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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Sep 25. 2023

너의 아는 척이?


‘다롱이가 밥 먹으러 안 나오네. 그럴 리가 없는데?‘

 옆에서 그 소리를 듣던 남편이

 ‘그렇게 애를 구박하더니 안 나온다고 걱정은!‘

 핀잔을 준다.

맞다. 구박한 것도 맞고 녀석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가 주기를 바란 적도 꽤 있다.

4년이 넘게 밥을 먹였으니 미운 정이 들만한 데도.

'설마 잘못된 거 아니겠지?'

 내일은 미술관 주변을 찾아볼까? 하다 ‘찾긴 뭘~‘. 안 찾고 싶다. 그동안 녀석에게 당한(?) 일이 만만치 않아서다. 긴 시간 밥을 먹였는데도 정이 들지 않는 이유가 녀석에게는 너무 많다.

귀요미와 뚝 떨어진 자리로 데려가 먼저 좋아하는 걸 먹여야 한다

 간간히(나는 천지 개벽이라고 생각한다) 다롱이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잔디를 깎거나 나무 가지치기를 할 때다. 가지치기를 할 경우에는 사다리차까지 동원해 아주 시끄럽다. 잔디를 깎는 작업을 할 때보다 차량도 더 여러 대 동원되고 작업하시는 분들도 꽤 있다.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다리차까지 동원해 주변이 몹시 시끄럽다 싶으면 밥을 먹으러 뛰어나오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대여섯 번? 작업자들 다수가 남자 어른이라서가 아닐까?



 다롱이는 한 마디로 자기 밥은 철저히 챙기는 녀석이다. 너무 지나치게 챙겨 문제다. 밥은 귀요미를 먹이러 가는 건데 어디서 쏜살같이 달려와 엉겨붙는다. 녀석이 좋아하는 걸 입에 물리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소심하게 머리를 내미는 귀요미 밥을 뺏고 때리고 으르렁거리고~. 은토끼님이 얼마니 화가 나셨으면 “너도 덤벼!” 하시며 훈수를 두셨을까? 당연히 녀석의 아는 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내가 아롱이에게 낚여 그 새끼들까지 밥을 주게 된 사연은 <공원 냥이 아롱이 > 이야기에 담겨 있다. 아롱이가 공원 냥이를 돌보게 된 계기였다면 은토끼님은 귀요미다. 귀요미가 어디에 있던 GPS를 달아놓으신 것처럼 찾아내신다.

다롱이 때문에 귀요미는 이렇게 숨어서 밥을 먹도록 해야 한다.

 귀요미도 입양 시기를 놓쳤다. 워낙 예민해서 밥을 주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귀요미 중성화도 포획 전문가가 데려다 시켰다.


 이쁜이 엄마는 다롱이가 공원 고양이로는 드물게 사회성이 좋다고 하신다. 나나 은토끼님은 너무 달라붙어 짜증 난다고 말하지만. 같은 행동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건 확실한데 나 대신 몇 번 귀요미 밥을 주러 가 보시더니 내가 왜 다롱이를 꺼려하는지 아시겠다고 하셨다. 아마 밥 먹으러 나온 귀요미나 인근 고양이에게 못되게 구는 걸 보신 모양이다. 저도 밥 얻어먹는 건 마찬가지인데 꼭 주인 행세를 한다. 주객전도도 장난 아니다. 오죽하면 귀요미 안 나오면 너도 밥 없다고 수시로 말할까.



 아롱이가 까미 남매 넷을 기를 때였다.

 어느 날 웬 삼색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거침없이 밥자리에 끼어들어 같이 밥을 먹었다. 아롱이 한 마리에서 다섯이 된 터라 먹이값이 슬슬 부담되네 싶던 시기였다. 거기다 모르는 녀석이 막무가내로 먹이에 덤비니 솔직히 쫓아버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새끼들이 다롱이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고 제 밥을 찾아 먹지 못하는 것에 짜증이 났다.

