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너 이게 뭐야?"
홀딱 젖은 정도가 아니라 등 가르마까지 생겨있었다. 코리안 숏 헤어 고양이답게 풍성하지는 않아도 털이 제법 있었던 녀석이다. 괴롭힘을 당해 빗물에 빠진 건 아닌 것 같았다. 같이 있던 치즈 냥이는 제법 안면이 있는 녀석이다.
어쩌다 저렇게 물에 흠뻑 젖었을까? 은토끼님이 입양해 키우시는 턱시도 냥이 까로는 물을 좋아하는 수속성 고양이다. 빗물이 모여 흐르는 배수구에 들어가 어찌나 즐겁게 첨벙거리던지. 고양이 춤을 본 기분이 다 들었었다.
밥을 주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추워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극한호우!
이 말이 어색하지 않은 날이었다.
사방이 컴컴해지고 장대비가 쏟아지며 천둥과 번개까지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전날 오후부터 비의 강도가 두려울 정도로 거세게 내렸다. 밤새 잠이 들었다 깨었다 해서인지 정신이 맑지 못했다. 비의 세기가 지나치게 세질 때마다 슬쩍 겁이 났다. 하늘이 뚫리는 기분이 다 들어서였다. 나도 이러니 막상 범람하는 강이나 하천 근처에 살면 어떨까?
전날은 오전부터 비가 부슬거렸어도 공원에 나가 초화와 삼색이를 쉽게 찾았다. 밥때를 알고 있는 녀석들이라 내가 찾아가는 오전 시간은 철저히 자리를 지킨다. 비가 와서인지 새소리 대신 맹꽁이 소리가 제법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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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초화는 내게 경계를 많이 풀었다. 머리도 살짝 만지게 해 준다. 장난도 친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슬쩍 숨는 장난을 치면 찾아대는 시늉을 한다. 영 곁을 내주지 않던 녀석이 그러니 어쩌다 밥을 주러 가지 못하게 되는 날은 마음이 무겁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토성으로 가 있다. 삼색이 녀석은 밥을 먹으러 나와 식빵 자세로 앉아 기다리면서도 근접하려면 여전히 하악질을 한다. 가끔 가져가던 밥그릇을 일부러 빼돌리며 '안 먹을 거야?' 하면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냥 밥이나 주고 가지 뭔 잔소리냐 싶은 얼굴이다. 그 표정이 귀여워 피식 웃고 밥그릇을 들이밀게 된다.
극한호우가 쏟아지던 날.
남편이 집을 나서던 6시 30분경에도 비는 폭우 수준이었다.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평소 위용이 당당했던 롯데타워가 먹구름을 머리에 두른 채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빗소리 때문인지 까미도 어디론가 숨어버려 집안이 너무 고요해 라디오 음악방송을 틀었다.
"비가 잠시라도 그쳐주면 바로 나가 봐야지..."
소강상태를 기다리며 집안일을 했다. 37.8도로 오르던 지난 주가 까마득했다. 너무 더워 우울증이 오는 기분이 다 들었는데 한기까지 생겼다. 날씨 앱을 켜 보니 22도다. 지난겨울도 날씨웹을 자주 들여다보았었다. 기온이 오르는 시간을 알고 싶었는데 여름이 되니 비가 그치는 시간이 언제인지 기온이 낮은 건 언제인지 찾아보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총알 수준이구나 싶다.
초화가 의외로 입맛이 까다롭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전부터이다. 평소처럼 캔사료에 닭가슴살 두 개를 올려 주고 돌아서 삼색이한테 가려는데 녀석이 쫓아오는 것이었다.
돌아서서 "응??? 왜???" 먹던 밥그릇을 다른 냥이한테 가로채였나 가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인기척에 밥그릇 위를 얼씬거리던 까치 한 마리가 후다닥 나무 위로 올라가 앉아 지켜본다. 고양이 밥그릇을 탈취해 나무로 가져가는 걸 본 적이 여러 번이다. 초화는 밥그릇을 들이밀어도 먹지 않는다. 다른 캔으로 바꾸고 츄르를 올려주고서야 먹는 걸 보고 돌아섰었다.
하지만 흠뻑 젖어 나타난 날도 조금 먹다 그만둔다. 츄르만 핥아먹는 정도다. 제법 덩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비에 젖어서인지 말라 보이기도 했다.
비에 젖은 등을 닦아주고 싶어도 아직 거기까지 허락하지 않아 가방 속에서 이것저것 꺼내 먹여보았다. 닭가슴살도 하나 이상 먹지 않는다. 나뭇가지 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까치도 신경 쓰였다.
밥그릇 앞에 주저앉는 녀석을 두고 자리를 떴다. 따라오지는 않았지만 두고 오는 마음도 편한 건 아니다. 체온이 많이 떨어져 감기에 걸리거나 다른 문제가 생길까 염려가 되는 건 인지 상정.
지난 4월 남편의 시술 날짜가 잡힌 뒤부터 마음의 안정이 어려웠다. 심리적인 위축은 의욕의 저하를 데려왔다, 책 읽기도 글쓰기도 거의 손을 놓게 되었다. 병원 출입이 일주일에 두세 번이었다. 그걸 견디며 잘 버티는 남편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의욕이 없이 시간만 보내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들른 도서관에서 <고양이의 골골송이 흘러나올 게다>라는 조은의 산문집을 보았다.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는 행복한 이야기를 가볍게 읽고 싶다. 그러나 이 책은 마음의 위로를 주지는 못했다.
도심지에서 고양이를 돌보며 겪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내가 기록한 <공원 냥이 아롱이>에도 그런 이야기들은 무수하다.
겉으로 점잖고 멀쩡한 인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힘없는 동물들에 대한 학대와 괴롭힘. 무엇보다 야비할 정도의 편견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선량한 사람들이 많음을 믿고 싶다. 그리고 꼭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아롱이 딸 나리를 입양해 키우는 작은 아들의
-고양이를 키우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