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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쪽에서 폭염을 피하다

by 권영순


제주에서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나타난 까미가 날 보더니 이런 소리를 냈다.

‘으흐흐흐응 ~ 흐으흐흥~‘

미안함과 반가움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져 깔깔거렸다.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제대로 느껴졌다. 삐졌는지 만지려고 하자 까미는 몸을 피한다.

까미.jpg 까미의 여름 나기도 만만치 않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제주는 여전했다.

여름 높은 습도 때문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매일 신선한 숲 곶자왈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여름 향기가 제주에 오니 숨 쉴 때마다 제대로 맡아졌다.


조카딸은 함덕 쪽 대흘 방향으로 타운하우스를 마련했다. 제주가 좋다며 이주해 연세로 전전하더니 드디어 내 집을 마련한 것이다.

타운하우스 물놀이장.jpg 여러 집 마당에 물놀이장이 설비되어 아이들 웃음소리가 골목길처럼 퍼져나갔다.

남편의 대동맥 시술과 각종 내과( 혈액, 종양, 심장 등 있는 지도 몰랐던 곳들)에서 검사와 진료를 쫓아다니느라 이사를 알았지만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아롱이 귀요미 다롱이는 이쁜이 엄마에게 부탁드리고 안 되시는 날은 남편에게 공원 고양이 급식을 부탁했다. 공원을 데리고 나가 어느 장소에서 뭘 줘야 하는지 남편에게 가르쳐 주었다. 직접 먹이 시범을 보여주고 급식 장소를 알려주고서야 제주로 향할 수 있었다. 까미 엄마 아롱이 급식은 절대 거를 수 없다. 우리 식구들은


“까미 엄마 밥 굶겨!!!”

이 말이면 다들 움찔한다.

KakaoTalk_20250803_195147632.jpg 아롱이를 오래 찾은 날. 밥을 먹이며 지켜보는 데 마음이 늘 짠하다.

까미는 우리 집 유일의 웃음 머신이다! 우리 부부는 까미 엄마 아롱이가 너무 고맙다.

까미를 낳고 키워준 아롱이의 존재감이 작을 리 없다. 남편이 아롱이 급식을 거부할 리 없다.

‘집에서 키우기엔 공원 생활이 너무 길어 잃어버리면 공원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는 동물병원 수의사님의 조언 때문에 아롱이를 집에 들이기 망설여지는 건 사실이다.

그저 아롱이가 공원 박물관 주변에서 오래오래 밥 먹으러 나와 주기만을~.


제주에서 오는 날 김치를 했다.

다음 날.

아픈 친구에게 가기 전 삼색이와 초화를 찾으러 공원으로 향했다.

물에 흠뻑 젖은 채 나온 날 이후 초화가 안 보였었다. 한동안 안 보이다가도 나오는 녀석이라 ‘설마 잘못된 건 아니지?‘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히 삼색이는 일주일 만에 왔는 데도 밥그릇 근처에 누워 있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나를 안심시켰다.


한 달이 넘어서야 보게 된 친구는 더 여위었지만 피부가 아기처럼 보였다. 아내를 지극정성 간병하는 친구 남편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셨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제주행은 숙제가 있었다. <권가네 이야기> 수정 작업을 하겠다고 별렀었기 때문이다.

막상 가서는... 많은 시간을 잠으로 때웠다. 현관문까지 열어놓으면 그야말로 청량한 제주 바람이 집안 곳곳을 넘실거려 저절로 잠이 들었다. 서울의 폭염을 까마득히 잊게 만들었다. 인근에 있는 동백동산 비자림 절물휴양림이나 신흥 함덕 조천 김녕 세화 해변을 오가며 그냥 한가와 여유를 제대로 부렸다. 할 일조차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만드는 제주 동쪽의 마력.

제주 신천히 해수욕장.jpg 해수욕장

굳이 들고 간 책 한 권도 읽지 못했지만 영혼까지 쉬고 온 것 같은 시간이었다.

변함없는 세화 바다.jpg 여전히 그림 같은 세화
조천바다 석양.jpg 조천 바다의 석양

조카딸이 키우는 고양이 뽀리는 아직 주변에 적응하지 못해 집콕 중이었다. 조천이나 삼양집처럼 산책 냥이로 살고 싶은 데 막강한 함덕 냥이한테는 당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길냥이로 살아온 동네 냥이와의 혈투에서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 뽀리는 녀석의 울음소리만 들려도 이층으로 도망가는 처지였다.

KakaoTalk_20250801_211304507.jpg 조카딸 차 소리만 들려도 어디선가 나타나 밥을 청하는 제주 함덕 냥이


뽀리.jpg 조카딸이 키우는 고양이 뽀리.

타운하우스 단지 내는 과거 동네 골목처럼 떠들썩했다. 작은 수영장에서 여름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삶의 질’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 주변 학원가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아이들과의 괴리가 별나라 이야기인 듯 멀어 보였다고나 할까.

적당히가 없는 날씨에 지친 올 여름. 에어컨을 종일 돌리기에는 적당히가 없는 날씨를 만든 게 사람들의 이기심 탓인 듯해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날들을 견디다 갔던 제주에서의 며칠.

비록 제주의 남쪽과 서쪽으로는 가지도 못하고 돌아온 며칠이었지만 쉼표를 제대로 찍고 영혼까지 쉬고 온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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