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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Jul 05. 2024

편하기만 한 삶은 없다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장마철이니 당연하지만 아침부터 서둘러 마트에 간 이유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아픈 친구에게 가기 위해 김치를 담가야 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날이 선선하니 일을 하기는 수월하다.

 김치거리를 배달시키고 나온 사이 빗발이 거세져 있었다. 운동화가 금새 젖어버렸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

 비 내리는 기세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았다. 살짝 망설였다.

 '장미원을 거쳐 토성을 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가 많이 오니 오늘은 밥 먹으러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과 공원 중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 살짝 고민이란 걸 했다. 아롱이와 그 일당은 은토끼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끈질기게 찾아 밥을 먹이신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김치를 하기 위한 체력이 필요하다 싶어 집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오후 늦게야 일을 마치면 공원을 나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공원 토성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평소에는 운동 삼아 빙 돌아가던 길을 최단거리로 서둘러 갔다. 여기저기 물 웅덩이에 오솔길마저 작은 실개천이 되어 있었다. 설마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 밥 먹으러 나오리? 하며 평소 밥 주던 곳에 다가갔을 때였다.  평소엔 제법 운동하는 사람들이 오갔는데 인적마저 끊어져 한적했다.

 잘박거리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까만 고양이가 덤불에서 툭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게,

 "어이구~ 세상에!!!"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눈을 맞추더니 덤불숲으로 들어가 기다린다. 할 말을 잃었다.

나무 둥치 아래 숨어 나를 기다리던 초화

 밥그릇에 가득 고인 빗물과 나뭇잎들을 털어내고 물휴지로 닦아 얼른 닭가슴살 하나와 캔을 꺼내 건넸다. 촉촉이 젖어 가며 밥을 먹는 녀석을 보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고 삼색이를 찾아 덤불숲을 살폈다.

비에 흠뻑 젖은 녀석의 밥그릇

 있었다. 큰 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다 일어서더니 눈을 맞춘다. 녀석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하루 한 끼가 맞나 보다.

삼색이. 초화가 나오는 곳에서 빠짐없이 기다려 할 수 없이 같이 밥을 주고 있다. 매일 먹이는 캔값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들도 누구나 편안하기만 한 삶은 없다. 퍽퍽한 삶이 대부분이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삶이야 오죽하랴?

 공원을 들르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갔으면 어쩔 뻔 했는가?


 나에게 김치는 고난도의 미션이다. 오랫동안 내 별명 중 하나는 마마걸이었다. 나는 결혼하고 수십 년 동안 엄마의 김치와 장류를 얻어먹고 살았다. 아직도 나에게 김치는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빗물이 여기저기 흘러 작은 시내를 이룬 공원 오솔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하긴 그 어디에 쉽기만 한 삶이 있을까?  

 

 집에 김치라는 미션이 기다리는 데도 집앞 화단에 심긴 목화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비를 맞아 싱싱해 보여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와 열무와 알타리를 다듬으면서도 내내 빗속에서 한 끼를 먹던 녀석들 잔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며칠 전 공동 주택 화단에서 종이 상자로 뭔가를 갈무리하시는 동네 분에게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오늘부터 장마라는데 집에 비가 새서 어떻게 해요?"

 하던 일을 멈추시고 인사를 받아주시며 덤으로 걱정까지 해 주신다. 우리 연립주택 단톡방에 내가 올린 지붕에서 부엌 천장으로 물이 새 힘들다는 이야기를 읽으신 모양이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다며 종이 상자로 감싸시려는 게 뭔지 궁금해 슬쩍 들여다봤다.

"목화예요~" 하신다.

"아하~! 작년 여기 화단에 목화꽃 피었던데 직접 심으신 거였군요? 누가 목화꽃을 심었나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어요~"

화분에서 키우시던 목화 두 그루를 화단에 옮겨 심고 신문지로 비가림막을 해 주셨다.
유일하게 화단에서 씨앗이 발아해 살아남았다는 목화. 종이 상자 안에서 비를 맞아 생생하게 자라고 있었다.

 화성 구포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내게는 목화꽃도 안면이 있다. 물론 내가 알아보는 건 꽃이나 목화솜이 맺혀 있을 때만이다. 지금처럼 잎만 있을 때는 알아보지 못한다.

 작년에도 오랜만에 목화꽃을 봐서인지 정말 반가웠다. 오며 가며 한 번씩 들여다보며 목화꽃을 정성 들여 가꾸는 그 손길이 누군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런 지극 정성을 들였었다니?

 


 목화는 이미 오래전 고인이 되신 내 막내고모님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기에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막내 고모님은 27에 아이 셋 딸린 청상이 되셨다. 일제강점기 경성전기 기사셨던 고모부가 수리를 하러 전봇대에 올라갔다 떨어지는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막내로 둔 아들마저 갯벌에서 밀물에 쓸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공대를 다니던 아들까지 앞세우고 눈물마를 날 없었던 막내고모님. 그분은 화성 곳곳을 다니며 목화를 사들여 이불을 만들어 팔아 생활비를 보태셨었다.


 재색이 곱고 마음 씀씀이만이 아니라 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솜씨가 좋으셨던 막내 고모님의 눈물겨운 일생은 나에게 아릿한 아픔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 때 해 주셨던 목화솜 이불을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한동안 버릴 수 없었다.


 친구에게 얻으셨다는 목화 씨앗을 화단에 심어 이제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목화를 대도시의 주택가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신 분 덕에 올해도 하얀 목화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편치 않은 장소지만 힘겨운 장마철을 잘 이겨내고 연분홍 환한 목화꽃을 피울 걸 상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힘내서 하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하루빨리 친구를 병상에서 벌떡 일으킬 신약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친구 남편도 보잘 것 없지만 내 김치를 드시고 힘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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