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하러 화성 청요리에 갔다.
며칠 김장 양념 거리를 사다 다듬고 씻고 잘라 김치 냉장고에 보관했다. 김장은 하지도 않았는데 허리 통증이 생겨 걱정될 정도였다.
'이제 나도 슬슬 전문가의 솜씨에 맡겨야 하나?'
김장은 양념 준비부터 만만치 않다. 해마다 우리 엄마는 100 포기가 넘는 김장을 하셨다. 하긴 아들이 넷인데…. 겨울 준비에 김장은 행사 중의 대행사였다. 창고에 연탄을 가득 들이고 쌀을 마루에 쌓아 두면 긴 겨울이 기다려졌던 제기동 시절. 그 세 가지가 우리 가족의 풍요롭고 마음 든든한 겨울 준비였다.
내가 결혼해서 분가한 후 우리 집 김장은 수십 년간 남편이 주도적으로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나보다 김장의 추억은 남편이 더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편은 두 분이 돌아가신 뒤 밤이나 감을 볼 때마다 그것을 거두는 걸 돕느라 힘들었던 일들도 모두 추억이 되어 버렸다며 아쉬워한다. 그런데 이제 김장에서도 손을 떼는 날이 오다니~. 아쉽기는 한 모양이다.
구포리 땅이 수용되어 청요리로 이주하고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니 다시는 화성에서 김장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작년부터 청요리에서 김장을 하게 되었다. 김장에 필요한 각종 장비까지 챙겨 가야 하니 이삿짐 수준이 되지만 청요리 김장이 좋은 점도 있다. 복작거리며 집에서 하는 것보다 공간이 넓어 일이 수월하다. 무엇보다 남매들과 소원했던 시간을 보충할 수 있다.
김장을 빙자한 가족 모임은 여자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해 왔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님을 작년과 올해 확실히 느낀다.
청요리는 태행산 자락 바로 아래에 있어 물맛이 아주 좋다. 근방에서 자라는 각종 야채들도 때깔부터 다르다. 외진 곳이라 평일에는 사람들 출입이 거의 없어 시끄럽게 굴어도 걱정이 없다.
청요리 창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은 오빠가 왜 개들을 기르는지 알 것 같다.
작년에는 바로 위 밭에서 기른 배추와 무를 사서 썼다. 올해는 우리 김장을 위해 배추와 무를 일부러 심었다며 언제 김장을 할 거냐고 묻는다.
청요리에 간 막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무와 배추 사진을 보내주었다. 튼실해 보이지는 않아도 농약이나 비료를 하지 않고 땅의 힘만으로 기른 유기농 배추와 무다.
남편을 위해 육류를 절제시키고 각종 나물 반찬을 하던 터라 얼른 그걸로 김장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올 김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남편 없이 해야 한다는 점.
우리 집은 작년 김장 김치를 아직도 먹고 있다. 김치의 싱싱함은 단순히 김치 냉장고의 힘만은 아닌 것 같다. 싱싱하고 믿을만한 유기농 배추와 무에 청정한 물맛이 남다르니 그것만으로도 올해 김장은 성공하지 않을까?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평생 자매가 없는 고명딸로 살아왔다. 그렇지만 무겁거나 힘든 일 돕기라면 자신 있는 남자 형제들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으니 김장이라는 노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추워지면 야외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 힘들어지고 배추가 밭에서 얼어버릴 수 있다.
11월 말.
예보를 참고해 날을 잡았다.
김장을 하는 이틀 동안. 날이 화창하고 따뜻해 야외에서 찬물로 일을 해도 전혀 춥지 않았다.
아침 출근 시간이 지나 막내 동생이 과천에서 송파 우리 집으로 왔다. 남편은 걱정을 많이 한다. 처남들 도움을 안 받을 수 없지만 그래도 미안한 데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이 해 오던 일을 떠맡겨야 하는 터라 나름 아쉽기도 한 모양이다. 그래도 막내가 열심히 도와줘 고마웠다.
