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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냥이 아롱이- 29. 통행료를 받는 고양이

by 권영순

공원에는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초화지가 있다. 핑크 뮬리가 달빛 가루를 뿌린 듯 색을 입는 계절이 오면 원근 각처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 근처 덤불숲에 지난 봄부터 턱 아래 목덜미와 발만 하얀 턱시도 냥이가 나타났다. 평소에는 근처를 지나가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꼬박꼬박 지극정성으로 밥을 주러 다니시는 분이 계셔서다.

어느 날 보니 따릉이까지 끌고 다니시며 밥을 주고 계셨다. 밥 주는 지역은 넓고 짐이 무거우니 그것도 방법이다 싶었다.

한 번은 이 지역 냥이들에게 밥을 주시는 분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대답하시면서 얼른 지나가 달라고 하신다. 나는 이해했다. 밥 주는 걸 아는 척하는 것도, 칭찬이나 응원의 말도 듣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었나? 안타까울 정도다. 워낙 공원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에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양이를 해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자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냥이들 밥 주는 걸 어른 남자가 구경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있다. 혹 태클이 올까 미리 겁을 내는 것이다.

내 돈 들여 공원 고양이에게 밥 주는 걸 누구에게 허락받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절로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고한다는 말조차 거북하게 들리는 걸 나도 자주 느꼈기 때문에 그분의 태도가 서운한 게 아니라 이해가 되었다.

하루는 지나가다 보니 그 턱시도 녀석이 밥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까미와 비슷하게 보여 나도 모르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곳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 분이 습 사료에 건사료를 야무지게 비벼 주신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지나갈 때마다 눈을 맞추고 낮을 익혀서였을까? 녀석은 내가 대놓고 구경해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하루는 박물관 주변에서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운동 겸 산책 코스인 그곳을 지나가다 녀석을 보게 되었다. 삼색이 한 마리와 같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도시락 배달이 늦는 것 같았다. 우연히 친구를 만나 차까지 마시고 산책길에 나섰으니 평소 내가 지나가는 시간보다 두 시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싶었다.

그러면 안 되는 데 그날따라 내게 도시락 여분이 있었다. 가끔은 줘도 되겠지 싶어 캔을 꺼내 턱시도 녀석에게 내밀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눈치 천단의 공원 냥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냥이들 도시락 배달 시간을 비슷하게 맞춘다. 3년 간 도시락 배달을 하다 보니 냥이들에게도 시간 관념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너무 늦어도 지나치게 일찍도 안된다.

당연히 배달을 마치고 내가 초화지를 지나가는 시간도 일정하다. 녀석은 이제 그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혹 밥을 안 주고 갈까 봐 길가까지 대놓고 시간 맞춰 나와 있는 건 둘째치고 아예 그냥 지나갈 수 없게 '야옹~' 소리까지 낸다. 밥 먹을 자리로 나를 안내하며 따라오라고까지 한다.

공원 냥이들은 평소 소리를 내지 않는다. 집 고양이처럼 안전한 환경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만약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그건 발정 가능성이 크다. 2월이 되면 유별나게 고양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리는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보통은 어미에게 안전 교육을 받는 건지 새끼들도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롱이 가족들이 공원에 있을 때 나는 까미나 까로의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녀석은 내가 지나갈 때 길목을 지키는 건 물론 소리까지 내며 자기 존재를 확인시킨다. 삼색이랑 둘이 대놓고 기다리는 데 어떻게 밥을 안 주고 지나갈 수 있겠는가?

핑크 뮬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라도 정확히 나를 가려 내 눈을 맞추며 따라오라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녀석이 지키는 길목을 지나갈 때마다 통행료를 내는 여자가 되었다.

집에서는 밥 주는 냥이들 숫자를 더 늘리지 말라고 면박을 줄 때도 있다. 새끼 고양이를 죽이는 사이코가 있다는 소리를 듣더니 위험하다며 밤에 공원에 나가는 걸 금지시켰다.

까미 엄마 아롱이 어떻게 밥을 안 주러 가느냐는 내 논리에 할 수 없이 그것까지는 참아주고 있는 가족들이다. 대신 낮에만 가는 걸로 합의를 봤다.

가족들 모르게 가방에 통행세를 내기 위해 캔을 하나 더 챙기는 나를 어쩌겠는가? 그게 마음이 편하다면 그냥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공원에서 이 녀석을 보면 아무리 먼지투성이라도 통행료를 꼭 내고 지나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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