다.


 나리는 중성화 이후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고 난리를 부려서였다. 안정제를 먹여도 소용없어 정기 검진을 포기할 정도였다. 본가로 데려오는 날도 이동장에 넣지 못하면 할 수 없다고 했었다. 섣불리 시도했다 애가 겁을 먹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입양 2년이 되어가는 데 '뭔 놈의 소리야?' 할 분이 많을 것이다. 작은 아들의 대학 시절 별명은 고양이 아빠다. 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고양이에게 유독 마음이 약하다.


 어쨋거나 영국으로 출국하기 사흘 전 대학 강의에 밤샘 촬영도 연속으로 잡혀 있어 그 밤 11시나 되어서야 나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현관에 들어서며 작은 아들이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야~. 내가 니 곡소리를 들어야 하냐?"


내가 이동장을 들여다보며

"나리, 무서워서 울었어~."

대답 없이 새침하게 앉아 있다.

다행히 차 안에서는 소리 없이 왔단다. 작은 아들은 제 방에서 나리와 자고 다음 날 강의를 하러 갔다. 보름 정도나 지나야 올 수 있다며.

식탁 아래 들어가 나리가 있는 방을 지켜보는 까미

 까미는 아직도 누군가의 기척에 예민하지만 평소 작은 아들은 전혀 꺼리지 않았다.

 처음 작은 아들을 마주했을 때도 너무 경계하지 않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작은 아들이 내미는 이동장으로 다가와 스스로 들어갔다. 그날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인데도.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물론 집에 도착하자마자 뒷베란다 세탁기 뒤로 바람같이 날아가 숨어 버렸지만.


 나리는 츄르에 낚여 작은 아들에게 입양되었다. 본가로 온 날도 츄르에 낚였단다.


 제일 어이없는 건 까미의 행동이었다. 작은 아들이 나가자 나리가 있는 방으로 가더니 찬찬히 냄새를 맡고 다녔다. 작은 형이 있을 때는 감히 그 방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리의 화장실을 들여다보는 까미. 집안에 낯선 물건이 들어오면 반드시 검사 과정을 거친다

 서로 안면도 익혀야 하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소리가 갈수록 거칠어졌다.

 "아우우~ 하악, 크르르, "

 결국 숨어 있던 나리와 파바박! 서로 냥펀치를 날렸다.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다.

 싸움을 말리는 내게 까미가 하악질을 했다. 정말 드문 일이었다. 잘못하면 다칠 것 같아 까미의 목덜미 위쪽을 잡아끌고 나왔다. 까미의 심장이 과도할 정도로 벌떡거려 안고 달래는 사이 퇴근한 큰아들이 들어와 까미를 넘겨 받더니

 "심장이 장난 아니게 뛰는 데~"


 대면 1차전에 정작 놀란 건 나였다. 나리가 있는 방문을 열어 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구나 고양이들은 기척 없이 움직이는 데 선수다. 어느새 나리가 있는 방 앞에 가서 냄새를 맡고 기척을 감시하는 까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결국 은토끼님의 조언을 구했다.

 까로를 입양하고 거의 1년 만에 아미와 달님이 별님이 셋을 집으로 데려가 합사 시켜 보신 경험이 있으셔서다. 아미는 까로와 같이 태어났으니 안면이 있어도 달님 별님은 초면이다.

 조언해 주신 대로 스크래쳐와 숨숨집. 두 가지를 더 마련해 주니 나리의 불안감이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


 나리는 제 엄마 아롱이와 8개월을 지낸 다음 입양했다. 영리하고 상황 파악을 잘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수컷인 까미보다 붙임성도 좋고 눈치도 빠르다. 사흘도 지나지 않아 남편과 큰아들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덤으로 다리 사이로 오가는 애교까지 부렸다.

 까미가 방문 앞에 나타나 소리를 내면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까미를 엿먹이는 듯한 행동도 마다않는다.


 틈만 나면 방문 앞에 나타나 나리에게 하악질을 하는 까미 때문에 입지가 이상해진건 까미였다. 지금까지 완전한 자기편이었던 나에게 다양한 구박을 받게 된 것이다.

 "너는 오빠가 돼서 응, 동생한테 무슨 하악질이야?"라든가

 "넌 얼굴도 깜깜한데 이상한 소리로 하악질까지 하면 나리가 얼마나 겁먹겠어? 응!" 같은 외모 지적질에

 "나리처럼 예쁜 여동생이 생겼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이게 연애 한 번 못해본 놈이라 암컷 대하는 법을 몰라, 법을~. 소리 좀 예쁘게 못 내?"라는 모욕성 발언까지.