전직 노동부 이사관을 김장 도우미로 부려먹다니. 나도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이 들어 은퇴하면 다 내려놓고 소소하지만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니 미안함을 접기로 했다.
또 다른 도우미 작은 오빠는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낚시 여행을 하며 여유 있게 지내지만 한 때 중국에서 1500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렸던 중소기업 대표였다.
여자가 나밖에 없어 명절 일손이 부족할 때 빛을 발하던 작은 오빠의 솜씨도 어디 가지는 않았다. 깔끔한 일머리로 여간 도움이 된 것이 아니다.
청요리 개들로 성장한 새끼들이 튼실하게 자라 반겼다. 물론 말썽도 만만치 않았다. 깔고 앉아야 할 의자나 심지어 잠시 벗어 놓은 고무장갑을 물고 도망 다녀 작은 오빠가 한참을 쫓아다녀야 했다. 녀석들의 저지레에 일을 잠시 멈추고 웃을 수 있었다.
작은 오빠는 밖에서는 남자가 요리를~~~.' 이런 소리를 가끔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지 잘하는 데다 음식의 모양과 맛 모두를 야무지게 잘 살렸다. 한 마디로 어떤 음식을 해도 생각보다 더 맛이 좋았었다.
막내와 내가 도착하기 전 배추와 무를 뽑아 다듬어 놓고 배춧국을 끓이고 밥도 새로 해서 꺼내 놓는다. 밥에는 내가 좋아하는 콩이 듬뿍 들어 있다. 제법 먼 길을 온 동생들이 분명 배고플 거라고 생각해 준비한 모양이다. 심지어 직접 동치미를 담갔다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야외용 그릇들이라 어수선하고 김치들도 통째로 내놓았지만 모두 맛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배춧국 맛이 압권이었다. 너무 맛이 좋아 이걸 어떻게 끓였느냐고 물어봤다. 그냥 재래식 된장을 풀고 멸치만 넣었단다. 그런데 이런 맛이 나다니!!! 아무래도 배추 맛이 남다른 건가?
밥을 먹고 바로 무를 씻었다. 배추는 잘 다듬어 놓은 데다 상태가 깨끗해 바로 절이기 시작했다. 역시 힘든 건 막내와 작은 오빠가 도와준다. 무채를 썰어 비닐봉지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도 남자 둘이 붙으니 뚝딱이다. 내친김에 남은 무를 썰어 무깍두기까지 담갔다.
돼지고기로 수육을 하고 김장용 육수를 끓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 과천으로 향했다. 토성 둘레길에 있는 초화에게 밥을 주고 갔는 데도 서둘러서인지 청요리에 일찍 도착했다. 작은 오빠는 어제 부탁한 대로 배추를 깨끗이 씻어 물을 빼 둔 상태였다. 야채들과 고춧가루 각종 젓갈들을 어제 끓여 놓은 육수에 섞어 배추 속을 만들었다.
그 사이 막내가 점심을 차린다. 시장기가 밀려왔다. 점심까지 먹고 배추에 김치 속을 넣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 시간은 2시.
이런저런 도우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작은 오빠와 막내 동생 덕분에 올해의 김장이라는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다.
나는 평소 여자 형제가 없어 은근 서운해하며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작은 오빠는 올해 수확해 짜 둔 들기름을 잊지 않고 챙겨준다. 나물 요리에 이모저모 쓸 수 있는 직접 길러서 짠 들기름을 얻다니!
남편의 발병에 이어 신약 부작용으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올해는 김장을 어쩌나 했는데...
이틀간의 김장 여정을 정리하는데 까미가 식탁 위까지 뛰어 올라오더니 까만 발을 전원에 슬쩍슬쩍 들이밀며 자꾸 방해질이다.
큰 일거리 하나를 마무리해서인지 마음이 넉넉해져 짜증이 전혀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