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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Nov 09. 2023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무슨 이런 날씨가 있지?  소나기가 퍼붓다 활짝 개었다를 반복한다.

 우리나라 가을은 맑고 파란 하늘이 일품인데??


 어릴 때 이런 날씨를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나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전날도 집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아 우산을 챙겨갈까 말까 망설였다. 아침에 흐렸더니 해가 나왔기 때문이다. 새파란 하늘에 흰 조각구름이 둥둥 떠 있어 비가 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다만 비 예보가 있어 우산을 챙겼었다.


 이틀은 은토끼님의 휴무일. 무슨 일이 있어도 공원 냥이들 밥을 챙겨야 한다.

 냥이들 급식은 하루 두 번. 겨울 준비 때문인지 배고픔을 못 견디는 것 같다. 주는 대로 모두 먹어치운다.

 여분을 더 두고 와도 오후에 가 보면 그릇들이 텅 비어 있다.

사람들 눈에 안 보이도록 나무 아래 몰래 숨겨 둬도 잘 찾아 먹는다.
아롱이 딸 고등어. 체격이 작은 데도 정말 많이 먹는다.

 전날도 비가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지는 않았다. 전날 오전은 교회에 가면서 미리 냥이들 밥을 챙겨 나갔었다. 건사료와 캔 파우치에 물병까지... 검은 비닐 봉지만이 아니라 가로맨 가방에도 캔등이 들어있어 만만치 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요즘 나에게 붙어살던 살이 조금 빠져서인지 어깨 부근 뼈가 가방 끈에 닿으면 살짝 버겁다. 몸살기가 있어 몸도 가볍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영상. 구름이 몰려들더니 환했던 날씨가 순식간에 변해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옷과 운동화를 다 적실 정도로 순식간에 퍼붓다 뚝 그쳐 어이가 없었다.

 공원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린다. 우산을 써도 순식간에 옷이 젖는다. 신발에 물이 들어가 절벅거린다.


 은토끼님은 대로에서 박물관 뒤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급식소를 차리셨더니 집까지 한 채 들이셨다.

 -정말 말릴 수 없다니까??? -

 박물관 뒤에 있던 급식소를 정리해 계단 아래로 옮기고 겨울집도 마련해 주신 것이다. 그 자리로 밥을 먹으러 오는 냥이들이 몇 마리인지 나는 모른다. 다음 날이면 건사료 통이 텅텅 비는 걸로 보아 거기서 끼니를 해결하는 냥이들이 여럿인 것 같다. 건사료 통도 두 개로 늘리고 물통도 대형으로 구해다 놓으셨다.

 이것도 다 돈인데~.

 오죽하면 내가 나이 들어 돈 없으면 병원 가기도 망설여야 한다고 훈수를 둔 적도 있을까.


 그 자리는 사람이 출입하기 제법 비좁다는 것도 문제다. 건사료통을 꺼내려면  계단 아래 공간을 기어들어가야 한다. 평소엔 작다고 생각했던 내 체격으로도 드나들기 버겁다.

은토끼님이 계단 아래 설치하신 겨울집과 급식소.

 사실 이 자리에 설치해 놓은 급식소를 그냥 지나칠 뻔했다. 박물관 뒤를 다 치우신다고만 하셨기 때문이다. 혹여 내게 부담이 될까 봐 출근하시는 날만 관리하시려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급식소가 어디 있는지 모를 수 있나? 그 근처에서 꼬리 짧은 고등어 녀석이 어슬렁거리는데....

 바람에 우산이 날아가지 않게 접어 놓고 건사료통을 채우고 빗물이 섞였을 물을 바꾸는 사이 옷이 젖었다.

 전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아롱이와 고등어를 찾지 못했다. 박물관 뒤에서부터 아롱이를 부르러 다녔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세 번을 다시 가 찾아도 안 나왔다. 무슨 일이지? 걱정스러웠다.

요즘 사랑이는 늘 허기져 보인다. 추운 겨울을 위해 비축하는지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털이 윤기가 난다.
우리는 이 녀석을 뚱고등어라고 부른다. 원래 밥 먹는 곳에서 아예 고등어 주변으로 이사를 왔다.