 여동생에게 쓸데없이 센척하며 하악질이나 하는 못난 놈 취급을 받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리는 까미 몸집의 3분의 2 정도다. 체급 차이가 현저하게 난다. 편을 안 들수가 없었다.

5일째. 까미와 나리의 대화. 까미가 주로 나리가 있는 곳에 나타나 을러댄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소리가 점차 약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나리는 까미 오빠를 겁내는 모양새였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나리를 작은 방에 계속 가둬둘 수 없어서였다. 까미는 안방에서 통하는 앞 베란다 쪽으로만 다니게 했다. 나리가 거실과 부엌을 돌아다니며 영역을 넓힐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나리는 근 일주일이 되어서야 까미 오빠가 거실로 들어올 수 없다는 걸 파악하고야 집을 샅샅이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꼭 오밤중에!

까미의 캣타워까지 올라가 보는 나리
베란다 밖에 격리되어 거실을 들여다보는 까미. 나리의 동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집에서 이렇게 아롱이 아들과 딸이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 공원 냥이들의 명절은 몰려드는 인파로 힘들어 보였다.


추석 당일 바쁜 나의 상황을 고려해 이쁜이 엄마께서 사랑이와 냥이들을 보러 가셨다. 보내주신 동영상을 보니 명절이라고 정말 거하게 차려 냥이들을 먹이신 모양이었다.

추석 당일 사랑이가 지내는 하늘공원
집에서 돌보는 이쁜이 가족. 엄마와 딸이  장롱 꼭대기에 올라가 사이좋게 있다

아롱이만 만나지 못했다고 하셔서 저녁을 먹고 공원으로 향했다.

 아롱이는 하늘 정원 꼭대기에서 기다리다 뛰어나온다. 달구경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아롱이 덕분에 나도 추석 달구경 행운을 얻었다고나 할까?

하늘 정원에서 바라본 한가위 달님
바쁘다고 안 가 볼 수가 없다. 다음날 가보면 급식소 건사료 통까지 깨끗하게 비어 있다.
토성 꼭대기 밥 주는 곳에서 기다리다 나오는 초화.
박물관 뒤에서 대놓고 아는 척 밥을 청하는 녀석. 나와 눈을 맞추면 밥을 주는 장소로 뛰어가 기다린다. 이 녀석도 눈치가 천단이다.

 올해는 울산으로 성묘를 가지 못했다. 작은 아들 일정이 너무 바빠서였다. 단출한 명절을 보내다 못해 정말 쓸쓸한 연휴가 될 뻔했다. 그러나 본가에 온 나리 덕분에 집은 활기가 넘쳤다. 두 녀석을 어떻게 적응시켜 친하게 만들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녀석들 행동을 보고 웃고.

 정작 까미와 나리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힘들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보인다. 공원에서 몇 개월 밥을 먹이고 화곡동 집에서 여러 번 함께 잠을 잤어도 나리는 나를 경계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옆에 와 편하게 드러눕는다. 쓰다듬어 주면 그걸 즐긴다. 든든한 제 편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큰 아들이 들어와 누워 있어도 배를 타고 넘어가 돌아다닌다. 서로 얼굴을 익혀야 한다며 까미를 안고 들어오는 남편을 봐도 도망가지 않는다. 갑자기 강력한 경쟁 대상이 나타나 빈정이 상한 까미와는 달리 적응이 더 빠른 느낌이다.


 안방과 베란다만 출입하도록 까미를 격리하고 나니 나리는 큰오빠 방에도 가 보고 부엌과 거실과 욕실까지 돌아다니며 영역을 넓힌다. 한 밤중에 서로 하악질을 하며 으르렁대던 소리의 톤도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건 확실하다. 까미의 하악질에 나리 역시 '캥'하는 소리까지 지르며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아롱이 아들과 딸로 태어나 우리 가족의 인연이 된 두 녀석이 부디 잘 지내기를. 작은 아들이 명절마다 서둘러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만나면 반갑다고 코비비기 인사를 하며 함께 털을 맞대고 온기를 나누며 지낼 수 있기를~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스크래처에서 온기를 나누며 잠든 녀석들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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