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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Dec 22. 2023

  봄이 올 때까지

 친구에게 톡을 받았다. 날이 춥고 길이 미끄러우니 고양이 밥 먹이러 다닐 때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마음이 읽혔다.

 내 답변은 이랬다.

 ‘녀석들이 추운 데도 밥 먹으러 나와줘서 고맙다.’고.

  마음씨 운운한다. 하지만 정말 고맙다.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심각하다.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지만 아니다. 아롱이는 까미 엄마다. 사랑이 고등어는 까미 동생들이며 작은 아들이 입양한 나리 자매들이다. 귀요미는 까미와 나리 외삼촌.

 어떻게 밥을 굶기랴? 이 북극 한파에.


 날씨를 살피러 베란다로 나온 나를 따라나서던 까미는 곧바로 되돌아선다. 추위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제 엄마는 공원에 있는데. 


 며칠 전이다. 아롱이를 못 찾았다고 저녁 무렵 집을 나서는 나를 남편이 흘깃 보며,

‘좀 지나치다~’고 한소리 한다. 그날은 공원을 세 번이나 나갔어도 결국 아롱이를 찾지 못했다. 이틀간 쉬지 않고 비가 내리더니 한파가 들이닥친 데다 종일 강풍도 불었다.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은토끼님의 휴무일. 일이 있어 내일 휴가를 내셨다며 연락이 왔다.  

 바람 소리가 밤새 창을 흔들어대더니 아침이 되자 눈발이 날렸다.

 조용히 소복소복 쌓이는 눈이 아니라 진눈깨비다. 휘날리는 모습만 봐도 춥다. 강풍에 더해 눈까지 휘날린다. 갈수록 점점이다. 그래도 나가봐야겠지.


 박물관과 미술관 주변에 있는 냥이들은 비나 눈을 피하는 곳이 있다. 그 주변에 가서 부르면 뛰어나온다. 아롱이만 은거지를 자꾸 옮긴다. 아롱이를 찾는 게 요즘은 거의 미션이다. 

 초화는 토성 둘레길에 있다. 비도 바람도 피하기 어려운 곳이다. 초화는 나를 놓치면 그날은 밥을 굶어야 하는 걸 아는 것 같다. 같은 장소에서 끈질기게 기다린다. 


 나무 둥치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다 몸을 일으키는데 그날은 유독 추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짠한 생각이 들어 눈까지 맞아가며 꼭 나와야 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다. 얼른 먹고 들어가라며 닭가슴살 세 개에 캔 하나를 올려 건넸다.

 돌아서며 든 생각이다. 돌보는 냥이들의 겨울집을 만들어주려 기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비를 맞으며 밥을 먹다 나를 바라보는 초화. 눈이 까미랑 너무 닮았다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마련해 둔 급식소. 매일 두 개의 건사료 통을 채워도 다음 날 가보면 텅 비어 있다

 눈발이 날려도 일단 집을 나섰다. 대로 주변 인도에서 박물관 뒤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은토끼님이 만드신 급식소가 있다. 처음에는 건사료통을 하나만 놨는데 여럿이 이 급식소를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건사료를 한알도 남기지 않고 먹어 결국 통을 두 개 놓았다. 그래도 몽땅 빈 통이다. 물그릇은 꽝꽝 얼어 있다. 얼음덩이를 꺼내기 힘들다. 결국 사고를 쳤다. 물그릇을 깨트린 것이다. 금방 얼어버리는 물인데 뭐 어쩌랴? 싶어 물 놓기를 포기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정 목마르면 눈이라도 먹겠지 하면서.

 올라가는 계단도 눈이 얼어붙어 미끄럽다. 조심할 수밖에 없다.

바람 소리가 장난 아니다. 그 눈밭에서 기다리고 있다.

 초화에게 먼저 밥을 먹이려 토성으로 올라갔다. 끼니를 해결하면 은거지로 돌아가 추위를 피할 것 같아서다.


 나에게 꼬박꼬박 닭가슴살을 챙기던 삼색이가 이틀 동안 보이지 않아 한파에 잘못된 거 아닐까 걱정이 되었었다. 나와도 걱정 안 나와도 걱정이다.

 그러나, 사흘째부터는 날씨와 관계없이 꼬박꼬박 나온다. 녀석에게도 할 수없이 캔까지 준다. 닭가슴살을 꿀꺽하고도 자리를 비켜나지 않는다. 따라다니며 눈을 맞추며 기다린다.

 같이 밥을 먹는 게 익숙한지 초화도 이제는 경계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하다. 고양이들이 충분히 먹기만 하면 얼어 죽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밥 먹이는 냥이들 숫자를 더 늘리면 심각한데 싶어 한숨이 나온다. 이제 한달에 두 박스 사던 캔을 세 박스로 늘려야 하는 것 당첨이다. 게다가 닭가슴살도 한 박스 더 추가다. 겨울이라 난방비도 폭탄일 텐데...

삼색이는 이제 눈이 와도 추워도 매일 나온다.  초화 주변으로 어느새 다가와 눈을 맞춘다. 

  녀석들의 안위가 왜 궁금하지 않을까? 북극 한파에 어디선가 웅크린 채 추위를 견뎌야 할 게 뻔한 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기에 추위나 눈도 무릅쓰고 먹이를 주러 다닐 것이다. 

  

작년처럼 사랑이와 함께 지내지 않아 걱정스러운 아롱이. 요즘은 아롱이 찾기 힘든 날이 자주 생긴다.

 미술관 주차장과 박물관 주변 냥이들이 부르자마자 나와줘서 고마웠던 날.  


 최근 읽은 책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배운 질문을 내게도 적용해 보았다. 

 '추운 날 고양이 밥 먹이러 공원에 가는 게 싫은가?'

 그럴 리가~.

 다소 힘들고 비용이 버겁다고 해도 절대 싫은 건 아니다. 

 춥더라도 빠지지 않고 나와 오늘도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있음을 보여주기를. 그게 결국 내가 원하는 거다. 밥 못 먹인 녀석들 걱정에 바람소리에도 한기를 느끼는 밤이 되지 않기 위해.


 이런 한파에도 끈질지게 고양이 밥을 먹이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시라고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싶다. 돌려받을 기약은 없다. 그러나 눈에 밟히는 녀석들의 안위를 살피고 한 끼 밥을 먹임으로 내 마음이 편하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녀석들에게 선물을 받고 있음이다. 

 인근 고양이를 외면하지 않고 돌보는 사람들이야말로 말로만 하는 자연과의 공존이 아니라 삶속에서 실천하며 사시는 분들이다. 

 봄이 올 때까지, 녀석들의 먹이 찾기가 더 쉬워질 때까지 더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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