 보통 밥자리에 들어오는 냥이들이 다롱이같이 굴지는 않는다. 내외의 시간을 제법 가지다 밥을 주려는 눈치가 확실하면 가까이 온다. 처음부터 객식구인데 아닌 것처럼 구는 냥이는 다롱이가 처음이다. 결국 아롱이와 다른 삼색 냥이라 다롱이라고 불렀다.

턱시도 냥이 까로 옆에 붙어 밥을 먹고 있는 다롱이. 까미가 그 자리에서 먹다 밀려났다

 아롱이는 이상하게 그런 면에 마음이 열려 있다. 오죽하면 내가

"아롱아! 밥값은 내가 내는데 왜 인심은 네가 쓰는 것 같냐?"

말할 정도였다. 지금도 밥 먹일 때 누가 주변에 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쟤도 밥 주라고 나를 재촉하는 느낌이다. 마치 혼자만 먹는 게 미안하다는 듯이.

 다롱이는 객식구로 들어와 심지어 아롱이 밥그릇에 입을 대고 먹어도 그냥 놔두었다. 아니 비켜주었다. 지금도 다롱이는 밥이 남으면 흙을 덮어버린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 나중에 누구라도 먹으면 될 것을. 이게 아롱이와 차이점이다.

 다만 아롱이가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새끼를 조금이라도 괴롭힌다 싶으면 얄짤없었다.

 얼마나 심하게 닦달하는지 다롱이가 나무 꼭대기까지 쫓겨 올라가 처절하게 울부짖어야 그만둔다. 절대 아롱이한테 이기지 못한다. 체격은 다롱이가 더 큰데도 말이다. 아마 엄마의 힘?.


 오죽하면 내가 아롱이를 이 구역 최종보스 여왕님이라고 했을까? 다롱이의 행패를 막을 수 있는 고양이는 지금까지 ‘꼬짤’이라고 불렀던 알파 수컷과 아롱이뿐이다. 어쩌다 아롱이와 마주치면 다롱이는 흠칫 놀라 슬슬 피한다.


 아롱이 첫 번째 새끼들이 모두 입양되어 잔디 능선에 있던 고양이집들이 폐쇄될 때까지 다롱이는 자신을 절대 객식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꼬짤’에게 쫓겨나서도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다 뛰어나와 배를 채웠다. 생존력 하나는 공원 고양이계에서 최고가 아닐까?

아롱이가 밥자리를 새끼들한테 넘기고 떠난 뒤에도 다롱이는 남아 거침이 없었다.
새끼들이 장소를 옮겨도 어느 새 찾아와 까미 밥을 빼앗는 다롱이

 변죽은 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누군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뭔가를 먹으면 그 옆에 앉아 눈치를 준다. 치킨 조각이라도 줄 때까지 절대 비켜나지 않고 버틴다. 어이는 없지만 그게 녀석의 생존법이라면 대단하다고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은토끼님이 다롱이를 거북하게 느낀 이유는 제법 많다. 겨울집을 만들어주면 새끼들을 모두 내쫓고 혼자 다 차지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아롱이 딸 아로가 새끼를 낳으면서 새끼들과 지내라고 큰집을 마련해 주신 적이 있다. 그것 역시 다롱이 차지였다.

 비 오는 날 아로와 새끼들이 다롱이에게 쫓겨나 비를 쫄딱 맞는 모습을 보셨을 때는 정말 화를 내셨다. 멀쩡한 제 집이 있는 데도 그랬으니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악행에 가까운 녀석의 횡포 때문에 정을 들이려야 그럴 수 없었다고나 할까?


 귀요미에게는 반드시 밥을 주러 온다는 걸 아는 다롱이는 귀요미 근처에 붙어 살았다. 아롱이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덕분에 아롱이 두 번째 새끼들 사이에는 끼지 않았다. 더 쉬운 상대인 귀요미 옆에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귀요미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심각한 일은 아롱이 두 번째 새끼들이 자라 독립하면서 일어났다. 나리가 작은 아들에게 입양되고 공원에 남은 사랑이와 고등어는 새끼를 낳았다, 나는 사랑이나 고등어가 새끼를 어디에 몇 마리 낳았는지 모른다. 둘의 새끼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유일한 녀석이 고니라는 것 밖에는.


