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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없어 고양이!

by 권영순

갖고 싶다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

다 있는데 고양이 고양이 야옹

갖고 싶다 고양이

나만 없어 고양이

다 있는데 고양이 고양이 야옹

- <나만 없어 고양이> 한민주 노래-


스펙, 애인, 직장, 결혼, 집, 아이를 차례로 포기하고 혼자 있을 작은 방과 (사람 손을 덜 타는) 고양이가 로망이 된 젊은이들의 현실이 묻어나는 제목들이다. 그러니 '고양이도 없어'는 세상 온갖 상실감이 압축된 한 마디다. - 중략 -

천천히 가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조금 부족해도 괜…찮… 아…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 뚜벅뚜벅 다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길은 분명 새로운 길일 것이다. 그러니 길잃기란, 원래의 길 혹은 아예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시작임에 틀림없다.

- 정끝별 시인의 < 괜찮아, 괜.찮.아. 괜…찮… 아…>중에서


둘째 아들은 3년 전 집을 나가 독립했다. 결혼을 해서 나갔다면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겠지만 현실은 자기 혼자 살아가기도 벅찼다고나 할까? 보증금 조금에 월세를 오십만원이 넘게 내야 하는 원룸으로 독립해 나가 거기서 3년을 꽉 채워 살았다. 그래도 행복했단다. 집에 와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힘들다는 표시를 한 적이 없으니 아들이 겪은 고난을 내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영화인의 길을 걸으며 외롭게 자기 삶을 책임지는 시간이었음에도 그렇게 말해줘 고마웠다.

하긴 영국에서 지낸 1년을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삶이 훨씬 나을 수도 있었을 테지. 어찌 되었던 한국은 제가 나서 자라 익숙한 홈그라운드 아닌가?

그리고 드디어 고양이 한 마리 입양해 키우고 싶다는 꿈을 이루었다.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그렇게 애를 쓰더니 전세대출까지 받아 본가 반대편에 있는 화곡동 투룸으로 이사를 가서였다.

나는 둘째의 별명이 고양이 아빠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쓴다는 것도. 집에 오면 도망 다니는 까미를 기어코 잡아 아기처럼 안고 다닌다. 까미 간식, 장바구니에 담아 뒀다면 그걸 결제하고 가는 데도 망설임이 없어 오히려 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까미 입양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한 전적이 있으니 얼마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엄마가 공원에서 돌보는 고양이 한 마리를 업어오고 싶다는 말을 그래서 더 들어주고 싶었다. 설 명절 사흘 동안 매일 두 번씩 가서 간식을 내밀며 나랑 가서 살자고 거의 애걸복걸하다시피 해 오히려 내가 다 짠하게 느낄 정도였다.

작은 아들이 입양해 간 아롱이 두 번째 새끼들 중 한 마리. 나리라고 이름을 지어 입양했다.

급한 일 때문에 작은 아들은 일단 집으로 회군했다. 남편은 기왕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으면 애 추운데 두지 말고 얼른 데리러 가자며 다음 날 아침 이동장을 들고 나섰다. 그 추진력에 정말 놀랐다.

나리는 겨우 츄르 하나에 이동장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바람에 거기서도 놀랐다. 심지어 '같이 가고 싶다는 거지?'라는 잡생각을 다했다.

그렇게 작은 아들은 고양이를 들이게 되었다.

나리는 여름에 태어나 가을과 겨울을 제 엄마와 함께 공원 박물관 주변에서 지냈다. 아롱이의 두 번째 새끼 중 한 마리로 이제 7개월이 넘어가는 암컷이다.

긴 겨울을 공원에서 보내고 어느 정도 성장한 고양이를 입양해가라고 하면서도 다소 걱정은 되었다. 나는 아롱이의 첫 번째 새끼들 네 마리 중 한 녀석 까미를 6개월이 넘어 입양했다. 돌보던 녀석이라도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웬걸? 어느 순간부터 내 팔을 베거나 등을 맞대고 잔다. 늘어지게~. 어디 다른 곳에 있다가도 밤이 제법 깊어졌다 싶으면 어느 틈에 잠든 내 옆에 와 딱 붙는다. 오죽하면 남편은 내 껌딱지라고 부를까? 그 말에 담긴 부러움을 나는 짐작하고 있다.