 고등어 자리에서도 전날처럼 뚱고등어 녀석이 집에서 나온다. 잠을 자다 내 기척을 알고 나오더니 구렁이처럼 사라진다. 밥을 두고 가면 녀석이 다 먹어치운다. 결국 세 번째 갔을 때도 그 자리를 지키는 녀석에게 너 때문에 우리 고등어 못 나오는 거 아니냐고 짜증을 부렸었다.

 전날은 귀요미에게 밥을 먹이는데 갈색 바바리가 멋지게 어울리는 분이 다가오셨다. 이쁜이 엄마셨다. 다음 주 일요일 공원 냥이들 밥 먹이는 걸 부탁드렸는데 착각하셨다며 애들 주려고 들고 오신 캔을 건네셨다. 아롱이 사랑이 급식소와 고등어 자리에도 밥을 잔뜩 놓고 오셨을 텐데... 건네는 캔이 묵직하다. 들고 오시는 캔은 집에서 돌보는 냥이들에게도 살짝 망설이게 되는 가격대다. 이분도 정말 장난 아니시다. 공원 냥이들의 수호천사답다.


 

 토성으로 올라가는 데 잠시 소강상태였던 비가 다시 퍼붓는다. 날씨가 종잡을 수가 없다.

 토성 둘레길에는 초화가 기다리다 나온다. 비를 맞아 등이 다 젖어 있다. 그놈의 밥이 뭐길래? 그렇게 기다렸을까? 짠하다!

비를 쫄딱 맞고도 기다리고 있다 나와 밥을 먹는 초화
초화가 은신처로 쓰는 곳. 비가 자꾸 내려 그 안으로 밥그릇을 넣어줬다.


  녀석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기다릴까? 단순히 배가 고파서? 아니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매일 밥을 주러 오는 사람이라서?


 전날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다리가 천 근은 되는 느낌이었다. 온돌의 온도를 제법 올리고 누웠다. 한기가 든다며 드러누운 남편 옆에. 하지만 아무래도 두 녀석이 걱정되었다. 아롱이는 나이가 많아서, 고등어는 워낙 많이 먹는 녀석이라...

 5시 무렵 다시 공원으로 나갔다. 날이 흐려서인지 금방 어둑해진다. 박물관 주변을 아롱이와 고등어를 부르며 찾아다니다 은토끼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어디서 보셨나 알아보기 위해. 원래 나오던 곳에서 밥을 먹였다고 하시더니 귀요미 자리 집은 그대로 있더냐고 물어보신다. 오전 10시와 오후 3시 귀요미 밥 먹이러 갔을 때는 아무 문제없었다고 했더니 그 누군가가 집을 또 가져다 버리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미술관 주변을 돌보는 스프링 아빠가 과도까지 올려놓는 특단의 조치 뒤로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병이 도진 모양이었다.


  이만 포기하고 내일 오전에 일찍 와 봐야지 하는 데 어둑한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아롱이가 보였다.

 '야, 이 웬수야. 오늘 너 찾으러 4번 온 거 알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하늘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오신 분들이 쳐다보며

 '여기 사는 아인데 이름도 있느냐 ‘고 물어보신다. 아롱이라고 이름을 알려드렸다. 아롱이는 종일 굶어서인지 개와 사람들을 경계하면서도 나를 따라온다. 사랑이까지 데려다 같이 밥을 먹이고 고등어 자리에 가 보니 냥냥거리며 나온다. 뚱고등어는  안 보였다. 녀석이 가자 숨어 있다 온 모양이다.


 피곤에 절어 있구나 싶은 데도 마음은 좀 여유가 생겼다.


 힘들다며 옆에 누워 있던 내가 없어진 탓에 남편이 일어나 찾은 모양이다.

 냥이들 버릇을 그렇게 들이면 안 된다며 한 소리한다. 하지만 공원을 4번 오가면 어떤가? 냥이들 모두 밥을 먹여야 내 마음이 편한데.


  


  이틀 연속 요상하게 비가 내린 건 겨울을 재촉하는 자연 현상이었을까? 밤이 깊어 가니 빗소리에 섞여 강풍까지 분다. 겨울집에 들어가지 않는 녀석들이 오늘 밤은 어디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을지… 긴 겨울 한데 잠을 청해야 할 냥이들이 생각나 몸살기가 있어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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