 사랑이는 박물관 강당 어딘가에 새끼를 숨겨 두고 밥을 먹으러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제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다롱이에게 수시로 당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당 천장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니 직원들이 새끼를 꺼내 은토끼님에게 맡겨 돌보는 사이. 사랑이는 제 새끼를 찾아 주변을 헤매고 다녔다. 냄새를 맡으며 여기저기 미칠 것처럼 헤매는 사랑이를 보며 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이는 몇 명인지 모를 사람 손을 탄 새끼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았다. 이쁜이 엄마에게 새끼를 입양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새끼마저 금방 무지개 다리를 건너 갔다. 너무 약해져서.

 

 그런데, 다롱이가 그런 사랑이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지금도 사랑이의 귀는 너덜거린다. 체격이 다롱이의 절반 조금 넘을까 하는 사랑이를 수시로 물어뜯고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놀랐다. 사랑이가 목을 물어 뜯기는 장면을 보신 은토끼님은 눈에 불이 번쩍할 정도로 화가 났다고 하셨다. 직접 목격한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연의 순리인 영역 지키기 때문이라 해도.사랑이나 귀요미가 없다면 녀석에게 밥을 줄 이유가 없어 더 열을 받았다고나 할까.

목덜미와 귀를 다롱이에게 물어 뜯긴 사랑이.  목덜미 상처는 나았지만 귀는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사랑이를 제 엄마 아롱이에게 데려다줄 수밖에 없었다. 아롱이를 불러다 다롱이를 잡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다. 무엇보다 사랑이가 다롱이한테 물려 죽을 것 같아서였다. 아롱이도 사랑이의 상태를 알아 본 것 같았다. 누구보다 영리한 녀석이니 당연하긴 하지만. 다행히 사랑이는 더 이상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 아롱이는 지금도 자기 밥그릇에 사랑이가 입을 대면 슬그머니 물러선다. 추운 날 가 보면 아롱이를 깔고 앉은 사랑이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아롱이가 슬쩍 안 된 생각이 드는 이유다.



 공원에 가면 나에게 아는 척을 하는 고양이들이 있다. 가져간 캔이나 파우치를 다 털어주고 돌아서면서도 마음은 넉넉해진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어딘가에서라도 보면 당연한 듯이 쫒아와 아는 척을 하는 녀석 다롱이. 여전히 나는 녀석이 달갑지 않다.

 다롱이처럼 하지 않아도 나나 은토끼님은 녀석이 다가오면 밥을 먹였을 것이다. 밥 인심은 나보다 은토끼님이 더 좋으시다. 눈 하나를 잃은 채 들어온 고등어 무늬 녀석이나 심지어 말썽을 부리던 '꼬짤'도 다가오면 밥을 거둬 먹였다.


 다롱이는 아롱이 밥자리로 들어올 때부터 중성화된 상태였다. 기왕 중성화를 시킬 정도로 관심 있었다면 녀석을 돌보는 것도 책임졌어야 하지 않을까? 중성화만 시켜 다롱이를 공원에 풀어놓고 돌보지 않는 누군가를 오래 원망하지 않게 말이다.


 아롱이나 귀요미가 유독 정이 가는 이유를 녀석은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두 녀석은 주변으로 누가 다가와 밥을 청해도 공격을 하거나 으르렁대지 않는다. 그런 점들이 사람인 나와 은토끼님의 눈에 박히지 않았을까.


 공원살이도 만만치 않다. 사람들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공존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게 인지상정인데…


 불쌍한 생각이 들어 밥을 먹이면서도 다롱이가 아롱이 반만 따라갔어도 녀석의 아는 척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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