공원에 있을 때 까미는 누군가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던 녀석이었다. 좀 무덤덤하고 애교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까미를 데리고 오면서 속으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이 누리던 자유를 포기하고 집에 들어와 갇혀 사는 게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다. 이미 공원살이에 적응이 될 만큼 되었기에 안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까미의 입양으로 검은색에 대한 오랜 편견을 깼다고 자주 말한다. 까만색 고양이가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란다. 고양이 털 때문에 냄새를 못 맡아도 상관없다고 하는 건 기본이다.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가족 구성원에게 주는 행복감과 결속력은 상상초월이다. 까미 이야기만 나와도 다들 눈이 웃는 걸 보면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오른쪽 눈 각막 이상으로 넥카라를 쓴 상태에서도 노는 건 여전한 까미

까미를 입양하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눈의 이상이었다. 일 년이 넘어가도 눈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눈이 애꾸가 되었다. 눈을 잘 뜨지 못해 동물병원에 가니 눈 부종이라고 안약을 주기에 가져와 넣어줬다. 그러나 차도가 없어 안압과 각막 상태를 다시 체크해 보니 오른쪽 눈에서 상처가 발견되었다. 안압도 양쪽 눈 모두 비정상이라더니 선천적으로 녹내장이 있단다.

중성화 이후 끊었던 넥카라를 다시 씌우고 2주.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아직도 가끔 맑은 눈물을 흘려 가족을 걱정시키는 중이다. 하루 세 번 3개의 약을 5분 간격으로 눈에 넣어주는 미션에는 가족 동원이 필수였다. 그걸 열심히 시간 맞춰 넣어준 사람은 큰아들이다. 입양을 제일 반대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막상 까미를 집에 들이니 관심과 사랑은 저절로 생기는 모양이다.

둘째 아들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리틀 나비 즉 나리라는 이름까지 짓고 다음날 총알같이 데려갔다. 2월 4일 밤에 전날 내가 포획해 온 녀석을 달려와 데려간 것이다. 어차피 자기랑 살 거 빨리 데려가는 게 맞다며.

나리는 우리 집에서 하루 머물며 창문 나무 테두리에 발톱 자국을 여기저기 내놓고 갔다. 발톱을 얼마나 갈고닦았는지 제법 단단한 나무 테두리에도 턱턱 박혔다. 그 발톱으로 아직도 아들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사정없이 내고 있단다.

캣타워에 가볍게 뛰어오르는 나리
아직 팻캠에서만 제대로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아직 나리는 간을 보는 중이다. 마치 '나, 나 쉬운 여자 아니야?'라는 듯이. 아들이 잠들면 살금살금 돌아다니다 펫캠에 딱 걸려 보는 우리를 웃게 만든다. 팻캠을 통해 보는 나리 모습은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보는 이상으로 재미있다.

발톱이나 깎아서 보내려고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그냥 포획해 데려올 때였다. 입양이 너무 늦어 못 키울 거라는 동물병원 선생님의 조언을 듣지 않아 지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데려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 데도 밤이면 슬슬 침대를 노리는 모습이 펫캠에 그대로 찍혀있기 때문이다.

아롱이 딸 나리가 작은 아들과 환상의 궁합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 무엇보다 나의 속마음은 이렇다. 고양이 좋아하는 여자와 빨리 결혼해 아이도 낳고 알콩달콩 살아가기를. 고양이와 함께 자라는 아이는 감성과 공감능력이 넘치게 풍부할 게 분명하니 말이다.

정끝별 시인의 위로처럼 영화인의 길을 가는 내 아들이 나리와 함께 인생의 굴곡을 너끈히 돌파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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