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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by 권영순

목소리가 너무 컸나? 지나가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볼 정도였으니.

나는 스스로 내향적인 A형이라고 믿고 있다. 웬만하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화가 나는 일이 생겨도 문제를 크게 벌이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다는 중학생들과 34년을 보내고도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맞을 수도 있겠다. 나만의 자평이지만.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일도 부지기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난방이 들어오는 침대 속에서도 춥다고 이불을 덮어 준 까미

그런데 이 날은 화를 안 낼 수 없었다. 아롱이를 공격하는 뚱고등어 녀석 때문이었다. 그것도 제 밥을 챙기는 내 앞에서!

녀석은 수컷이라 암컷들을 공격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산소 앞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고등어가 종일 나오지 못하는 걸 본 적이 있어 내심 의심을 안 했다는 소리는 못하겠다.


고등어 밥을 챙기러 여러 번 갔는데 고등어가 안 나와 너는 그만 가라고 화는 냈지만 밥은 먹여 보냈다.


녀석은 애들과 다른 캔을 주면 눈치를 주며 따라다닌다. 애들 먹는 밥을 빼앗아 먹기까지 해 왜 남의 밥은 빼앗냐고 성질을 낸 적도 여러 번이다.


결국 애들 밥과 같은 걸 줬더니 따라와 확인까지 한다. 코로 냄새를 맡고야 먹는데 어이가 없었다.

침대에서 뒹굴며 마음껏 가족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까미

비록 밥을 얻어먹는 처지라 해도 차별(?)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건가? 생긴 건 대충(?)인 거 같은데 그 치밀함에 혀를 찼었다.


처음 이 녀석이 애들 주변에 나타났을 때는 인상이 험악해 못 생긴 고등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외모로 차별한 건 아니다. 녀석이 우리가 돌보는 아이들 영역에 들어와 괴롭힐까 봐 걱정하긴 했지만.


공원 고양이를 돌보는 분이 정산소 앞을 지나가다 녀석을 알아보시고

"어머, 너 여기와 있었니?"

하셨다. 우리의 걱정을 듣더니 중성화해서 힘이 빠져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가을이 깊어갈수록 공원 고양이들의 안위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내 앞에서 아롱이를 공격하다니. 배까지 보여주는 아롱이를~. 아롱이가 그 정도 공격 당하는 걸 면전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박물관 주변에서 아롱이를 매일 불러대는 소리를 녀석이 모를 리 없다. 그 주변 고양이들에게는 밥이 왔다는 신호가 될 정도라고나 할까?


눈에 불이 번쩍 난 내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니 아롱이를 몰아대는 걸 멈추었다. 원래는 녀석이 먹는 밥을 주고 아롱이는 사랑이와 먹이기 위해 하늘공원으로 데려가려고 했었다.

녀석에게 밥을 주기 위해 들고 있던 밥그릇을 나도 모르게 내팽개쳤다.


“너어~, 우리 아롱이 건드리면 국물도 없어! 아롱이랑 애들 건드리기만 해 봐.”


사춘기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학교 교사 시절. 철없는 주장을 하는 학생들과 말싸움을 하다 보면 스스로 ‘내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는 자괴감 이 저절로 들었었다.


딱 그런 기분이었다. 공원 냥이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토성 꼭대기에서 기다리는 초화도 안 가 볼 수가 없다. 기다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녀석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누가 나 대신 오늘치 식량을 공급할리 없으니.

결국 30분 정도 지나 다시 그 자리에 갔다. 없다. 녀석이 싫어하는 차별을 대놓고 했으니 자존심이 상하긴 했겠지 싶어 그 자리에 캔만 두고 돌아섰다.

환풍구 위에 올라가 주변을 감시하는 아롱이.

늦가을 날씨답게 비가 오고 조금 더 추워지는 날이 자주 반복됐다. 근래 밥을 먹다가도 내가 움직이면 따라나서는 아롱이 때문에 날이 쌀쌀해질수록 마음이 짠해 뚱고등어 녀석에서 더 화를 낸 거 같아 돌아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롱이는 추운 겨울을 어느 장소에서 나는지 모른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뚱고등어 녀석이 괴롭히면 어디로 가 긴 밤을 지새울까?


고양이들은 유독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베란다 문을 열면 먼저 나서는 까미도 요즘은 침대 위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은토끼님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원을 자주 갔었다. 그런데 최근 남편의 발병으로 공원을 들러 아롱이를 찾는 날이 줄어들었다. 그런 연유였을까?

환풍구 아롱이.jpg 낙엽이 쌓여 있어 아주 춥지는 않겠지만 그 위에서 멀리 지켜보다 야옹 소리를 낸다.

아롱이는 높은 곳 올라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환풍구 위에 올라가 지켜보고 있을 줄이야? 제법 높은 환풍구 위에 아롱이가 올라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제법 쌀쌀한데 그 썰렁한 환풍구 위에는 왜 올라가 있었는지? 아마 전날 오전에 그 옆길을 지나가는 걸 본 모양이다. 그래도 이렇게 기다리니 나로서도 녀석의 밥을 늘 챙겨 다니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 겨울인데... 겨울집을 쓰지 못하게 아예 물에 던져버려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전적으로 자기 편인 사람이 그래도 붙어 매일 밥을 챙겨 먹이니 그나마 다행인가?

최근 누군가 호숫가 주변 겨울집들을 물에 다 던져 못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산책 나온 개와 사람에게 쫓기는 일상에 같은 고양이에게도 공격을 당하는 아롱이를 보고 온 날.

뚱고등어 녀석에게 공연히 화를 냈나 싶어 마음이 어수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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