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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Dec 12. 2023

닭가슴살 두 개(?)로 타협했다

 하루 닭가슴살 두 개. 그렇게라도 타협해야 했다.

 초화는 캔에 닭가슴살까지 먹고 있는데 아는 척하며 나와 있는 녀석에게 아무것도 안 줄 수는 없다.

삼색이를 피해 멀찍이 데려다 밥을 먹여야 한다.

이미 모르는 사이에서 아는 사이가 되었는데...

 눈치가 천 단인 공원 냥이들은 닭가슴살 한 개라도 줘 본 사람들을 찰떡같이 기억한다. 볼 때마다 눈을 맞추며 은근히 압력을 행사한다. 없다면 모를까? 있는 데도 안 꺼내 놓으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찔레덤불 사이를 잘 피해 다니며 닭가슴살을 빠짐없이 챙기는 삼색 냥이

초화는 은토끼님의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에서 나온다. 은토끼님은 쉬는 시간에야 부지런히 박물관 주변 냥이들을 찾아 밥을 먹이러 다니실 수 있다.


 토성 둘레길은 박물관에서 거리가 제법 된다. 도저히 초화까지 밥 먹이는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그게 문제다. 초화의 밥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챙겨야 한다. 밥을 하루쯤 굶으라고 할 수도 없는 건 당연하다. 처음부터 안 먹였으면 모를까?


그런데, 여름부터 초겨울까지 초화만 먹일 수 있던 밥자리에 얼마 전부터 삼색이 한 마리가 등장했다. 녀석은 초화보다 상수(?)인 모양이었다. 밥을 주고 돌아서다 보니 당당하게 초화가 먹는 밥을 빼앗고 있었다. 초화는 녀석에게 밀려 도망을 다니는 형상. 하루 한 번의 밥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멀리 가지도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았다.

 자기 밥도 지키지 못하는 녀석 밥을 먹이러 와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나도 못하는 게 많다. 고양이들이 눈을 맞추고 뭘 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잘 모른다. 나를 아는 척하는 녀석들이 몰리면 그 장소를 피해 멀리 빙 돌아 다른 길로 다닌다. 그렇게 녀석들에게 잊히고 싶다. 희망사항이지만.


 결국 밥그릇을 들고 초화를 조금 멀리 데려가 밥을 먹여야 했다. 삼색이 녀석도 더 멀리는 쫓아오지 않았다. 문제는 마음에 걸렸다는 거다. 공원 냥이로 태어난 건 녀석이 원해서가 아니다.

 공원에도 살벌한 냥이들의 자연법칙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초화가 어느 정도 밥을 먹는 걸 보고 결국 녀석에게 되돌아왔다. 조금 거리를 두고 가방에서 꺼낸 여분의 닭가슴살 봉지를 보여줬다. 조금 멀찍이에서 닭가슴살 봉지를 뜯어 나뭇잎 위에 올려놓았다. 손짓으로 여기 있다는 사인을 했다. 그걸 눈여겨본 녀석은 내가 비켜남과 동시에 총알같이 쫓아와 물어갔다. 너무 적어 보여 한 개를 더 꺼내 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든 물가가 고공행진 중이니 고양이 캔 가격도  제법 올랐다. 박물관 주변에 가서 아롱이를 부르면 슬그머니 나오는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다. 녀석들은 아롱이를 부르는 소리를 밥이 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돌보는 고양이들에게는 각자 좋아하는 캔과 간식을 살뜰히 챙겨 먹이면서

'넌 누구냐?'

 하며 모른 척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녀석들에게도 무언가를 먹인다. 돌아서며 눈에 밟히지 않으려면 말이다. 다들 원하는 만큼 먹일 수는 없으니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있는 걸 다 꺼내 주고 돌아선다.


 원하는 대로 다 먹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문제는 돈이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는 여기저기 문제가 생겨 있다. 사람들이 가진 실손보험조차 들지 못한 입장에서 잦은 병원 출입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고양이 캔과 닭가슴살에 각종 간식들을 산다. 그 비용을 계산도 안 한다. 성격상 뭘 계산하는 걸 못한다. 아니 오래전부터 나는 수포자였다.

 나도 모르게 냥이들이 잘 먹는다 싶으면 일단 지른다. 우리 집에 오는 택배의 대부분이 고양이 관련 물품들이다. 더 이상의 지출은 나도 망설여진다. 밥 먹이는 고양이들의 개체수를 늘리지 않으려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초화 주변에서 우르르 나오던 5마리 냥이들을 피해 평소 다니던 길을 멀리 돌아서 다니는 실정이다. 자박자박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그 기대하는 눈을 도저히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다. 가방에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는 걸 그냥 꺼내 놔야 한다.


 한동안은 내가 왜 이렇게 쉽게 고양이들에게 낚이는 타입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마음이 약해서~, 더 큰 이유는 아마 직장을 다니며 아들 둘을 키워봐서가 아닐까 싶었다. 장시간 일해야 했던 터러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 그것 때문에 나를 기다리는 녀석이 있으면 마음에 걸려하는 게 아닐까?

 초화는 같은 장소에서 끈질기게 기다린다.  내가 가지 않으면 저녁까지.

그 장소를 알아챈 삼색이 녀석도 기다리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매일 같은 장소에서 나온다. 이제 어쩔 수 없었다.

둘이 경계는 하면서도 멀리 가지는 않는다. 밥이 걸려 있어서인 모양이다.

 하루 오백 원! 이 정도로 될까? 초화가 밥을 먹는 동안만 녀석을 커버하기 위해 내가 들여야 하는 돈이다. 가장 저렴한 고양이용 닭가슴살 두 개를 주는 걸로 마음을 정했다.


그 장소는 찔레나무가 여기저기 자란 덤불숲이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찔레 가시에 손이 찔린다. 옷도 걸려 뜯겨나가 아주 조심해 다녀야 한다. 그런데도 다른 냥이들 눈을 피해 초화에게 밥을 먹일 최적의 장소였는데.

 다른 녀석이 이 장소를 알아채면 어쩌지? 왜냐하면??? 녀석에게도 초화처럼 차별없이 고양이 캔을 줘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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