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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Dec 04. 2023

어쩌다 하루 걸러가면 안 될까?

 가끔은 하루 걸러가면 안 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날이 있다.

숨어 있다 밥을 먹으러 그릇이 있는 곳으로 오는 초화

 비가 왔다. 날씨가 더 추워질 거라는 전조였다. 밖을 내다보니 바람까지 분다. 길에 떨어진 낙엽들이 뒹구는 모습이 더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유별나게 집을 나서기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공원을 나가는 게 가끔은 이렇게 망설여질 때가 있다.


 그래도 가 봐야 하나?


 무슨 생각을 더 해? 지금은 비도 그쳤는데. 냥이들은 비가 와도 나온다. 어떤 비 오는 날은 비에 흠뻑 젖은 채 기다리고 있다. 초화만 해도 어디를 다녀오느라 비 오는 날 조금 늦은 시간에 나갔다 깜짝 놀랐다. 비가 제법 내려 설마 나와 기다리랴 싶었다. 그런데 늘 나오는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해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뒤로는 일이 있으면 일단 녀석 밥을 챙기고 이동한다.


 물론 이른 시간에 나가도 있다. 눈 뜨면 나와서 기다리는 모양이다. 밥 주는 사람을.


 여름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토성 둘레길 제법 외진 곳에서 초화에게 밥을 먹였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녀석들이 초화만 따로 밥을 주는 장소를 눈치를 챈 모양이다. 하긴 눈치 하나는 천 단인 녀석들이 모를 리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박물관 주변 냥이들도 기본만 6마리지 열 마리 이상이 늘 대기한다. 초화 주변으로 한꺼번에 5마리가 더 늘어나면 감당이 안 된다. 하지만 먹이 공급이 생존과 직결되니 녀석들을 떨치기도 쉽지 않다. 원하는 녀석들 모두에게 닭가슴살이라도 하나씩 주려하면 비용이 장난 아니다. 초화에게도 캔 하나에 닭가슴살 하나 주다 점점 늘어나고 있다. 비가 와서, 날이 추워서.

 아롱이 사랑이 고등어 귀요미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 먹여야 추위를 견딜 수 있다. 그런데 다섯이 더 나오면? 초화에게 먹이를 주는 게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갈수록 추워지는데 어쩌지 싶다. 그렇다고 굶길 수도 없고.


 하루 한 번 가는 나를 울 것 같은 얼굴로 종일 기다리고 있는 걸 모른다면 모를까?


 요즘 초화 주변 녀석들에게 먹이를 주시던 분이 매일 오시지 않는 모양이다. 그게 문제다.


 며칠 전 스프링 아빠 이야기를 들었다. 두 달 동안 동남아 어딘가로 ** 여행을 가셨다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그럼 애는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스프링은 어쩌고? 매일 밥 주고 놀아주던 사람이 두 달이나 안 가면?

공원에서 제일 예쁘다며 나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자랑만 하시던 그 스프링을 두고? 두 주도 아니고 두 달간 무슨 **여행이람. 누구에게 단단히 부탁은 하셨겠지? 그래도 걱정스러워 스프링이랑 놀고 계시던 장소에 갔었다. 급식소에 먹다 남은 건사료가 있기는 했다. 이틀 동안 들러 불렀지만 주변에 고양이는 없다. 녀석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 나는 솔직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얼핏 턱시도 고양이였다는 것만 기억난다. 누가 예쁘다고 입양해 갈까 봐 걱정이라더니... 더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집사가 오지 않아서인지 쓸쓸해 보이는 급식소와 겨울집

 아롱이도 초화도 어디에서 날밤을 지새는지 모른다. 날이 화창하면 나무 밑 둥치에 기대 해를 쪼이는 고양이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해라도 쨍한 쾌청한 날은 그래도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싶다.   

맑고 화창한 날 고양이 급식소가 있는 공원 숲길

 밥때에 맞춰, 오전 중에 가 보려 해도 딱 시간을 맞추기는 어렵다. 결국 내 시간이 랜덤인데. 초화 녀석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거 하나는 정말 철저하다. 이른 시간에 가야 하는 날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녀석들이 나오지 않으면 가끔 가보기 힘든 사정이 있을 때 하루쯤 급식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제 돈 들여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 한다.


 하긴 비가 온다고 굶을 수는 없겠지. 오히려 비 오는 날이면 그 찬비를 맞으며 기다리다 감기라도 걸릴까  더 마음이 쓰인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아롱이는 박물관 뒤에서 뚱고등어 녀석에게 쫓겨난 모양이다. 요즘은 까미 등 첫 번째 새끼들과 지내던 갈대숲 사이로 옮겨와 있다.

 아롱이는 공원 박물관 주변 고양이로 5년을 살아서인지 내가 밥을 주고 지키고 서 있으면 편하게 밥을 먹는다. 사람이나 개가 다가와도 일단 내 존재가 그들을 막아줄 거라는 믿음을 보인다. 그런 녀석이 요즘은 자꾸 주변을 살피고 밥을 먹다가도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뚱고등어를 볼 때마다 아롱이 건드리면 국물도 없다고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까미 엄마 아롱이라 날이 추워질수록 더 마음이 쓰이는데~.

비를 맞으며 밥을 먹는 다롱이
철쭉나무 사이에서 비를 피하며 밥을 먹는 사랑이
까미처럼 올블랙인 공원 고양이.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공원 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다 보니 겨울나기를 하는 고양이들을 무덤덤하게 보기 어렵다. 인근 마트를 갔다 장미원 근처를 지나다 보니 까미처럼 온몸의 털이 까만 녀석이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한쪽 눈이 잘못된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가방에 들어 있던 닭가슴살을 내밀었다. 밥을 주는 사람이 있는지 도망을 가지는 않는다.


 냥이들이 겨울을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된다.

고양이 페어에서 작은 아들이 사 온 목덜미를 빼지 않고 안겨 다니는 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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